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동하 기자] 고부가가치 친환경 선박 발주를 싹쓸이하며 '슈퍼 사이클'에 진입한 국내 조선업계가 내홍에 휩싸였다. 수주 랠리로 도크(건조 공간)를 꽉 채운 긍정적 지표 이면에는 성과급을 요구하는 노동계의 '하투(夏鬪)'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원가 압박마저 거세지면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등 조선업계의 밸류체인 사수전에 비상등이 켜졌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계는 올해 시행된 노란봉투법 영향을 톡톡히 받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 노조의 성과급 투쟁 이후 노조의 투쟁이 더욱 거세진 모습이다. 조선업계 역시 최근 긴 부진을 겪은 이후 호황으로 돌아선 상황이어서 더욱 거센 반발에 직면한 상황이다.
고부가가치 친환경 선박 발주를 싹쓸이하며 '슈퍼 사이클'에 진입한 국내 조선업계가 내홍에 휩싸였다. 사진은 HD현대 조선소 전경./사진=HD현대 제공
◆ 성과급 청구서 내민 노조…다가오는 하투 리스크
국내 조선업계에 올여름 노무 리스크는 치명적인 뇌관으로 부상했다. 완성차 업계의 부분 파업에 이어, 임금 인상과 성과급 확대를 요구하는 노동계의 릴레이 투쟁이 조선 업계 전반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슈퍼 사이클 진입으로 축포를 터뜨려야 할 시점에 오히려 선박을 만드는 핵심 생산 라인이 멈춰 설 위기에 처한 셈이다.
수주 랠리와 선가 상승으로 주요 기업들의 흑자 폭이 본격적으로 커지면서 그간 불황기 동안 고통을 분담해 온 노조의 보상 요구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는 구조적 모순이 발생했다. 하지만 실제 선박을 성공적으로 건조해 선주에게 인도하는 시점에 대금의 대부분이 들어오는 조선업 특유의 수익 구조상 사측의 당장 가용한 현금 흐름은 넉넉하지 않아 노사 간의 평행선은 쉽게 좁혀지지 않고 있다.
도크 가동이 중단되고 필수 공정이 지연될 경우 조선업계가 치러야 할 대가는 상당하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친환경 고부가가치 선박은 엄격한 납기 준수가 생명인데 노사 갈등으로 인해 선박 인도가 늦어지면 선주사에게 천문학적인 지체상금을 물어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재무적 손실을 넘어 수십 년간 글로벌 해운 시장에서 쌓아온 한국 조선업의 신뢰도마저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치명적인 암초로 작용하게 된다.
◆ 최저임금 1만700원 쇼크…벼랑 끝 하청 생태계
내부적인 대형 노조의 파업 리스크와 더불어 실제 현장에서 배의 뼈대를 만드는 하위 공급망의 연쇄 붕괴 우려도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노동계와 경영계의 극심한 대립 끝에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인상된 1만700원으로 최종 확정되면서다. 노동집약적 산업의 특성상 용접과 블록 조립을 도맡는 사내 하청 밸류체인의 원가 부담이 사실상 임계점을 넘었다는 현장의 호소가 쏟아졌다.
현재 야드 현장에서 땀 흘리는 사내 하청업체들은 이미 고질적인 내국인 인력 이탈 현상에 시달리며 외국인 근로자 도입 등으로 근근이 조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저임금의 가파른 상승은 기본급 인상뿐만 아니라 야간 및 연장 수당 등 각종 제반 비용의 연쇄 폭등을 불러온다. 이미 얇은 마진으로 버티고 있는 영세 기자재 및 하청업체들의 수익성이 완전히 붕괴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후판 등 원자재 가격의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가운데 직접적인 인건비 쇼크까지 덮치며 벼랑 끝에 몰린 것이다.
이는 단순히 하청업체 개별의 경영난으로 끝나지 않고 K-조선 전체의 밸류체인 셧다운으로 직결될 수 있는 중대한 딜레마를 내포했다. 원청인 대형 조선사들이 하청업체의 건조 단가를 대폭 인상해 주지 않으면 하위 생태계가 줄도산할 위험이 크지만, 원청 역시 글로벌 선박 가격 경쟁력을 유지해야 하기에 무턱대고 비용을 전부 떠안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국면이다.
◆ 샌드위치 갇힌 HD현대·한화오션, 밸류체인 사수 총력전
결과적으로 국내 조선업계는 외부의 기록적인 수주 훈풍과는 대조적으로 내부의 걷잡을 수 없는 인건비 폭등 및 노사 갈등이라는 전형적인 압박 딜레마에 갇혔다. 넘쳐나는 수주 일감을 내부 생산 역량이 원활하게 소화하지 못하는 병목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따라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등 조선업계 투톱은 파국을 막기 위해 밸류체인 전반의 위기 관리에 총력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당장 발등의 불이 떨어진 납기 지연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해 양사는 노조와의 임단협 협상을 최대한 조기에 타결하여 내부 생산 불확실성을 걷어내는 데 집중했다. 막대한 자국 정부의 지원금과 값싼 노동력을 무기로 턱밑까지 추격해 오는 중국 조선사들을 따돌리기 위해서는 흔들림 없는 공정 관리와 압도적인 납기 준수 역량이야말로 K-조선이 내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중장기적으로는 인건비 리스크에 취약한 노동집약적 밸류체인을 근본적으로 탈피하기 위한 체질 개선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스마트 야드 구축과 용접 로봇 도입 등 공정 자동화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려 인력 의존도를 낮추고 하청업체와의 납품 단가 연동제 등 실질적인 상생 방안을 마련해 건강한 해양 산업 생태계를 복원하겠다는 셈법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수주 실적이 좋아도 야드 현장에서 선박을 제때 만들지 못하면 슈퍼사이클의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며 "단기적인 노사 갈등의 조기 봉합은 물론 장기적으로 스마트 야드 전환과 하청 생태계의 숨통을 틔워주는 원가 구조 개선이 병행되어야만 진정한 흑자 전환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동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