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홈 경제 정치 연예 스포츠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 성패는 ‘시황·인프라’에 달렸다

입력 2026-07-01 11:11:35 | 수정 2026-07-01 11:11:28
조우현 기자 | sweetwork@mediapen.com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정부가 발표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에 따라 삼성전자와 SK그룹이 초대형 중장기 투자 계획을 확정했다. 양사 총수가 29일 청와대 국민보고회에서 밝힌 국내외 총투자 규모는 수천조 원에 달한다.

이 중 시장의 이목이 집중된 대목은 호남 신규 반도체 팹(공장) 4기 구축에 배정된 800조 원의 재원이다. 이번 투자는 전력과 신재생에너지(RE100)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평가와 함께, 기업의 입지 선택권을 강제한 ‘관치’라는 지적이 팽배한 상태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기업 투자계획 발표 후 손을 잡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삼성·SK 호남에 ‘AI 메모리 팹 4기’ 구축… 생성형 AI 인프라 재편

양사는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에 맞춰 서남권을 신규 반도체 거점으로 수용하고 관련 투자 계획안을 내놓았다.

삼성전자는 정부의 서남권 거점 구축 요구에 응해 이곳에 메모리 팹 2기를 배치하기로 했다. 파운드리 초미세 공정과 고부가 메모리, 첨단 패키징을 모두 보유한 강점을 살려 정부가 지정한 서남권 신규 팹을 AI 칩 공급 능력을 다변화하는 기지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SK하이닉스 역시 용인 클러스터 중심의 기존 계획에서 나아가, 정부 요청에 따라 총 400조 원의 재원을 서남권에 배정했다. SK하이닉스는 이 새로운 거점을 차세대 HBM 등 고부가 제품 수요 대응을 위한 또 다른 축으로 편입시키는 전략을 검토 중이다.

다만 시장 안팎에서는 인프라 수급의 불확실성을 감안한 기업의 ‘속도 조절’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번 투자가 기업의 자발적 의지가 아닌 정부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진 만큼, 향후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신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국민보고회 당일인 29일 공시를 통해 해당 중장기 투자 계획에 대해 “현재 시황에 근거한 장래계획으로 이해를 돕기 위한 가이드라인일 뿐, 향후 경영 환경 변화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며 정정신고(보고)를 냈다. 

수백조 원의 천문학적 투자를 선언하면서도, 시황의 변동과 기업의 재무 상황을 고려하겠다는 뜻이다. 또한 RE100과 전력 등 필수 인프라가 적기에 받쳐주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법적·실무적 안전장치를 마련해 둔 것으로 풀이된다.

◆ ‘관치’ 우려 속 호남 RE100 실효성 의문… 단가·용수 리스크 산재

이번 투자와 관련해 정부는 용인·평택 등 수도권의 전력 과부하를 지적하며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공급 능력이 우수한 호남이 RE100 대응의 최적지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출렁이는 태양광’을 기반으로 한 호남의 재생에너지 환경이 24시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적인 첨단 반도체 공장 입지로 적합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반도체 전공정 라인은 1초만 전력이 끊겨도 수천억 원의 피해가 발생하는 대표적인 ‘24시간 연속 공정’ 산업이다. 기가와트(GW)급의 고품질 전력이 상시 균일하게 공급돼야 하지만, 호남 재생에너지 설비의 47%가량을 차지하는 태양광은 일조량에 따라 발전량이 흔들인다.

안정성을 메우기 위해 LNG 발전이나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연계할 경우, 화력발전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발전 단가(SMP) 부담을 고스란히 기업이 짊어져야 한다.

하루 수십만 톤이 필요한 초순수(공정용수) 공급도 변수다. 기후위기로 인해 최근 호남 지역에 장기 가뭄이 빈발하는 추세를 감안할 때, 가뭄 시 인근 주암댐 등의 수량만으로 주민 생활용수와 반도체 공업용수를 갈등 없이 충당할 수 있을지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호남 팹 투자, 파격적 혜택 필요프로젝트 성패 책임, 정부도 부담해야

기업들이 짊어져야 할 리스크는 인프라에만 그치지 않는다. 반도체 산업은 설계(팹리스), 후공정(OSAT), 소부장 협력사가 밀집해야 효율성이 극대화된다. 이미 수도권을 중심으로 구축된 반도체 생태계를 분산할 경우 물류비용 증가와 생태계 파편화에 따른 재무적 부담이 발생한다.

고질적인 인력난도 걸림돌이다. 반도체 석·박사급 인력의 수도권 이남 근무 기피 현상이 여전한 상황에서, 호남 팹으로 우수 엔지니어를 유인할 구체적 대안은 미비한 상태다. 최첨단 공장을 지어놓아도 이를 돌릴 핵심 설계·공정 인력을 구하지 못하면 팹 자체가 무용지물이 된다.

이 같은 우려에 이재명 대통령은 “기업들에 위험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 역량을 대대적으로 투입하겠다”며 청와대 직할 담당관을 두고 직접 챙기겠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정부는 전력계통영향평가 신속 처리, 차세대 전력망 적기 구축, 지역별 전기요금제 도입 등의 지원책을 제시했다.

이에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파격적인 지원책과 특별 관리를 약속한 점은 긍정적”이라면서도 “다만 국가적 대형 인프라 구축은 부처 간 이해관계나 지역적 이해상충으로 지연되는 경우가 많았던 만큼, 정부의 약속이 말에 그치지 않고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속도감 있게 실행되는지가 관건”이라고 전했다.

현진권 자유분권포럼 대표는 “기업이 정부의 요청에 따라 대규모 투자안을 수용한 만큼, 이번 프로젝트 성패의 책임은 정부로 넘어갔다”며 “파격적인 혜택이 신속하게 집행되지 못한다면 이번 투자는 기업에 천문학적인 비용 부담만 지운 최악의 ‘정치 실패’로 귀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종합 인기기사
© 미디어펜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