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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현의 아틀라스] 다시 만난 이익공유제

입력 2026-06-05 11:03:24 | 수정 2026-06-05 11:03:12
조우현 기자 | sweetwork@mediapen.com

조우현 산업부 기자

[미디어펜=조우현 기자]10년 전쯤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의된 ‘사내유보금 과세’ 논란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기업이 곳간에 현금을 쌓아두고 투자나 배당을 하지 않는다는 프레임을 씌워 기업을 압박하던 시기였다. 당시 재계와 학계에서는 “사내유보금은 현금이 아니라 이미 공장과 설비, R&D(연구개발)에 재투자된 자산”이라며 반시장적 정책의 부작용을 경고했지만, 대중을 자극하는 포퓰리즘의 기세를 꺾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기업을 괴롭히는 논리는 이름만 바꾼 채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번엔 ‘초과이익 공유제’와 ‘횡재세’, 그리고 한술 더 넘어 북유럽식 제도를 어설프게 수입한 ‘사회연대임금’까지 등장했다. 정당한 경영 활동과 치열한 시장 경쟁을 통해 거둔 이익을 ‘초과’라는 임의적 잣대로 규정해 뺏어 가거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를 줄이겠다며 법과 제도로 임금 수준을 강제 통제하겠다는 발상이다. 과거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이 개념을 접하고 “경제학 어디에도 없는 말”이라며 “사회주의 용어냐, 공산주의 용어냐”고 일갈했던 사건이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 같은 논리를 비튼 풍자가 확산하고 있다. 한 네티즌은 “기업이 예상보다 돈을 많이 벌었다고 초과이익을 뺏어가거나 임금을 통제해야 한다면, 수백억 원의 수입을 올린 인기 연예인이나 대박 계약을 터뜨린 스포츠 스타의 몸값도 ‘초과 수입’으로 규정해 대중에게 나눠야 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이익공유제의 허점을 직관적으로 찌른 풍자다. 실제로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의 이익은 리스크를 감수한 과감한 투자와 경영 혁신의 결과물이다. 이미 최고율의 법인세를 성실히 납부한 세후 순이익에 대해, 또다시 환원을 요구하거나 성과급 체계를 흔드는 것은 명백한 사유재산권 침해이자 성장 동력의 말살이다.

기업을 괴롭히는 논리는 이름만 바꾼 채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번엔 ‘초과이익 공유제’와 ‘횡재세’, 그리고 한술 더 넘어 북유럽식 제도를 어설프게 수입한 ‘사회연대임금’까지 등장했다. 정당한 경영 활동과 치열한 시장 경쟁을 통해 거둔 이익을 ‘초과’라는 임의적 잣대로 규정해 뺏어 가거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를 줄이겠다며 법과 제도로 임금 수준을 강제 통제하겠다는 발상이다. 사진은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특히 양극화 해소라는 그럴듯한 슬로건으로 포장된 ‘사회연대임금’은 시장의 현실을 철저히 무시한 탁상공론의 극치다. 대기업에는 생산성이 높아도 임금을 올리지 못하게 억제하고, 한계 상황에 놓인 중소기업에는 지불 능력을 초과하는 임금을 강제하겠다는 이 제도는 결국 ‘하향평준화’에 불과하다. 열심히 혁신해서 이익을 낸 기업과 근로자가 그 결실을 공유하지 못하게 막는데, 어느 기업이 성장을 꿈꾸고 어느 근로자가 일할 의욕을 갖겠는가.

사실 시장의 원리를 아는 이들에게 이러한 주장들은 기가 차다 못해 헛웃음이 나오는 이야기다. 그러나 단지 ‘무지에서 비롯된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엔 그 위기감이 결코 가볍지 않다. 과거에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조롱받던 포퓰리즘 공약들이, 대중의 감성과 정치적 셈법을 타고 기성 정치권의 핵심 제도로 이식되는 과정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에이, 그게 말이 돼?” 했던 노인 수당이나 억 단위의 현금성 출산 장려책들이 지금은 여야를 막론한 표준 공약이 됐다.

이익공유제나 사회연대임금 역시 지금이야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먼 훗날엔 당연한 것이 될지 모른다. 경제 위기나 양극화라는 자극적인 프레임을 타고 감성이 이성을 지배하는 순간, 기업을 갉아먹는 정책이 들어서는 건 한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뻔하다. 정당한 이익을 범죄시하고 성과의 가치를 부정하는 사회에서 미래를 위한 과감한 투자가 나올 리 만무하다. 실패한 과거의 정책과 해외의 기형적 모델을 들고 오는 행태는 국가 경쟁력을 스스로 갉아먹는 행위다.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 기업의 투자 위축과 고용 감소라는 부작용을 직시할 수 있도록 경고하는 것이 절실한 시점이다. ‘설마’가 현실이 돼 경제의 근간이 무너지기 전에 반시장 포퓰리즘의 폭주를 멈춰 세워야 한다. 이미 멀리 온 것 같아서 불안하지만 지금껏 우리 국민들은 나라가 망하지 않을 정도로만 균형 있게 투표권을 행사해 왔으니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이길 바라본다. 정부는 절대로 시장을 이길 수 없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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