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소윤 기자]모듈러주택 육성 밑그림이 구체화하면서 건설업계의 시장 선점 경쟁에 불이 붙고 있다. 정부가 공급난 해소를 위한 대안으로 모듈러주택을 낙점하고 LH도 중장기 발주 로드맵을 제시하면서 관련 산업의 성장 기반이 마련되는 모습이다. 대형 건설사들은 고층화와 설계 표준화 등 모듈러주택의 대량생산을 뒷받침할 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정부가 모듈러주택을 공급 확대 정책의 해법으로 낙점하면서 시장 성장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주요 대형 건설사들도 고층화 등 기술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이미지 생성=챗GPT
5일 업계에 따르면 LH는 지난 3일 국내 모듈러 제조기업 6곳과 간담회를 열고 2030년까지 모듈러주택 1만7700가구 이상을 발주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총사업비는 약 4조8000억 원으로, 공공 부문이 중장기 물량을 제안해 안정적인 수요 기반을 정비하겠다는 취지다.
연도별 발주 목표는 2026년 2200가구를 시작으로 2027년과 2028년 각각 3500가구, 2029년 4000가구, 2030년 4500가구 이상이다. 당초 계획보다 발주 시기를 앞당겨 내년부터 연간 물량을 3500가구 이상으로 늘리는 등 시장 확대에 속도를 낸다는 구상이다.
제조기업의 설비투자와 생산 역량 강화를 유도하기 위한 제도 개선도 병행한다. 공장 제작 단계에 따라 기성금을 지급하고, 원가 절감 성과에 후속 물량을 연계하는 방식 등을 도입해 제조기업이 생산 설비에 선제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
이번 발주 계획은 지난달 20일 이재명 대통령의 인천 계양 3기 신도시 현장 방문 이후 마련된 후속 조치다. 당시 이 대통령은 모듈러 공법을 활용한 공사 기간 단축 효과를 점검하고, 대량생산 체계 구축과 발주 확대를 통한 시장 활성화 방안을 주문했다.
모듈러 공법은 주택의 골조와 벽체, 설비 등 주요 구성품을 공장에서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건설 방식이다. 현장 기초공사와 공장 제작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어 기존 철근콘크리트(RC) 공법보다 공사 기간을 20~30% 단축할 수 있다. 현장 작업을 줄여 건설인력 부족과 안전사고 문제에 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대안 공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 중저층 넘어 고층 공동주택으로…건설사 기술 경쟁 본격화
이 같은 정책 기조는 일찌감치 탈현장건설(OSC) 기술을 육성해 온 대형 건설사들에도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될 전망이다. 공공 발주 확대가 시장 형성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건설사들은 모듈러주택의 상용화를 좌우하는 고층화 기술 발굴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모듈러'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곳이 GS건설이다. GS건설은 일찌감치 산업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사업 영역을 넓혀왔다. 지난 2020년 폴란드 단우드와 영국 엘리먼츠 유럽 등 해외 모듈러 기업을 인수했고, 국내에서는 자이가이스트 등 전문 자회사를 설립해 시장의 문을 두드려 왔다.
GS건설은 지난해 LH가 발주한 시흥거모 A-1블록 민간참여 공공주택사업을 수주해 전체 6개 동 가운데 3개 동에 해당 공법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 중 1개 동은 최고 14층 규모로 지을 계획으로, 준공되면 국내 최고층 스틸 모듈러 아파트가 탄생하게 된다.
최근에는 아파트와 오피스텔, 호텔, 기숙사 등에 적용할 수 있는 스틸 모듈러 표준평면 20종을 선보였다. 건설정보모델링(BIM) 기반 공사비 산정과 연계해 초기 설계 및 견적 검토에 필요한 시간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현대엔지니어링은 국내 모듈러주택의 고층화 가능성을 입증한 건설사다. 13층 규모의 '용인 영덕 경기행복주택'을 준공해 국내 최고층 모듈러주택 기록을 세운 데 이어 20층 이상 공동주택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 개발도 추진 중이다. 이달에는 현대제철과 공동 개발한 'H형강 활용 철골모듈러 접합 구조 시스템'이 한국강구조학회 기술인증을 획득하기도 했다.
DL이앤씨도 관련 기술을 축적해 왔다. 2016년 공동주택 골조 공사에 처음 모듈러 공법을 도입한 이후 엘리베이터 구조물과 경비실 등으로 적용 대상을 넓혔다. 현재까지 관련 특허 40여 건을 확보했다.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시장조사업체 마켓츠앤마켓츠에 따르면 세계 모듈러 건축시장 규모는 2025년 1096억 달러에서 2030년 1428억7000만 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은 5.4% 수준이다.
◆ AI 데이터센터도 모듈러 수요처…원가 경쟁력은 과제
모듈러 사업 역량은 건설업계의 새로운 먹거리로 부상한 AI 데이터센터 분야에서도 경쟁력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AI 데이터센터는 대규모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가동해야 하는 만큼 막대한 전력 공급과 고성능 냉각설비가 필수적이다. 여기에 AI 연산 수요가 급증하면서 시설을 얼마나 빠르게 구축해 가동하느냐가 사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데이터센터 시장에서는 설계부터 준공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이는 '타임 투 마켓(TTM·Time to Market)'이 중요해지고 있다. 공장에서 주요 구조물과 설비를 미리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모듈러 방식은 공사 기간을 단축할 수 있어 데이터센터 구축 수요를 뒷받침할 묘책으로 거론된다.
다만 모듈러 공법이 기존 건설 방식을 대체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기까지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가격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모듈러 공법의 공사비는 일반 공법보다 약 30% 높은 수준이다. 공장 제작과 운송, 현장 조립 과정에서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데다 시장 규모가 작아 대량생산에 따른 원가 절감 효과도 충분히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모듈러 공법은 주택뿐 아니라 공사 기간이 사업 경쟁력과 직결되는 데이터센터 등 다양한 분야로 활용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며 "다만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공공 발주 확대에 그치지 않고 대량생산 체계 구축과 원가 절감, 고층화 기술 확보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박소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