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간 신뢰 회복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포장이 아니라 자기반성
   
▲ 박한명 미디어펜 논설주간
며칠 전 조선일보가 윤리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 신문이 밝힌 위원회 출범 목적은 이렇다. "조선일보사는 송희영 전(前) 주필 사임 및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을 계기로 독자들로부터 신뢰받는 언론으로 거듭나기 위해 윤리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윤리위원장은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가, 김근상 대한성공회 주교(성공회대 이사장), 박길성 고려대 대학원장, 소순무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등 외부 인사 5명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여기에 조선일보 강경희 논설위원 곽수근 노조위원장 내부 인사까지 해서 총 7명으로 윤리위원회가 구성되었다고 한다. 윤리위원회 발족 후 첫 회의에서는 다양한 내용이 오간 모양이다. 기사를 보니 조선일보 차원의 상세한 취재윤리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기자들의 비윤리적 취재 행위에 대한 감시가 필요하다 등등의 논의가 있었다. 또 조선일보 신뢰도에 금이 가게 하는 기사도 짚어야 한다는 내용도 눈에 들어오는 내용이다.

언론사가 기자들과 자사 취재윤리를 강화하겠다고 위원회를 만들고 자정 노력하는 것, 바람직한 일이다. 전 주필의 부패 의혹으로 떠들썩했던 신문사니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더 깨끗해지겠다고 하는 노력 당연히 박수쳐줘야 한다. 그러자고 위원회를 만들었으니 열 개를 만들던 백 개를 만들던 칭찬하고 권장해 마땅하다. 그런데 필자는 조선일보가 여전히 사안의 본질을 피해 물타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조선일보의 문제가 드러난 송희영 전 주필의 부도덕만인가. 그 사건은 곁가지에 불과하다. 피부 깊숙이 자라는 암덩어리가 있는데 표면에 드러난 일부를 잘라낸다 해서 암을 치료할 수 없다. 독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조선일보가 중심을 못 잡고 오락가락하는 논조로 휘청대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보수주의 이념이나 대한민국 발전을 위한 언론의 책임과 역할이란 이런 근엄한 가치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조선일보는 자기 독자층이 누군지조차 잊고 있다는 비판이 오래됐다.

   
▲ 송희영 전 주필의 비리를 폭로했던 김진태 의원에 대해 조선일보가 악의적 음모론을 제기했다. "선관위 고발 親朴까지 봐준 검찰, 조직이 이상하다"는 제목에는 김 의원과 검찰조직, 나아가서 청와대 우 수석까지 포괄적으로 비난하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리위원회 출범 잘했지만 본질 아니다

조선일보는 세월 따라 유행 타듯 잘 팔리는 좌파상업주의 시류에 손쉽게 올라탔다. 때론 자기네들이 무슨 한국의 뉴욕타임스 쯤 되는 줄 아는지 리버럴 흉내까지 냈다. 그리고는 다른 한편으로는 신문사 이름값을 내세워 언론권력을 유지하는 데 바빴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좌파와 우파 사이에서 양비론이나 양시론 따위로 중립인 양 도도하게 굴었다. 한겨레신문이 좌파의 이슈를 가지고 죽자고 덤비는 것 같은 그런 이념적 열정을 조선일보에서 보기 어려운 것은 당연했다.

송희영 사건은 조선일보가 자기정체성을 내던지고 오랫동안 속물적 시류 따라 흘러오던 와중에 일어난 사건이다. 그것도 청와대에 민원을 넣었다가 퇴짜를 맞았다 해서 보복하는 게 아닌가 하는 세간의 수군거림 속에서 드러난 것이었다. 송 전 주필 부패 의혹 사건은 조선이 지면사유화와 같이 언론권력을 남용하던 차에 드러난 곁가지 사건에 불과할 뿐 국민 독자 다수가 생각하는 본질의 문제와는 거리가 있다는 얘기다.

강조컨대 조선일보가 송희영 사건을 계기로 윤리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은 칭찬할 일이다. 허나 여전히 문제의 핵심핀트는 어긋나 있다. 국민과 독자가 궁금해 하는 본질적 질문들은 피하면서 기자들 취재윤리의 문제로 국한시켜선 해결이 요원하다. 조선일보의 신뢰도에 금이 가게 하는 것은 기자들 개인의 윤리 문제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불신의 문제다. 조선일보가 자사 언론기능을 권력화 사유화 무기화해서 자사와 임원 기자들의 이익을 위해 악용하고 있다는 의혹이다.

우병우에는 융단폭격을 가하면서 자사 주필 의혹엔 자물통을 채우고 그 주필 의혹을 폭로한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계속 시비조인 조선일보의 변함없는 태도는 불신을 더욱 키우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송희영 사건을 폭로한 김진태 의원을 유독 물고 늘어지는 것은 그래서 보기 딱하다. 아닌 말로 자기 몸보신에나 뛰어난 새누리당 대다수 의원과 다르게 김 의원이 야당과 좌파의 선동에 맞서 열심히 뛸 때 조선일보는 뭘 했나.

   
▲ 조선일보의 문제는 송희영 사건으로 드러난 도덕성의 문제만이 아니다. 우병우 송희영 보도의 문제부터 먼저 따져보는 것이 국민과 독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길이다. /사진=연합뉴스

속보이는 김진태 공격, 조선일보는 달라지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윤리위원회가 출범했다는 자사 소식을 알리는 날, 선관위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김진태 의원을 검찰이 기소에서 뺐다고 사설까지 쓰며 비난했다. "선관위 고발 親朴까지 봐준 검찰, 조직이 이상하다"는 제목에는 김 의원과 검찰조직, 나아가서 청와대 우 수석까지 포괄적으로 비난하는 뉘앙스까지 은근히 풍긴다. 조선은 또 검찰이 김 의원을 불기소했다고 비판하는데 굳이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을 끌어들여 비교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서 검찰이 유무죄를 판단하는 기준은 후보자가 허위라는 것을 알고 했는지 모르고 했는지 여부라고 한다. 검찰이 김 의원을 불기소하고 박 의원을 기소한 것은 그 차이이지 조선일보가 기사 제목에서 보인 "'9만명에 문자' 檢출신 與 김진태는 무혐의, 50여명 놓고 유세車 연설 野 박영선은 기소" 신공처럼 숫자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 제목만 보면 검찰이 마치 명명백백한 위법행위를 한 김 의원은 봐주고 더민주당 박 의원은 별것도 아닌 사소한 문제인데 무리하게 기소한 것처럼 보인다.

조선일보는 선관위가 나섰을 정도로 김 의원 고발 건이 위법한데도 검찰이 무시한 것은 정치적 음모가 있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내막을 알면 조선의 이런 시각에도 상당히 의구심이 든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김 의원 문자메시지 발송 건이 고발에 이르게 된 것이 선관위가 자체적으로 인지했다기보다는 시민단체가 수차례 기자회견을 열어 표적화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일보는 단순히 '시민단체'로 표현했지만 이 단체는 춘천시민연대로, 세월호진상규명을 요구하고 투표 하루 전 총선시민네트워크와 '춘천 김진태 후보 낙선투어 기자회견'을 같이 열 정도로 반김진태 성향을 가진 단체라는 것이다.

이 밖에도 국정교과서 저지 선언, 백남기 농민 춘천투쟁본부 준비위원회를 결성하는 등의 뚜렷한 정체성을 자랑하는 단체다. 이 단체가 김 의원을 고발한 건도 여러 건이라고 한다. 조선일보는 이런 백그라운드에 대한 설명 없이 선관위 재정신청 1건만 부각하면서 김 의원이 친박이고 검찰 출신이라 봐준 것처럼, 검찰조직 운운하며 마치 큰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과장했다.

김 의원에 대한 문제는 어찌됐든 선관위가 재정신청을 냈으니 결과가 나올 것이다. 김 의원은 안 그래도 조선일보와 좌파세력에 표적이 돼 있는 인물이다. 지금 시점에 친박이라 유리한 면이 그렇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친박이라 불리한 점도 있을 것이다. 국민의 보는 눈이 있는데 검찰과 법원이 그걸 싹 무시하고 김 의원의 명백한 불법도 눈감아줄 것이라 보는 것은 상식적인 생각이 아니다.

이제 글을 마무리 하자. 조선일보가 강조한 것처럼 신뢰상실의 시대에 언론의 도덕성을 높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조선일보가 이제야 그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 민망한 일이지만 어찌됐든 인정해 줄 부분이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문제는 송희영 사건으로 드러난 도덕성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건 드러난 단편적인 사건, 곁가지에 불과하다. 조선일보는 체면을 위한 겉포장과 형식만 신경 쓸 게 아니라 국민과 독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 조선일보의 우병우 송희영 보도의 문제부터 먼저 따져보는 것이 그 첫 단계일 것이다. /박한명 미디어펜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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