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2012년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17살의 나이로 스크린에 등장했던 수지는 단숨에 대한민국 모든 이들의 가슴속에 '국민 첫사랑'이라는 풋풋한 이정표를 세웠다. 맑고 투명한 얼굴, 서툴지만 설레는 눈빛으로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던 그가 14년의 세월을 지나 이제 이별의 아픔과 상실을 담담히 감내하는 '실연'의 연기자로 깊고 원숙하게 익어가고 있다.
배우로서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수지가 오는 12월 개봉을 확정한 영화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으로 돌아온다. 백영옥 작가의 동명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번 작품에서 수지는 실연을 겪었지만 아직 완벽히 이별하지 못한 승무원 '사강' 역을 맡아 그간 선보인 적 없는 깊고 묵직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펼쳐 보인다.
공개된 작품의 시각적 이미지 속 수지는 더 이상 과거의 화사한 첫사랑 표상을 띠지 않는다. 포스터 속 정면을 가만히 응시하는 수지의 눈빛에는 이별 직후의 혼란과 가슴 깊이 차오른 슬픔이 고스란히 엉겨 있다. "끝났지만, 끝내고 싶어"라는 문구처럼 끝난 사랑의 부스러기를 그러안은 채 고통스러워하는 인물의 내면이 그의 깊어진 눈매에 그대로 담겼다.
수지가 이진욱과 연기 호흡을 맞추는 영화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 포스터.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함께 공개된 영상 속에서 수지는 특유의 나지막하고 짙은 음성으로 내레이션을 풀어내며 관객을 단숨에 몰입시킨다. 사랑이 떠나간 뒤에도 홀로 시간에 갇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마음을 담담히 읊조리다가,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는 그의 모습은 상실을 겪어본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첫사랑의 설렘을 대변하던 배우가 이제는 사랑의 종말을 온몸으로 견뎌내는 숙련된 아티스트의 얼굴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이번 연기는 그의 전작이자 2024년 개봉했던 영화 '원더랜드' 속 모습과 비교해도 확연한 결의 차이를 보인다. '원더랜드'에서 수지는 의식불명에 빠진 남자친구를 인공지능(AI) 서비스로 복원하며 판타지적 설정을 매개로 떠나간 사랑에 애틋하게 집착하는 정열적인 인물을 연기했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사랑을 놓지 못해 울부짖던 모습이 '원더랜드'의 핵심이었다면, 이번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에서의 사강은 극히 현실적인 공간 속에서 실질적인 이별을 마주하는 인물이다. 판타지적 상상력을 덜어낸 자리에 남은 오롯한 현실의 상처와 위로의 과정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한층 절제되고 밀도 높은 감정 연기가 요구된다.
수지의 이 같은 깊어진 연기 행보는 12월 극장가 복귀에 앞서 공개되는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현혹'에서도 한층 다채롭게 만날 수 있다. 일제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현혹'에서 수지는 매혹적이면서도 비밀스러운 여인 역을 맡아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예고하고 있다.
시대를 관통하는 치명적인 매력과 미스터리한 인물의 서사를 그리는 '현혹'을 통해 시대극의 묵직함과 매혹적인 아우라를 먼저 선보인 뒤, 연말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으로 가장 지극히 현실적이고 섬세한 감성 연기의 정점을 찍는 셈이다.
17살의 '건축학개론'이 선사했던 순수함에서 시작해 '원더랜드'의 애절함, 그리고 '현혹'의 치명적인 매력을 거쳐 마침내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에 다다른 수지. 사랑의 시작부터 끝, 그리고 그 너머의 위로까지 연기할 수 있게 된 서른의 배우 수지가 그려낼 진짜 이별의 풍경에 팬들의 기대가 모이고 있다.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