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소희 기자]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북극항로 개척에 대해 글로벌 항만·해운 전문가들이 기술적 가능성은 인정하면서도 상업적 경쟁력을 확보하기까지 상당한 제약이 따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특히 컨테이너 해운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핵심인 만큼 계절적 운항 제한과 높은 운항비용, 기항지 부족 등이 북극항로의 대규모 상용화를 가로막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놨다.
15일 부산에서 개막된 ‘제14회 부산항만컨퍼런스(BIPC 2026)’에서 만난 글로벌 항만·해운업계 관계자들은 북극항로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짚었다.
영국 해운물류 전문 컨설팅업체 드류리의 팀 파워 대표는 북극항로에 대해 “이미 시범 운항이 이뤄졌기 때문에 운항 자체는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서도 “핵심은 이 시장이 얼마나 커질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북극항로가 기존 아시아~유럽 항로를 대체할 만큼 성장하려면 무엇보다 운항 비용과 운임 측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파워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컨테이너 운송시장이 가격에 민감한 ‘고도화된 규격 상품(Commoditized)’ 시장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북극항로가 기존 항로보다 저렴한가, 아니면 더 비싼가가 핵심 질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북극항로는 연중 운항이 어렵다는 계절성이 가장 큰 제약으로 꼽힌다. 여기에 북극 빙하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쇄빙선이나 쇄빙 견인선의 지원이 필요해 운항비용이 높아질 수 있다.
드류리 대표는 “몇 년 전 계산한 결과 북극항로의 TEU당 운항 비용이 기존 항로보다 훨씬 높았다”며 “계절적으로 운항이 제한되고 쇄빙 견인선의 호위를 받아야 하는 만큼 비용 부담이 크다”고 설명했다.
기존 항로가 가진 ‘기항지 네트워크’도 북극항로가 넘어야 할 과제로 봤다. 기존 컨테이너 항로에서는 부산과 중국 등 주요 항만을 거쳐 동남아시아 등으로 추가 기항하면서 선박의 화물을 채울 수 있지만 북극항로에서는 이 같은 기항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드류리 대표는 “대형 선박을 채우려면 여러 항만에 기항해야 하는데 북극항로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며 “결국 북극항로 시장은 소규모에 그칠 가능성이 높고 해운 경기 침체에도 매우 취약하다”고 전망했다.
특히 향후 컨테이너선 공급과잉과 운임 하락 가능성이 북극항로의 경쟁력을 더욱 떨어뜨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파워 대표는 2028년경 운임 하락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운임이 낮은 환경에서는 북극항로가 생존하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높은 비용 구조 때문이다.
국제항만협회(IAPH) 총재인 옌스 마이어 함부르크항만공사 CEO 역시 북극항로에 대해 비슷한 시각을 내비쳤다.
마이어 총재는 북극항로에 대해 “현재 수익성이 맞지 않으며 보조적인 수단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선박이 부산항에 들어오더라도 항만 차원의 대규모 시설 투자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봤다. 북극항로를 운항하는 선박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기존 부산항의 하역장비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이어 총재는 북극항로가 중국의 일대일로나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유사한 보조적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대형 컨테이너선이 만들어내는 규모의 경제를 대체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는 북극항로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활용하려는 국가 전략이 항로 개척 자체보다 물동량 확보와 가격 경쟁력이라는 시장 논리에서 검증돼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마이어 총재는 북극항로 자체에 지나치게 집중하기보다 기존 서비스와 비즈니스 경쟁력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도 조언했다. 아울러 부산항이 AI 등 새로운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기술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투자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극항로 시범 운항은 이미 시작됐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국내 컨테이너선으로는 처음으로 팬스타 아크로호가 북극항로 시범 운항에 나섰다. 북극항로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최단 거리 항로로 지정학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현시점에서 기존 항로를 대체할 수준의 상업성을 확보하기에는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는 분석이 나온다.
“항만공사 통합, 효율성만 볼 문제 아니다”
이날 글로벌 항만업계 수장들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내 4개 항만공사 통합에 대한 질문에도 의견을 내놨다.
정부는 부산·울산·인천·여수광양 등 국내 4개 항만공사를 통합해 과당 경쟁과 사업 중복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마이어 총재는 항만별 기능 차이와 경쟁이 가져오는 효율성, 공급망 회복탄력성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이어 총재는 부산항과 울산항의 기능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사례로 들었다. 부산항은 컨테이너를 중심으로 하는 반면 울산항은 에너지 분야에 특화돼 있어 단순히 사업이 겹친다고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특히 그는 공급망에 차질이 발생했을 때 물동량이 특정 항만에 집중돼 있으면 다른 항만으로 신속하게 전환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일정 수준의 기능 중복이 오히려 회복탄력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이어 총재는 “항만 간 경쟁은 효율성을 자극한다”며 주요 항만이 전체 물동량의 상당 부분을 처리하더라도 일정 비율은 다른 항만들이 담당하는 구조가 공급망 안정성 측면에서 필요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독일의 사례도 언급했다. 독일은 중앙정부 차원의 ‘국가 항만 전략’을 마련하지만 철도·도로·파이프라인 등 항만 연계 인프라에 대한 국가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동시에 개별 항만의 의견이 전략 수립 과정에 반영되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부산항만공사 측은 정부의 통합 방침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항만별 특성과 지역산업과의 연계성, 역사성 등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송상근 부산항만공사 사장은 “정부의 정책이 정해지면 후속 조치가 잘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야 한다”면서도 “4개 항만공사 통합을 위해서는 법률 개정이 필요한 만큼 국회 논의 과정에서 항만별 특성과 지역산업과의 연계, 역사성 등에 대한 우려와 해외 사례가 충분히 논의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번 부산항만컨퍼런스에서 글로벌 항만·해운 전문가들이 던진 메시지는 새로운 항로와 조직 개편 모두 ‘규모’ 자체보다 실제 경쟁력과 회복탄력성을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극항로 역시 운항 가능성만으로 시장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비용·운임·기항 네트워크라는 상업적 조건을 충족해야 하고, 항만공사 통합 역시 효율성뿐 아니라 항만별 기능과 공급망 안정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게 주된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