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동하 기자]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반도체·AI 첨단 소재 기업으로 체질을 바꾸는 셈법을 가동하고 있다. 공장 가동률을 조정하며 버티는 과거 방식을 벗어나 진입장벽과 수익성이 높은 반도체 후방 산업(공정 핵심 소재·첨단 패키징)으로 변화하며 체질 개선에 나선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정부의 고부가·디지털 중심 산업 구조 재편 지원책에 발맞춰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생태계 진입을 골자로 한 대규모 투자 시나리오를 전격 가동하고 나섰다.
이런 배경에는 범용 화학 시장의 구조적 붕괴가 자리 잡고 있다. 중국발 범용 제품 공급 과잉이 시작되면서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단가 주도권을 상실했다. 여기에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나프타 수급 불안정성까지 겹치며 수익성 확보가 어려운 영역에 접어들었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반도체·AI 첨단 소재 기업으로 체질을 바꾸는 셈법을 가동하고 있다. 사진은 반도체·전장 분야에서 활용되는 LG화학의 고부가 전자소재 제품군./사진=LG화학 제공
◆ 범용 대신 고부가·초고순도…15조 원 투자·공장 신설 속도전
LG화학은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동춘 LG화학 사장은 최근 타운홀미팅을 열고 임직원들에게 고성능 산업 중심의 수익 구조 고도화 구상을 직접 밝혔다. LG화학은 글로벌 공급 과잉에 따른 수익성 둔화를 돌파하기 위해 오는 2035년까지 연구개발(R&D)에만 총 15조 원을 투자해 AI(인공지능) 기반의 고부가 소재 기업으로 방향 전환하기로 했다.
특히 신설된 신사업 개발 조직을 중심으로 전체 R&D 자원의 70%를 반도체·모빌리티·로봇 소재 등에 전량 배분한다. AI 반도체 고도화로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 패키징용 접착제, 저유전 소재, 열관리 소재, 유리기판 등 첨단 소재 시장을 선점해 새로운 캐시카우를 창출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2030년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달성한다는 구체적인 프라이싱 목표도 제시했다.
롯데화학군과 OCI홀딩스 등 다른 기업들도 반도체 공정 소재 시장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롯데화학군 계열사인 한덕화학은 최근 경기 평택 포승지구에서 1300억 원 규모의 반도체·디스플레이용 현상액(TMAH) 생산 공장 착공식을 진행했다. 현상액은 반도체 미세회로 패턴을 형성하는 핵심 소재로 초고순도 제품은 전세계에서 한국과 미국, 대만, 일본 등 4개국만 생산할 수 있는 기술 집약적 고수익 시장이다.
OCI홀딩스 또한 일본 도쿠야마와 손잡고 말레이시아에 반도체용 폴리실리콘 합작 공장을 건설 중이다. 2027년 상반기 준공 및 시운전을 거쳐 2029년부터 연간 8000톤 규모의 상업 생산을 개시할 계획이다. 반도체용 폴리실리콘은 태양광용 대비 요구되는 순도가 월등히 높아 진입장벽이 높다.
정부 역시 석화업계의 이 같은 '고부가·디지털' 중심의 산업 구조 재편에 힘을 싣고 있다. 단순 범용 제품 수출로는 더 이상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하기 어렵다는 공감대 아래, 기업들의 첨단 소재 개발과 AI 기술 도입을 뒷받침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기업의 자구 노력과 정책적 지원이 맞물리면서 반도체 소재로의 포트폴리오 전환은 한층 가속화될 전망이다.
석화업계 관계자는 "에틸렌 등 범용 제품에선 중국의 경쟁력을 따라갈 수 없다는 점이 증명되고 있다"며 "생존을 위해선 반도체 등 첨단소재 개발과 AI 활용이 필수적이며 기술 진입장벽을 구축해 범용 제품 손해를 반도체 수익성으로 상쇄하려는 전략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동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