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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없으면 엔비디아도 없다”…AI 마지막 퍼즐은 삼성·SK ‘초격차 제조력’

입력 2026-06-08 11:11:21 | 수정 2026-06-08 11:11:20
조우현 기자 | sweetwork@mediapen.com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세계 AI(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을 리드하고 있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한국 반도체 업계를 향해 연일 긴밀한 협력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전 세계 테크 기업들이 엔비디아의 AI 칩을 공급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황 CEO는 한국을 찾아 국내 주요 기업들과의 공급망 협력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황 CEO는 지난 5일 방한한 이후 SK, LG, 네이버 등 국내 주요 기업 경영진과 만나 ‘삼겹살 회동’을 갖는 등 친화적인 행보로 일정을 시작했다. 이어 8일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별도로 만나 미래 ‘AI 팩토리(인공지능 공장)’ 구축을 위한 협력을 약속하는 등 굵직한 공급망 현안을 다뤘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 5일 오후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입국하면서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설계와 제조의 최정점, 동등한 ‘기술 동맹’

일각에서는 국내 기업들이 엔비디아의 퀄리티 테스트 통과 여부에 종속된 ‘을’의 처지인 것처럼 평가하기도 하지만, 비즈니스의 실질은 ‘대체 불가능한 파트너십’에 가깝다. 엔비디아가 아무리 정교한 AI 가속기를 설계하더라도, 이를 상용화 수준의 수율과 품질로 구현해 낼 수 있는 하드웨어 제조 기반은 사실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엔비디아가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는 이유는 단순한 하드웨어 성능을 넘어, 전 세계 AI 개발자의 90% 이상이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플랫폼 ‘쿠다(CUDA)’ 기반의 생태계를 구축해 대체 불가능한 호환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해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엔비디아의 최신 GPU(H100, B200 등)를 확보하고자 1년 이상 대기하며 사재기 경쟁을 벌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설계 영역의 최정점에 선 엔비디아지만,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하드웨어 제조 기술을 갖고 있는 한국 기업들이 없으면 독점 생태계를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양사의 만남이 철저히 서로의 효용을 인정하는 대등한 ‘프로 대 프로’의 비즈니스 동맹 성격을 띤다는 해석이다.

◆ 모두가 비웃던 10년 투자… AI 시장 선점한 젠슨 황의 집념

엔비디아를 이끄는 젠슨 황의 기업가 정신은 ‘장기적 집념’이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대만계 이민자 출신으로 유년 시절 혹독한 환경을 겪은 그는 청소년기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접시를 닦고 허드렛일을 하며 끈기를 배웠다고 회고한다. 1993년 단돈 4만 달러의 창업자본금으로 시작해 오늘날 기업가치 5조 달러를 돌파하게 된 원동력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그의 끈기는 비즈니스 무대에서 빛을 발했다. 스마트폰과 모바일 앱 혁명이 세상을 지배하던 2000년대 중후반, 황 CEO는 당장 수익이 나지 않고 주주들의 반대가 극심했던 AI 소프트웨어 생태계 ‘쿠다(CUDA)’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매 분기 실적 압박에 시달리자 시장은 그의 무모함을 지적했고, 이 과정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등 악재가 겹치며 주가가 70% 가까이 폭락하는 부침을 겪었다. 하지만 황 CEO는 단기적인 실적 악화와 그에 따른 보상 감소 리스크를 정면으로 감수하며 10년이 넘는 암흑기를 견뎌냈다. 단기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 가치를 신뢰했던 뚝심이 오늘날의 엔비디아를 탄생시킨 것이다.

◆ 무모한 비관론 정면 돌파한 삼성·SK의 ‘사업적 확신’

이러한 젠슨 황의 집념과 모험 정신은 한국 반도체 산업이 걸어온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1983년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이 전 세계의 회의적인 시선을 뚫고 감행한 ‘2월 도쿄선언’은 한국 반도체 신화의 서막이었다. 당시 국내외를 막론하고 “3년도 못 가 실패할 것”이라는 비관론과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삼성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어 고 이건희 선대회장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반도체는 타이밍 산업”이라며 과감한 선제적 투자를 지휘했다. 기술 강국이었던 일본을 제치고 글로벌 메모리 시장 1위를 쟁취한 저력은, 단기적 시황에 흔들리지 않는 사업에 대한 확신과 리스크를 정면으로 돌파해 낸 강력한 도전 정신에서 비롯됐다.

최태원 회장이 이끄는 SK하이닉스의 역사 역시 도전의 연속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채권단 관리 하에 연명하며 생존을 걱정해야 했던 하이닉스는 2012년 SK그룹에 인수되면서 반전의 계기를 맞았다. 당시 시장의 우려와 반대가 있었지만, 미래 시장을 내다본 최 회장의 과감한 인수 결단과 선제적 투자는 고성능 HBM 시장을 선도하는 결정적 선견지명이 됐다.

결국 젠슨 황의 선구안과 국내 반도체 대기업들이 수십 년간 사투를 벌이며 쌓아온 제조 역량이 만난 것은, 단순한 비즈니스 계약이 아닌 기술 역사상 가장 강력한 ‘위대한 기업가 정신의 결합’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각자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사업적 확신과 모험 정신이 마침내 생성형 AI 시대라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기를 맞아 폭발적인 결실로 이어진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에 이어 한국 기업들의 위상을 확인시켜 준 젠슨 황의 이번 방한은 우리 산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이제 우리 기업들은 단순히 엔비디아가 짜놓은 판에 부품을 공급하는 역할을 넘어, 스스로 AI 생태계의 판도를 바꾸는 새로운 패러다임 설계자로 거듭날 체급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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