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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 '가능한 사랑', 결국 베네치아를 훔쳤다

입력 2026-09-13 10:59:01 | 수정 2026-09-13 10:59:01
이석원 부장 | che112582@gmail.com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이창동 감독이 8년 만에 선보인 신작 '가능한 사랑'으로 제83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며 세계 거장으로서의 저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현지 시각 12일 오후 7시 이탈리아 베네치아 살라 그란데(Sala Grande) 극장에서 열린 제83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영화 '가능한 사랑'의 이창동 감독이 경쟁 부문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품에 안았다. 이날 이창동 감독은 올해 심사위원이자 시상자로 나선 두기봉(두치펑) 감독으로부터 트로피를 전달받으며 전 세계 영화인들의 뜨거운 축하를 받았다.

12일 제83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이 영화제 두 번째 순위인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에서 심사위원인 중국의 두기봉(두치펑) 감독이 이창동 감독에게 은사자 트로피를 전달하고 있다./사진=넷플릭스 제공



무대에 오른 이창동 감독은 "수많은 사람들의 기다림과 인내가 없었으면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 영화를 같이 만든 모든 분들과 지금 느끼는 감정을 나누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제작을 지원한 넷플릭스 및 현장 스태프들에게 감사를 전한 뒤 "현장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영화에 생명을 준 전도연,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 네 분의 배우들에게 이 상을 돌린다"고 전했다.

이어 이 감독은 작품에 담긴 연출 의도와 메시지를 명확히 밝혔다. 그는 "노동이 사라져 가는 시대,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어져 가는 시대에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영화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질문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며 "이 상을 주신 것은 그 질문을 멈추지 말고 계속하라는 뜻으로 알겠다"고 덧붙였다.

이로써 이창동 감독은 지난 2002년 '오아시스'로 제59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은사자상(감독상)을 수상한 데 이어, 24년 만에 베네치아 경쟁 부문으로 복귀해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한국 영화가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경쟁 부문 최고상인 금사자상에 이어 2등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최초라는 점에서 한국 영화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이창동 감독은 지난 2002년 '오아시스'로 감독상과 신인여배우상(문소리)을 수상한 이후 24년 만에 은사자상을 다시 받았다./사진=넷플릭스 제공



시상식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창동 감독은 타인의 고통을 다루는 예술가로서의 윤리적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 감독은 "영화가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며 때로는 소비하는 요소가 많은데, 과연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관객과 나누고 싶었다"며 "영화를 만드는 작업 자체를 통해 그 고통을 함께 나누고 치유하는 방법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두기봉 감독 역시 이창동 감독의 신작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두기봉 감독은 "이창동 감독이 만든 작품들 중에서 '가능한 사랑'이 가장 성숙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며 "스타일이 매우 섬세하고 은은하며, 영화 속 모든 디테일과 그 안에 담긴 깊은 성찰들은 내가 감히 만들어내지 못할 영역"이라고 평가했다.

제51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참석 차 현지에 머물고 있는 주연 배우진도 기쁨의 소회를 전해왔다. 전도연은 "이번 수상이 감독님께서 다음 작품을 써 내려가시는 데 큰 동력이 되기를 바라며, 벌써부터 다음 영화가 궁금해진다"고 축하했다. 설경구는 "이 영화에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스럽고 자랑스럽다"고 말했으며, 조인성은 "소중한 결실은 한국 영화를 변함없이 사랑해 주신 팬들의 응원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조여정 역시 "감독님께 축하와 감사를 전하며, 하루빨리 더 많은 관객과 깊은 감동을 나누고 싶다"고 덧붙였다.

영화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와 그의 아내, 그리고 다큐멘터리 감독과 그녀의 남편이라는 두 부부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계기로 만나 서로 다른 삶과 내면에 숨겨진 욕망을 마주하는 과정을 그렸다. 인간의 관계와 감정, 선택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이창동 감독 특유의 절제된 연출과 전도연,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이 선보이는 밀도 높은 연기 앙상블이 돋보인다.

시상식을 마친 이창동 감독이 은사자상 트로피를 들고 살라 그란데 극장 밖 기자들과 팬들 앞에 섰다./사진=넷플릭스 제공



앞서 9월 6일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월드 프리미어로 첫 상영된 '가능한 사랑'은 상영 직후 7분간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내며 일찌감치 수상 기대감을 높였다. 또한 공식 시상식에 앞서 11일 전 세계 평론가들이 선정하는 제83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연맹상(FIPRESCI)을 수상하며 '오아시스' 이후 24년 만에 비평가연맹상을 재수권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비평가연맹 측은 "미묘한 힘의 관계를 완벽한 속도감으로 그려내며 계급, 환멸, 사랑, 욕망, 그리고 이야기의 윤리를 깊이 있게 탐구했다"고 호평했다.

영화제 2관왕 달성으로 거장의 변함없는 저력을 각인시킨 영화 '가능한 사랑'은 오는 9월 23일 국내 극장에서 먼저 개봉한 뒤, 11월 6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관객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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