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116)-소피스트가 만드는 짝퉁 실체와 진리
플라톤(BC 427~BC 347) 『소피스트』


   
▲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소피스트(Sophist)는 원래 '지혜로운 자'를 뜻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에서 소피스트는 점차 부정적 이미지로 널리 인식되었다. 그들은 진정한 지혜를 깨달은 철학자라기보다 대중을 현혹시키는 언술로 지식을 파는 자에 가깝다는 비판이 거세게 나왔기 때문이다. ​

도대체 소피스트는 어떤 사람들이기에 이런 비판이 나온 것일까?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크세노폰이 쓴 <사냥술>에는 소피스트들이 비판 받는 여러 속성이 열거되고 있다. 아마 플라톤이 쓴 <소피스트>보다 늦게 쓰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소피스트 때문에 선해졌다고 하는 사람을 어디서도 보지 못했다. 학문에 대한 그들의 기여도 사람을 선하게 만들지 못한다. 그들은 경박한 주제들에 대한 책을 많이 썼다. 그 책들은 젊은이에게 허황된 쾌락을 주었을 뿐 아니라 덕을 주지도 않았다. 무언가를 얻으려는 희망에서 그 책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며, 그 책들은 유용한 일을 하기를 막고 나쁜 것을 가르친다. 따라서 그들의 무수한 잘못은 그들에 대해 무수한 비난을 하게 한다.

그들의 문체에 대해 말하자면, 그들의 말은 설득력이 없고 젊은이에게 미덕을 훈련하게 만들 만한 건전한 격언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나는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스스로의 본성에 의해 선한 것을 배우는 것이 최고이고, 그 다음으로는 속이는 기술의 대가에게서 배우는 대신 무언가 선한 것을 정말로 아는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안다."

크세노폰은 소피스트들이 젊은이들을 미덕으로 이끈다고 공언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며 오히려 허황된 쾌락을 심어주고 남을 속이는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크세노폰보다 더 강력하게 소피스트를 비판한 이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다. 플라톤은 <소피스트>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참다운 철학자와 유사 철학자인 소피스트가 어떻게 다른지, 소피스트의 본질적 속성이 어떠한지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은 소크라테스, 테오도로스, 테아이테토스와 엘레아에서 온 손님 철학자이다. 이 손님인 엘레아 철학자가 소피스트의 본질을 끈질기게 파헤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 테아이테토스가 논의를 전개를 위한 대담자로 참여한다.

이 대담의 목표는 분명하다. 소피스트의 정체 규명을 위해 소피스트를 포획하여 그 속성을 해부하고자 한다. 이런 규명을 위한 논의를 사냥에 비유하여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소피스트 역시 사냥꾼으로 비유된다. 그들은 대중에게 “만족감을 주는 것을 통해 사교를 하고, 전적으로 쾌락을 통해 미끼를 마련하고, 오직 자신의 밥벌이를 위해 보수를 요구”한다는 것이. 즉 소피스트는 '설득술', '아첨술'과 '쾌락술'을 통해 대중을 사냥하려는 사냥꾼에 다름이 아니라고 엘레아의 철학자는 주장한다. ​

소피스트는 영혼의 배움과 관련한 일종의 도매상이자 반박의 기술을 파는 소매상이다. 하지만 엘레아의 철학자는 소피스트가 "자신이 모든 사람 중에서 그리고 모든 것에서 가장 지혜롭다는 믿음을 젊은이들로 하여금 가지게끔 할 수 있을까 하는 점"에 의문한다.

소피스트들이 반박하는 모든 주제에 대해 그들이 진짜 지식을 갖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들은 모든 주제에 대해 실제와 가깝도록 또는 실제와 그럴듯한 모습으로 모상(模相)을 보여줄 뿐 실체와 진리를 말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들을 그저 ‘닮은꼴을 만드는 기술’을 가진 자, 또는 ‘유사 닮음 제작술’을 가진 자로 보는 이유다. ​소피스트들은 자신들이 어떤 실체를 잘 파악한 듯 그럴 듯하게 말하지만 실제로는 해당 사안의 실체와 진리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소피스트는 진품이 아닌 짝퉁을 만들어낸 사기꾼에 비유할 수 있겠다.

진정한 지식과 지혜는 '있는 것'과 '있지 않은 것'을 "어떻게 서로 결합할 수 있고 또 그럴 수 없는지를 유(類)에 따라서 분리할 줄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소피스트는 "우리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있지 않은 것이 어떤 점에서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하도록 강제"한다. "있지 않은 것이 어떤 점에서 있다"는 소피스트의 주장에서 모든 모상(模相)과 닮은꼴, 유사 닮음이 양산된다. ​소피스트들은 있지도 않는 것을 있는 것처럼 주장하지만 이는 그럴듯하게 닮은 모습을 묘사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엘레아 철학자는 "있는 것의 몫을 나누어 가짐으로써, 바로 이 나누어 가짐 때문에 있지만, 몫을 나누어 주었던 그 대상은 아니고 그 대상과 다른 것이라는 점은 아주 분명하게 필연적"이라고 말한다. "있지 않은 것들을 믿거나 말하는 것, 이것이 아마 생각과 말에서 생기는 거짓"이라며 믿음과 말이 섞임으로써 거짓된 믿음과 말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결국 소피스트의 주장이 원상(原狀)을 모방한 닮은꼴을 만들어내는 것은 "있지 않은 것들"에 대한 거짓된 믿음과 말에서 기인한다는 의미다. ​

진정한 철학자는 사물과 형상의 실체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실체를 단순히 모방한 수준의 인식은 소피스트에게 어울린다. 소피스트는 "있지 않은 것들"을 있는 것처럼 거짓된 믿음과 말을 전파한다.

   
▲ 아테네 학술원 앞에 있는 소크라테스 좌상 ⓒ박경귀

엘레아의 철학자는 소피스트들은 '아는 모사술(模寫術)'이 아니라 "믿음에 의한 모사술"에 의존하면서, "대화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모순되는 말을 하게끔 강제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또 소피스트는 "모순을 만드는 기술에서, 위장하는 기술에서, 믿음에 의존하는 기술에서 나온 모사자(模寫者) 그리고 유사 닮음을 만드는 종족에서, 모상 제작술에서 나와서 신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을 제작하는 부분 그리고 말로써 볼거리를 만드는 부분으로 구분된 자"라고 결론 맺는다. 쉽게 말해 소피스트는 거짓을 공급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

이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는 본격적인 대화에서는 침묵하고 있다. 대담의 목적이 소피스트의 실체를 규명하려는 것이어서 한편으로 소피스트로 오해 받기도 하는 자신의 입장에서 이런 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리라. 플라톤은 엘레아의 철학자의 입을 통해 진정한 철학자와 소피스트를 구별 지으려는 분명한 의도를 보여준다.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시민들로부터 소피스트로 오인되어 죽음에 이른 것에 대한 철학적 변론이기도 한 셈이다.​

엘레아의 철학자가 주도한 소피스트의 포획과 실체 규명의 논의는 논리적이긴 하지만 상당히 관념적이어서 이해하기 쉽지 않다. 어떤 것이 진실에 대한 언표이고, 어떤 것이 위장과 거짓 모상인지 구별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여기서 논의되는 소피스트와 철학자의 특징적 구분에 따라 현실의 개별 사안에서 이 둘을 명확하게 분별해 내기도 쉽지 않다. ​

이렇듯 소피스트와 진정한 철학자의 차이의 관념이 모호한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소피스트가 아닌 진정한 철학자가 되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이다. 소크라테스가 논의의 첫머리에서 소피스트들이 “다른 사람들의 무지로 인해서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

소피스트를 포획하여 규명하기는 쉽지 않다. 철학자나 소피스트가 각각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얼마나 원상(原狀)의 비례를 충실히 닮았는지, 아니면 원상의 비례를 왜곡했는지를 판별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유와 언어로 이를 증명하는 것 또한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개념적으로도 소피스트와 진정한 철학자를 준별하는 일이 어렵다. 더구나 우리가 일상의 담화에서 소피스트를 식별해 내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가. 시대가 변해도 어느 사회에서든 소피스트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우리는 여전히 궤변을 주장하는 이들의 달콤한 말에 앞으로도 계속 현혹당하는 실수를 반복하게 될지도 모른다. 소피스트를 구축하는 일은 치열하게 진리를 추구하는 진정한 철학자의 도전과 열정에 달렸다.  /박경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 ☞ 추천도서: 『소피스트』, 플라톤 지음, 이창우 옮김, 숲(2011), 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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