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 국내 주식시장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던 개인 투자자들이 국내 반도체 대형주를 무더기로 팔아치우며 수급 지형에 급격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개인 투자자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월간 기준 순매도세로 전환한 것은 지난 5월 이후 5개월 만이다. 지속적으로 '반도체 올인' 기조를 유지하며 주가 하단을 단단히 떠받치던 개인들이 돌연 매도 우위로 돌아서면서 국내 증시의 수급 방정식과 향후 주도주 판도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예고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주식시장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던 개인 투자자들이 국내 반도체 대형주를 무더기로 팔아치우며 수급 지형에 급격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사진=김상문 기자
14일 한국거래소와 증권업계에 따르면, 증시 내부에서 국내 투자자들의 포지션 변경이 감지되고 있다. 한국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 11일까지 개인 투자자들은 삼성전자를 5조2120억원어치 순매도한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에서의 순매도액은 7조8180억원에 달한다. 두 종목을 합산한 개인의 매도 물량만 무려 13조원이 넘어서는 규모다.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4개월 연속으로 두 대형 반도체 주식을 공격적으로 사들이며 지수 하단을 방어하던 개인들의 매수 행진이 넉 달 만에 완전히 꺾인 셈이다.
개인들의 월별 순매수 추이를 살펴보면 이 같은 기류 변화는 더욱 뚜렷하다. 삼성전자에 대한 개인 순매수액은 지난 5월 9조6050억원에서 6월 17조1190억원까지 불어났으나, 7월 5조470억원, 8월 2조380억 원으로 증가세가 가파르게 둔화한 끝에 이달 들어 매도 우위로 돌아섰다. SK하이닉스 역시 5월과 6월 각각 15조원대 순매수를 기록한 이후 7월 9조100억원, 8월 1조740억원으로 매수 규모가 줄어들었고, 결국 이달 들어 거센 매도 폭탄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개인이 국내 반도체 투자를 거두어들이는 사이 외국인 투자자들도 여전히 보수적인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 외국인은 이달 1일부터 11일까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각각 1조9600억원씩 순매도하며 지난 5월 이후 5개월 연속 매도 우위 기조를 이어가는 중이다. 다만 이 기간 기타법인이 삼성전자를 4조6580억원, SK하이닉스를 9조8900억원 대거 순매수하며 주가 하단을 방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수급 주체들의 이탈과 유입 속에서 두 반도체 대형주의 주가 흐름은 엇갈린 양상을 나타냈다. 이달 들어 11일까지 삼성전자는 보합권에서 약간 하락한 반면, SK하이닉스는 비교적 견조한 상승세를 기록했다. 다만 대내외적 불확실성 장세가 이어지면서 주가흐름은 여전히 불안정한 모습이다. 그나마 SK하이닉스의 경우 일부 특정 창구와 기타법인 중심의 강한 매수세가 집중되면서 지수 방어력을 키운 것으로 분석된다.
개인 투자자들이 돌연 대규모 반도체 차익 실현에 나선 배경으로는 2분기 실적 시즌 이후 반도체 업종 전반의 가파른 이익 개선 모멘텀이 다소 둔화됐다는 사실이 손꼽힌다. 여기에 주가가 지루한 박스권 흐름을 보이거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자 피로감을 느낀 개인 자금이 국내 증시를 떠나 해외 빅테크 시장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모습도 포착된다.
한국예탁결제원 통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개인 투자자들은 미국 증시에서 알파벳을 7326만 달러어치 순매수했고, 브로드컴(6522만 달러)과 메타(5409만 달러) 등 주요 인공지능(AI) 및 기술주를 대거 사들였다. 이들 세 종목은 모두 이달 국내 투자자의 해외주식 순매수 상위권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뚜렷한 '투자처 다변화' 현상을 입증하고 있다.
관건은 최근의 수급 변화가 '주도주 판도 변화'로까지 이어지느냐로 수렴된다. 그간 대형 반도체 주도주의 그늘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여타 업종과 종목들로 투자자의 시선이 분산되는 국면으로 전환된다면 소위 순환매 장세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아울러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종목들에 대한 '재발견'에 대한 투자 관점도 존재한다. 김록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메모리 업황은 견조하다"고 전제하면서 "가격 상승이 지속되고 있음은 물론 예상보다 높은 상승폭도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메모리 가격의 기저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만큼 상승폭 자체는 둔화되고 있으나, 시장 예상치를 상회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