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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종속 끝"...글로벌 빅테크 사로잡은 삼성전기의 반전 드라마

입력 2026-10-06 14:22:16 | 수정 2026-10-06 14:22:16
조우현 기자 | sweetwork@mediapen.com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삼성전기가 반세기만에 부품 조립 하청 기업에서 글로벌 AI 인프라를 대표하는 주축으로 성장했다. 대규모 투자와 꾸준히 이어온 기술 고도화 작업이 결실을 맺으면서, 독자적 기술 경쟁력을 통해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핵심 파트너로 발돋움한 모습이다. 

일본 산요전기와의 합작법인인 ‘삼성-산요파츠’로 첫발을 내디뎠을 당시 삼성전기의 주력 사업은 흑백 TV용 부품 조립이었다. 자체 원천 기술이 없어 튜너와 편향코일 등 핵심 부품 도면을 일본에서 그대로 들여와 단순 조립해 납품하던 전형적인 가공 공장에 불과했다. 그러나 50여 년이 흐른 지금의 삼성전기는 일본의 핵심 부품 시장을 위협하며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앞다퉈 찾는 첨단 AI 하드웨어 파트너로 탈바꿈했다.

삼성전기 수원사업장 전경 /사진=삼성전기 제공


6일 삼성전기는 글로벌 대형기업과 약 2900억 원(2억1000만 달러) 규모의 AI 서버용 MLCC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2027년 1년간 공급되는 물량으로, 올해 들어서만 6번째 장기공급계약(LTA)이다. 이로써 삼성전기는 올 5월부터 실리콘 커패시터, AI 서버용 MLCC, 인덕터 등에서 공시 기준 누적 3조9000억 원에 달하는 대규모 장기공급계약을 성사시키며 고부가 중심의 포트폴리오 전환을 가속하고 있다.

◆ IT 세트 의존 탈피…빅테크 직공급 늘려 체질 개선

업계에서는 반세기가 지난 현재 삼성전기의 위상이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평가한다. 일본 기술을 빌려 쓰던 조립 하청사가 이제는 일본 기업들이 수십 년간 쌓아온 고부가 하이엔드 부품 시장에 진입했고, 글로벌 인공지능(AI) 인프라를 주도하는 핵심 공급사로 안착했다. ‘부품 조립 하청’에서 ‘글로벌 AI 인프라의 핵심 축’으로 진화한 것이다.

과거 삼성전기는 완제품 판매 실적에 전사 실적이 연동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부품 자립의 기틀 속에서 세트 사업을 든든히 뒷받침해 왔지만, 스마트폰과 PC 등 IT 완제품 수요가 위축되면 부품 실적도 함께 하락하는 구조가 약점으로 지적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흐름이 달라졌다. 글로벌 IT 세트 수요 둔화 국면 속에서도 글로벌 빅테크향 대규모 부품 수주가 잇따르며 실적을 견인하고 있다.

특히 AI 서버와 고성능 컴퓨팅(HPC) 부품의 직공급을 대폭 늘리며 특정 완제품의 흥망성쇠에 흔들리지 않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독자적인 기술력만으로 글로벌 기업들을 핵심 고객사로 끌어들이며 고객사 다변화를 이뤄낸 셈이다.

◆ AI 서버 MLCC·기판 잭팟…‘기술 고도화’와 4.2조 원 투자 결실

체질 개선의 밑바탕에는 집요한 기술 고도화와 대규모 투자가 자리 잡고 있다. 범용 제품 위주에서 물리·화학·재료공학 기술이 집약된 하이엔드 제품으로 포트폴리오를 완전히 전환했다.

전자산업의 쌀로 불리는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부문에서는 일반 서버 대비 10배 이상 탑재되는(서버 랙 기준 최대 60만 개) AI 서버용 시장에서 40%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하며 시장 주도권을 확보했다.

1메가와트(MW)급 이상 초고전력 AI 랙 환경에서 발생하는 극단적인 발열과 전압 변동을 견뎌내는 세라믹 미립화 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빅테크 데이터센터 공급망을 선점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AI 서버용 MLCC 시장은 2025년 14억 달러에서 2030년 58억 달러로 연평균 약 34% 성장할 전망이다.

반도체 패키지기판(FC-BGA) 사업 역시 과감한 선제 투자가 결실을 맺고 있다. 세종사업장에 역대 최대 규모인 4조2700억 원을 투입해 AI 서버용 생산 능력을 대폭 확충하고 있다.

칩셋이 거대화되는 이종접합 트렌드 속에서 대면적·초고다층 기판의 최대 난제였던 휨 현상 제어와 미세 배선 공정 안정화를 완벽히 해결하며, 글로벌 빅테크의 까다로운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고 대형 수주를 따냈다.

◆ ‘일본 부품 하청’서 ‘글로벌 톱티어 경쟁사’로

업계에서는 이번 수주 랠리를 한일 부품 산업 지형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평가한다. 고신뢰성 MLCC는 일본 무라타제작소가, 대면적 서버용 FC-BGA는 일본 이비덴과 신코덴키 등이 시장을 사실상 독점해 왔다. 기술 진입장벽이 워낙 높아 후발주자의 진입이 극도로 제한적이었던 영역이다.

삼성전기는 지속적인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물리적 품질 격차를 단기간에 좁혔고, 단일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려는 글로벌 고객사들의 대체 수요를 기술력으로 흡수했다. 과거 일본 도면을 받아 조립하던 하청 관계에서 벗어나, 이제는 일본 기업들이 주도하던 최고난도 시장에서 실질적인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삼성전기는 ‘Mi-RAE’ 비전 아래 유리기판(글라스 코어)과 실리콘 커패시터 등 차세대 부품 기술 선점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스미토모화학그룹 등 글로벌 파트너와의 협업을 통해 기존 플라스틱 기판의 미세화 한계와 열 변형 문제를 극복할 유리기판 상용화 로드맵을 선제적으로 구체화하는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산화 부품이 없어 일본 기술에 기대 조립 공장으로 출발했던 기업이 반세기 만에 글로벌 AI 인프라의 핵심 부품 공급사로 체질을 개선했다”며 “과거의 기술 종속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기술 경쟁력과 수주 실적으로 글로벌 시장의 주요 축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라고 평했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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