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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잘나가는 한국경제, 진짜 강해졌나-반도체·AI·고환율이 던진 질문

입력 2026-09-01 13:43:18 | 수정 2026-09-01 13:43:44
김태균 편집국장 | ksgit@mediapen.com
2026년 하반기 세계 경제는 겉으로 보면 예상보다 강하다. 미국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알파벳·아마존·메타 등 빅테크의 막대한 AI 투자가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전력, 건설투자를 동시에 끌어올리며 경제 성장을 떠받치고 있다. 한국 역시 AI 메모리 호황을 등에 업은 반도체 수출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뿐 아니라 전체 수출과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있다. 그러나 숫자 아래에서는 다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국가부채는 사상 처음 40조달러를 넘어섰고 장기 국채금리는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가 막대한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채를 쏟아내는 동시에 빅테크들도 AI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천문학적인 자금을 조달하면서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자금 수요가 동시에 커지고 있다. 소비 증가세가 둔화하는 가운데 물가와 금리는 쉽게 내려가지 않고 고유가와 지정학적 위험도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착시’가 나타난다. 반도체 수출과 대기업 실적은 강하지만 중소기업과 내수업종, 비IT 산업에서는 경기 회복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크다. 반도체라는 특정 산업이 한국 경제 전체의 숫자를 끌어올리면서 업종과 기업 규모에 따른 격차가 확대되는 ‘K자형 성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원화 약세 역시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는 ‘원화 약세=수출기업 호재’라는 공식이 통했지만 해외 생산 확대와 중국 기업의 경쟁력 향상, 원자재 수입가격 상승 등으로 고환율의 수출 증대 효과는 과거보다 약해지고 있다. 미디어펜은 AI와 반도체가 만들어낸 호황의 숫자 뒤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부채·장기금리·소비·환율·산업 양극화라는 경제의 균열을 들여다본다. 글 싣는 순서는 ①반도체가 끌어올린 한국경제…수출 호황에도 왜 ‘온도차’ 날까 ②AI가 가린 미국경제의 균열…40조달러 빚과 빅테크가 벌이는 ‘돈 쟁탈전’ ③원·달러 1400원이 뉴노멀?…원화 약세인데 수출기업은 왜 못 웃나 ④‘싼 원화’ 시대는 끝났다…‘비싸도 팔리는 한국’ 어떻게 만들까 순으로 게재한다. [편집자주]

한국은행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3%까지 끌어올린 배경에도 반도체가 있다. 한은은 앞으로도 반도체 경기 호조로 수출과 투자의 높은 증가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경제에 반도체라는 강력한 성장엔진이 달린 것이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①반도체가 끌어올린 한국경제…수출 호황에도 왜 ‘온도차’ 날까

[미디어펜=김태균 편집국장]한국 수출이 전에 없던 속도로 늘고 있다. 지난 7월 수출은 988억9000만달러로 전년 동월보다 62.8% 증가했다. 사상 처음 월간 수출 1000억달러를 넘어선 6월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많은 규모다. 그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다.

7월 반도체 수출은 410억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달보다 무려 178.8% 증가했다. 전체 수출 100달러 가운데 약 41달러가 반도체에서 나온 셈이다. 인공지능(AI) 서버 투자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HBM과 서버용 D램, 기업용 SSD 수요가 급증한 결과다.

한국은행도 지난 27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6%에서 3.3%로 대폭 올렸다. 숫자만 보면 한국경제가 강한 호황 국면에 들어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반도체가 잘된다는 것과 한국경제 전체가 잘된다는 것은 같은 의미일까.

수출 100달러 중 41달러가 반도체…한국경제의 ‘슈퍼 엔진’

현재 한국경제에서 반도체의 힘은 압도적이다. 7월 전체 수출은 988억9000만달러였고 이 가운데 반도체가 410억달러를 차지했다. 전체 수출의 약 41.5%다. ICT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비중은 더 커진다. 7월 ICT 수출은 533억6000만달러로 전체 수출의 54%를 차지했다. 한국 수출의 절반 이상이 ICT에서 나왔다는 의미다.

AI가 이러한 흐름을 만들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들이 AI 데이터센터를 늘리면서 GPU와 서버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들어가는 HBM과 D램, SSD 수요가 함께 늘어난다. 그 결과 AI 투자 확대→ 데이터센터 증가→ GPU·서버 증가→ HBM·D램·SSD 수요 증가→ 한국 반도체 수출 증가라는 강력한 연결고리가 만들어졌다.

한국은행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3%까지 끌어올린 배경에도 반도체가 있다. 한은은 앞으로도 반도체 경기 호조로 수출과 투자의 높은 증가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경제에 반도체라는 강력한 성장엔진이 달린 것이다.

그렇다고 ‘반도체만 좋다’도 아니다…문제는 회복의 속도차

하지만 현재 상황을 ‘반도체만 좋고 나머지 경제는 모두 나쁘다’고 보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7월에는 반도체뿐 아니라 컴퓨터와 휴대전화, 통신장비 등 주요 ICT 품목의 수출이 함께 증가했다. 

한국은행 역시 내수가 완전히 침체돼 있다고 보지 않는다. 소득여건 개선과 함께 소비 회복세가 점차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한국경제의 모습을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반도체 독주 속 불균등한 회복’​에 가깝다.

반도체가 압도적으로 앞서가고 다른 산업과 소비가 뒤따라가는 구조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반도체 수출이 급증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매출과 이익이 늘어난다. 기업이 투자를 늘리면 장비·소재·부품기업의 주문이 증가한다. 고용과 임금이 늘어나면 소비로 연결될 수 있다.

즉 반도체 수출→ 기업이익→ 설비투자→ 협력업체→ 고용·소득→ 소비라는 경로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반도체 호황은 경제 전체의 호황으로 확산될 수 있다. 문제는 이 연결고리가 얼마나 강하게 작동하느냐다. 한국은행이 향후 성장경로의 주요 불확실성으로 ‘반도체 경기의 확장 및 내수 파급 정도’​를 꼽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도체를 덜 키울 게 아니다…호황이 흐르는 통로 넓혀야

따라서 한국경제의 과제는 반도체 의존도를 낮춘다는 이유로 반도체를 덜 키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가진 반도체 산업은 더욱 키워야 한다. 진짜 문제는 반도체가 벌어들인 돈과 투자가 경제의 다른 영역으로 얼마나 흘러가느냐다.

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기 위해 국내 장비와 소재기업이 함께 성장하고, AI 반도체 기술이 자동차·로봇·방산·바이오 같은 산업의 경쟁력 향상으로 연결된다면 반도체 호황의 경제적 효과는 훨씬 커진다. 반대로 반도체 기업의 이익과 수출만 급증하고 다른 산업과 고용·소비로 충분히 확산되지 않는다면 성장률 숫자와 국민이 느끼는 경기 사이의 온도차는 계속될 수 있다.

한국경제의 다음 과제는 분명하다. 반도체를 덜 키우는 것이 아니라 반도체 호황을 경제 전체의 성장으로 확산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반도체의 슈퍼사이클을 만들어낸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 출발점에는 미국의 AI 투자 붐이 있다. 그런데 그 미국에서 또 다른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AI에 돈을 쏟아붓는 빅테크와 40조달러의 빚을 진 미국 정부가 동시에 세계 자본시장에서 막대한 돈을 필요로 하기 시작했다.


[미디어펜=김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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