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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영 33주년…이건희 선대회장이 그리운 이유

입력 2026-06-07 09:32:26 | 수정 2026-06-07 09:32:10
조우현 기자 | sweetwork@mediapen.com
[미디어펜=조우현 기자]7일은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며 신경영 선언(1993년)을 던진 지 33주년이 되는 날이다. 당시의 대대적인 질적 성장 선언은 양적 팽창에 머물던 삼성을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시킨 결정적 계기가 됐다.

오늘날 재계가 기억하는 이건희는 단순히 외형을 키운 경영자를 넘어, 한국 사회의 관료주의와 위선을 직설로 지적했던 '경영 사상가'에 가깝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치열한 글로벌 시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우리 기업들의 현실은 그의 사상적 메시지들을 다시금 소환하고 있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사장, 맨 왼쪽)이 지난 2011년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열린 ‘선진제품 비교전시회’(경쟁제품 비교전시회)에 참석해 참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 조직의 나태함 깨운 "뒷다리 잡지 마라"

이 선대회장은 국가적 나태함이나 조직의 매너리즘 앞에서는 늘 서슬 퍼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신경영 선언 직후인 1993년 7월, 일본 도쿄 사장단 회의에서 던진 "뒷다리 잡지 말라"는 경고가 대표적이다. 

당시 삼성이 초일류로 가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하는 시점임에도 일부 임원들이 "불량률 10~15%를 내고도 이익을 내면 되는 것 아니냐"는 안일한 태도를 보이자 이 선대회장은 강하게 질타했다.

그는 혁신에 머뭇거리는 경영진을 향해 "강제 안 한다. 자율이다. 많이 바뀔 사람은 많이 바뀌어 기여해라. 적게 바뀔 사람은 적게 바뀌어서 기여해라. 그러나 남의 뒷다리는 잡지 마라"고 일갈했다. 

초일류라는 목표를 향해 전력 질주해야 하는 시점에 조직 내 관료주의나 구태가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경고였다.


◆ 2026년에도 이름만 바뀐 채 이어지는 '도장 1000개'

이러한 내부의 매너리즘을 향한 비판은 한국 사회와 정치권의 규제를 향한 독설로 확장됐다. 1995년 4월의 '베이징 발언'이 대표적이다. 

당시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만난 이 선대회장은 삼성의 자동차 사업 진출 과정 등에서 공장 건설 승인에만 도장 1000개가 필요한 관료주의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행정력은 3류, 정치력은 4류, 기업경쟁력은 2류 수준"이라고 작심 비판했다.

당시 이 발언은 정권의 거센 반발을 사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나 당시 정치권의 격앙된 반응과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관료주의의 폐해를 기업인의 시각에서 정확하게 짚어낸 현실적 진단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경쟁국들이 파격적인 지원과 규제 완화로 패권 전쟁을 주도하는 반면, 우리 기업들은 겹겹이 쌓인 규제 장벽에 막혀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심심찮게 제기되기 때문이다. 이름만 바뀐 '도장 1000개'의 규제가 여전히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실이다.


◆ 시장 원리 저해하는 포퓰리즘엔 타협 없다

기업의 정당한 이윤 추구를 저해하는 반시장적 논리에도 타협은 없었다. 

지난 2011년 3월 정치권이 대기업의 초과 이익을 중소기업과 나누라는 취지의 '초과이익공유제'를 들고 나오자, 이 선대회장은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도무지 들어본 적이 없다"며 시장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정책에 경종을 울렸다.

이어 당시 정부의 경제 성적을 묻는 질문에는 "과거에 비해 상당한 성장을 해왔으니 낙제점을 주면 안 된다"면서도, 추가 질문에는 "흡족하다기보다는 낙제는 아닌 것 같다"고 답하며 정권의 눈치를 보기보다 기업가의 시각에서 철저하게 냉정하고 객관적인 현실 인식을 보여줬다.

최근 국회에서 상생 협력을 명분으로 이익공유제 등 반시장적 규제가 다시금 고개를 드는 상황은, 15년 전 자본주의 시장경제론자의 시각에서 던졌던 그의 우려와 그대로 맞닿아 있다.


◆ '철학의 부재'가 남긴 빈자리

글로벌 패권 전쟁과 과도한 규제 입법 속에서 한국 산업계가 각자도생의 사투를 벌이는 현재, 재계가 다시 이건희의 목소리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3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 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외로운 '기업 개인기'로 고군분투하며 일류로 성장했으나, 이를 뒷받침해야 할 정치와 행정은 여전히 규제의 틀에 갇혀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사회에는 국가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정치권의 오판에 정면으로 제동을 걸 만한 기업인은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의 반시장적 포퓰리즘에 당당히 맞서고 규제 장벽을 정면으로 돌파하며 대한민국 경제의 기틀을 닦았던 그의 선구안과 시장 경제의 가치가 2026년 오늘날 더욱 깊고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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