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하늘 기자] 국내 정유 4사가 올해 3분기 호실적을 거둘 것으로 전망되면서 정부의 석유 최고가격제 손실보전을 바라보는 시선도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수익성이 크게 개선된 기업에 정부가 재정까지 투입해야 하느냐는 의문이 나올 수 있지만 업계는 전체 사업의 실적과 정부 정책에 따른 국내 공급 부문의 손실은 구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SK에너지와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는 중동발 석유제품 공급 불안에 따른 정제마진 상승으로 3분기 실적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별개로 손실보전 규모와 정산 기준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정부의 재정 부담과 최고가격제 출구전략이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여수산업단지 전경./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호실적에도 손실보전은 별개…정유업계 "국내 공급 손실 구분해야"
일각에선 올해 정유 4사의 3분기 합산 영업이익이 5조 원을 웃돌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0%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제 석유제품 수급이 타이트해지면서 제품 가격과 수출 수익성이 높아진 데다 지난해 실적 부진에 따른 기저효과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석유제품 수급이 워낙 타이트하고 제품 가격도 높아 수출 부문의 수익성이 상당히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정유사들이 큰 폭의 실적 개선을 예고하면서 정부가 별도로 손실을 보전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 의문이 제기될 여지도 있다. 다만 업계는 최고가격제에 따른 손실은 기업 전체의 수익성과 별개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는 지난 3월 13일 중동발 유가 급등에 따른 민생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석유 최고가격제를 도입했다. 정유사가 국내에 공급하는 휘발유·경유·등유의 가격에 상한을 설정하는 대신 이에 따른 손실을 재정으로 보전하기로 했다.
최고가격제에 따른 손실보전은 이처럼 국내 공급 부문에 한정되는 반면 정유사들의 영업이익엔 해외 수출과 윤활유 등 다른 사업 부문의 실적까지 반영된다. 따라서 전체 영업이익이 증가했다고 해서 국내 공급가격 제한에 따른 손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유사들의 실적은 수출과 윤활유 등 전체 사업의 결과물인 반면 최고가격제 손실보전은 민생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정부 정책에 협조하면서 국내 공급 부문에 발생한 손실을 보전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른 사업에서 실적이 좋았다는 이유로 정부 정책에 협조하면서 발생한 손실까지 기업이 떠안아야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며 "정부와 민간의 협력이 지속될 수 있도록 손실보전이 좋은 선례로 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손실보전 7조~8조 원 추산…정산 갈등에 출구전략 필요성
실제 업계에서 추산하는 손실 규모도 상당하다. 정부는 올해 추가경정예산에 목적예비비 4조2000억 원을 마련하고 내년 예산안에 4분기 손실보전분 1조4497억 원을 반영했다. 두 금액을 합치면 5조6497억 원에 달한다.
정유업계에선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7개월간 누적 손실이 7조~8조 원에 이를 수 있다는 추산도 나온다. 업계 추산액이 정부가 마련한 재원 규모를 웃도는 만큼 정유사들이 주장하는 손실 부담도 가볍게 볼 수 없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실제 보전 규모가 확정되지 않은 가운데 정산 기준을 둘러싼 이견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통상부와 최고액 정산위원회는 정유 4사가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원가 검증을 진행하고 있지만 임직원 성과급과 탄소배출권 구입비 등을 어느 범위까지 비용으로 인정할지를 놓고 견해차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유사마다 생산설비와 사업 구조가 달라 공통 기준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산업부와 정산위는 보상 기준의 적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감사원에 사전컨설팅을 요청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산이 지연되면서 기업들의 자금 운용에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보전금 지급이 계속 지연되면 유동성 부담과 경영상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연말 회계결산은 물론 향후 원유 도입과 설비투자 계획도 확보 가능한 자금 규모를 토대로 수립해야 하는데 지급 시점과 규모가 불명확하면 기본적인 경영 활동에도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최고가격제의 가격 안정 효과가 일정 부분 나타났다는 분석이 나온 가운데, 재정 부담과 정책 효과를 함께 고려한 출구전략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산업연구원이 지난 23일 발표한 '석유 최고가격제의 가격안정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1512개 주유소를 분석한 결과, 고급휘발유 대비 보통휘발유의 상대가격은 최고가격제 1차 시행 구간에서 ℓ당 45.75원, 2~6차 구간에서 165.51원, 7차 이후에는 239.48원 낮아진 것으로 추정됐다.
산업연구원은 최고가격제가 가격 상승을 완충하거나 비용 하락의 소비자 가격 반영을 앞당겼을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제도 장기화에 따른 손실보전 부담과 공급·에너지 절약 유인 약화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국제 석유제품 가격과 환율, 최고가격 상한이 실제 공급가격을 제약하는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제도 조정 및 종료 시점을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선 국제유가 상승세가 이어질 경우 정유사의 원유 도입 부담과 정부의 손실보전 부담이 동시에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출구전략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국제유가가 다시 오르면서 정유사의 원유 도입 부담뿐 아니라 정부가 향후 보전해야 할 금액도 늘어날 수 있다"며 "시장 왜곡과 재정 부담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한 출구전략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디어펜=김하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