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미중 패권 경쟁’은 이제 무역과 군사력을 넘어 반도체와 인공지능, 에너지, 공급망, 금융질서와 국제규범을 둘러싼 전방위 경쟁으로 확대됐다. 한국처럼 미국과 안보동맹을 맺고, 중국과 긴밀한 경제관계를 유지해온 국가에는 이런 변화가 더욱 복잡한 전략적 과제를 던진다.
이러한 국제질서의 구조적 변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출발점은 미중 패권 경쟁을 단순한 양국간 세력다툼으로 보지 않는데 있다. 실제로 미국의 패권적 영향력 변화, 다극화의 진전, 경제안보의 부상, 북중러 관계의 재편, 한반도 안보환경의 변화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관측되는 만큼 이런 현상들을 연결시켜 하나의 구조적 전환 과정으로 진단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에겐 ‘전천후 대외정책’이 필요하다. 변화하는 국제환경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강과 연대를 통해 한국의 전략적 선택지를 넓히는 전략이다.
외교안보경제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해 공동으로 펴낸 <격변>의 편저를 맡은 김흥규 국립외교원 원장(아주대학교 미중정책연구소 소장)은 지금의 국제환경을 격변과 혼돈의 시기로 진단하면서, ‘전천후 대외정책’을 강조했다.
그는 “이제 과거의 경험에만 의존하거나 이념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단기적 변화와 중장기적 구조변화를 함께 고려하고, 국익을 중심으로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면서 다층적·다면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 기본 방향은 자강과 연대의 결합”이라고 제시하고, “첨단과학기술과 산업 경쟁력, 국방력과 경제안보 역량을 확대해 외부의 충격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는 동시에 동맹과 다양한 국가 지역과 협력을 발전시켜서 한국의 전략적 선택지를 확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대외정책의 핵심 목표는 외부 위협의 감소와 상호 안정성 확보에 있다. 국가의 역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주변국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라며 “결국 전천후 대외정책은 변화하는 국제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종합적인 국가 역량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격변>은 외교정책을 독립적인 영역으로 다루지 않고, 산업과 기술, 군사력과 외교적 협상력, 경제적 자율성과 동맹관계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외교·안보 분야의 전문가뿐 아니라 경제와 산업정책을 담당하는 정책결정자, 기업인, 국제정치에 관심을 가진 일반 독자들에게도 참고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신범식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다극적 각자도생의 시대’를 제시하며 ‘각자도생’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인도나 중동의 주요국, 동남아 국가들 역시 미중경쟁 속에서 경제적 실익과 외교적 자율성을 동시에 추구한다”며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공통의 규칙과 제도에 대한 합의가 약화되는 상황에서 개별국들의 안보와 경제이익을 우선하는 경쟁이 강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고립주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국가들은 특정 현안에 따라 서로 다른 연대와 협력체제를 구축한다”고 진단했다.
책에서 신 교수의 ‘다극적 각자도생’이란 문제의식은 이상현 세종연구소 명예연구위원이 다루는 ‘포스트 패권 시대의 국제질서’와도 연결된다.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와 글로벌경제안보센터는 반도체와 첨단기술, 공급망의 재편이 변수로 떠오른 현실 속에서 경제와 안보가 결합되는 새로운 국제경제질서에 초점을 맞췄다. 이병철 전 삼성전자 부사장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와 한국의 기술경쟁력과 산업전략 대응을 살펴본다.
안보 분야에선 전봉근 전 국립외교원 교수 등이 핵안보와 관련한 정책적 과제를 다루고, 손한별 국방대학교 교수와 김지용 해군사관학교 교수 등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해양안보, 군사력 발전과 관련된 논의에 참여한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관리하면서 억제력과 안정성을 함께 확보하는 ‘한국형 전략적 안정성’을 다룬다.
한편, 이번 책의 기획을 맡은 사단법인 플라자프로젝트(The Plaza Project)는 2019년 1월 19일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첫 발제 모임을 갖고, 모임 이름을 ‘플라자’로 정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는 광장’이란 이름처럼 특정 정당이나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보수와 진보, 여야를 아우르는 전문가들의 토론을 통해 외교·안보·경제정책의 대안을 마련하는 것을 지향한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