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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서 시작한 우미 40년…故 이광래 창업주가 남긴 '마음 경영'

입력 2026-07-10 14:08:09 | 수정 2026-07-10 15:16:37
조태민 기자 | chotaemin0220@mediapen.com
[미디어펜=조태민 기자]

이광래 우미그룹 창업주. 1982년 삼진개발주식회사(現 우미건설)를 설립하며 건설업에 뛰어들었고, 지난해 7월9일 9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사진=우미건설

컨테이너 사무실과 직원 1명. 우미의 시작은 거창한 사옥도, 대규모 자본도 아니었다. 이광래 창업주는 현장 사무실에 간이침대를 들여놓고 설계부터 공정, 품질, 원가까지 직접 챙기며 우미 40년의 첫 장면을 열었다.

지난 9일은 이 창업주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1933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그는 군 경리장교로 복무한 뒤 1982년 우미건설의 전신인 삼진개발주식회사를 세우며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우미의 첫 공동주택 사업은 1984년 완공한 삼진맨션이었다. 100.21㎡ 18가구, 3층 규모의 작은 연립주택이었다. 규모로 보면 크지 않았지만, 우미가 주택사업에 발을 내디딘 첫 기록이었다. 이후 1986년 광주 주월동 '라인광장아파트' 800여 가구를 분양하며 대규모 공동주택 사업으로 보폭을 넓혔다.

지역 건설사로 출발한 우미는 1990년대 들어 광주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1991년 순천 연향지구 300가구 분양을 계기로 전남으로 사업지를 확대했고, 1999년 용인 동천지구에서 수도권 첫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용인 죽전, 오산 수청, 남양주 호평, 평택 등 수도권을 거쳐 대전, 여수, 울산, 전주, 화성 동탄 등 전국 주요 도시로 사업 무대를 넓혔다.

그가 남긴 경영 철학은 단순한 외형 확장보다 '어떤 집을 짓느냐'에 가까웠다. 그는 항상 '마음으로 집을 짓는다'는 말을 강조했다. 돈을 벌기 위해 집을 짓는 업자가 아니라, 내 집을 짓는 가장의 마음으로 주택사업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 기준은 품질과 안전, 조경에 대한 집요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우미는 2000년대 초반 11층 이상 아파트의 6층 이상에 자동식 소화기 설치가 의무였던 시기에도 2001년부터 1~5층 저층부 각 가구에 자동식 소화기를 설치했다. 제도보다 한발 앞서 입주민 안전을 챙기려 한 조치였다.

조경에 대한 관심도 남달랐다. 그는 출장이나 여행 중 호텔에 묵을 때마다 조경을 유심히 살피고 사진으로 남긴 뒤 현장에 적용했다. 2003년에는 아파트 조경공사 시공기준안을 마련해 단지 출입구 형태, 세대 전후면 폭, 계절별 수종, 외곽 담장과 고저 차이에 따른 조경 기준까지 현장에 적용했다.

2006년 도입한 브랜드 '린(Lynn)'도 이 같은 기준의 연장선에 있었다. '린'은 한자 '이웃 린(隣)'에서 의미를 가져왔다. 단순히 사는 공간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이 교류하는 생활공간을 만들겠다는 뜻을 담았다. 2009년 화성 동탄 입주민들이 시공 품질에 만족해 단지 안에 감사 기념비를 세운 일은 우미린이 수도권 시장에 안착하는 상징적 장면으로 남았다.

이런 방식은 실제 성과로도 확인됐다. 국토교통부 주최 소비자만족도 평가에서 우미는 2009년부터 3년 연속 우수업체로 선정됐는데, 당시 3회 연속 선정된 곳은 삼성물산·포스코건설과 우미 세 곳뿐이었다. 2019년 12월 부동산114·한국리서치의 '베스트아파트 브랜드' 설문조사에서는 대기업 계열사가 대부분인 10위권 안에 중견사로는 유일하게 '린'이 이름을 올렸고, 이 순위는 현재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광래 창업주는 협력업체와의 관계에서도 소신을 지켰다.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협력사 자금 결제를 미루지 않았고, 우수 협력업체 평가와 인센티브 지급 등을 통해 상생 구조를 만들려 했다. 깨끗한 납세도 경영 기준으로 삼아 2005년 성실납세 대통령 표창을 포함해 생전 총 5회의 성실납세 표창을 받았다.

사회공헌도 그의 경영에서 빠지지 않았다. 2006년 사회공헌을 위해 금파재단, 현재의 우미희망재단을 설립했고, 국가유공자 주거개선사업에도 일찍부터 참여했다. 주택사업으로 성장한 기업이 다시 주거 취약계층과 사회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바탕에 있었다는 평가다.

이 같은 공로는 2019년 건설의 날 금탑산업훈장 수훈으로 이어졌다. 1982년 건설업에 뛰어든 지 37년 만에 받은 건설업계 최고 영예였다. 대기업 계열 건설사 중심의 주택시장에서 우미가 중견 건설사로 브랜드 경쟁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도 이 창업주가 쌓아온 품질과 신뢰의 시간이 자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바통을 이어받은 이석준 부회장은 우미를 주택사업을 넘어 종합부동산 회사로 넓히고 있다. 프롭테크·자산운용 분야 투자를 확대하는 한편, 현장에는 프리콘·BIM·드론·로봇 등 스마트건설 기술을 순차적으로 도입하며 사업 구조 전환을 이어가고 있다.

[미디어펜=조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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