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홍샛별 기자] SK하이닉스가 세계 최대 자본시장인 미국 월가에 전격 진출한다. 단순한 해외 시장 상장을 넘어 글로벌 인공지능(AI) 메모리 시장의 주도권을 굳히기 위한 대규모 실탄 확보이자,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끊어내겠다는 승부수다. 전 세계 투자자들의 시선이 다음 달 10일 나스닥 상장일로 쏠리는 가운데, 이번 상장이 몰고 올 긍정적 파급효과와 함께 이면에 숨겨진 리스크를 향한 경계의 목소리도 동시에 나온다.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을 둘러보는 최태원 SK회장. /사진=SK제공
29일 금융투자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보통주 최대 1779만주를 발행하는 제3자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를 통해 미국 나스닥 시장에 미국 주식예탁증서(ADR)를 상장할 예정이다.
지난 26일 종가(267만3000원) 기준 약 47조5526억원에 달하는 역대급 규모다. 조달된 자금은 고대역폭메모리(HBM) 생태계 확장을 위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팹 건설(31조원)과 청주 P&T7 어드밴스드 패키징 팹(19조원), 대당 6000억원에 달하는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취득(12조원) 등 차세대 설비 투자에 집중 투입된다. 핵심 장비 대부분이 달러로 결제되는 만큼 미국 증시에서 직접 달러를 조달하는 구조는 환율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도 유리하다는 평가다.
시장이 가장 기대하는 대목은 글로벌 자금의 대규모 유입과 체급 재평가다. SK하이닉스는 HBM 시장 1위 사업자임에도 그간 미국 마이크론 등 경쟁사 대비 밸류에이션 저평가 설움을 겪어왔다.
글로벌 투자은행(IB) HSBC는 마이크론이 미국 투자자들의 높은 접근성 덕에 SK하이닉스보다 평균 35%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왔다면서, 이번 나스닥 상장을 계기로 목표주가를 기존 290만원에서 400만원으로 38% 상향 조정했다.
미래에셋증권 등 증권가에서도 상장 직후 반에크 반도체(SMH), 아이셰어즈 반도체(SOXX), 인베스코 QQQ(QQQ) 등 주요 패시브 ETF의 편입 수요로만 약 15억달러(약 2조3000억원)가 유입되며 투자자 저변이 글로벌 큰손들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외환시장에서도 이번 상장이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외환위기 이후 28년 만에 분기 평균 1500원대를 기록하는 등 고환율 기조가 뉴노멀로 굳어지는 상황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거센 매도세가 환율을 밀어 올리는 주원인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SK하이닉스가 미국 현지에서 조달한 대규모 달러 자금이 국내로 유입돼 원화로 환전되면 꽉 막힌 외환시장의 달러 수급에 일시적으로 숨통이 트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역대급 흥행 예고 뒤에는 무시할 수 없는 '양날의 검'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신주 발행에 따라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이 약 2.44% 희석되며 주당순이익(EPS)이 감소하는 부담이 있다.
또 미국 시장에 직상장되는 만큼 국내 본주와 미국 ADR 간의 '이중 가격' 형성 우려도 제기된다. 대만 TSMC처럼 국내외 헤지펀드들이 두 시장 간의 가격 괴리를 노린 차익 거래에 집중할 경우 국내 주식시장의 수급이 흔들리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기존 국내 주식을 보유하던 외국인들이 이탈해 나스닥 ADR로 갈아타는 역머니무브가 발생하면 자금 조달 효과가 상쇄될 우려도 상존한다.
미국 자본시장의 높은 규제 비용도 감수해야 할 숙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까다로운 공시 및 회계 기준을 엄격히 준수해야 하며, 글로벌 헤지펀드들의 공매도 타깃이 될 위험성도 한층 커진다.
전문가들은 "과거 ADR을 상장했던 일본 소니나 중국 알리바바처럼 미국 현지에서의 집단소송 리스크에 노출될 경우 막대한 합의금 지출 등 예기치 못한 비용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디어펜=홍샛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