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애·가족애·자유민주적 가치…군인들이 나라 지키는 데 자부심 갖게 해야
   
▲ 황성욱 에이치스 대표 변호사,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우리는 연평도 포격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2010년 11월 23일 14시 34분부터 시작된 북한의 포격도발에 대하여 대한민국 해병대는 용감히 맞대응하였고 발제문에서 언급되었듯이 고 서정우 하사는 마지막 휴가를 앞두고 복귀하였다 전사하였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이 사건을 통해서 무엇을 얻었을까. 대한민국 국토를 참절하는 적에게는 무자비한 공격을 감행하고 우리의 체제를 지키는 데 목숨을 바칠 각오를 다지는 그런 사건이었을까.
 
아니면 전쟁이 날까 벌벌 떨면서 미국이 지켜주겠지 혹은 역시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자괴감이었을까. 더 나아가 북한에게 돈을 주거나 서해 NLL을 떼어주는 한이 있더라도 비굴한 평화라도 목숨만은 구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까.

당시 필자는 군장교 출신이고 나름 주변에서 시사에 관심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전화를 많이 받았는데, 그 내용의 절대다수가 “전쟁이 나는 것인가요, 무섭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절망적인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안에 있는 가난과 겁의 정말 견고한 DNA가 있지만, 6. 25. 한국전쟁과 경제발전이라는 역사 속에 잠재되어 있는 또 다른 DNA가 있다. (공화가치를 지키려고 할 때만 나올 수 있는) 전우애.

영화 ‘라이언일병구하기’와 ‘영웅’

(1) 라이언 일병 구하기

2차 대전이 종전으로 치닫는 치열한 전황 속에서 미 행정부는 전사자 통보 업무를 진행하던 중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4형제 모두 이 전쟁에 참전한 라이언 가에서 며칠간의 시차를 두고 3형제가 이미 전사하고 막내 제임스 라이언 일병(Private Ryan: 맷 데몬 분)만이 프랑스 전선에 생존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네명의 아들 가운데 이미 셋을 잃은 라이언 부인을 위해 미 행정부는 막내 제임스를 구하기 위한 매우 특별한 작전을 지시한다. 결국 사령부에서 막내를 찾아 집으로 보낼 임무는 밀러에게 부여되고, 밀러는 여섯 명의 대원들과 통역병 업햄(Corporal Timothy Upham: 제레미 데이비스 분) 등 새로운 팀을 구성, 작전에 투입된다. 

단 한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여덟 명이 위험을 감수해야할 상황에서 대원들은 과연 ‘라이언 일병 한 명의 생명이 그들 여덟 명의 생명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인가?’라는 끊임없는 혼란에 빠진다. 하지만 지휘관으로서 작전을 끝까지 책임지고 성공적으로 완수해야 할 밀러는 부하들을 설득해 다시 라이언 일병이 있다는 곳으로 향한다. 도중에 독일군과의 간헐적인 전투를 치르면서 결국 밀러 일행은 라멜 외곽지역에서 극적으로 라이언 일병을 찾아낸다. 하지만 라이언은 다리를 사수해야할 동료들을 사지에 남겨두고 혼자 돌아가는 것을 거부1)하여 결국 밀러 대위와 대원들은 라이언 일병과 함께 전선을 사수하다 전사한다. 라이언 일병은 살아서 미국으로 돌아간다.

(2) 영웅 줄거리

진시황 치하의 나라는 강력한 진시황의 통치로 인해 백성은 고통에 빠져있다. 진시황은 누군가 자신을 죽일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자신으로부터 100걸음 이내에는 아무도 올수 없게 한다. 그리고 천하에 그를 암살할 만한 알려진 자객이 셋이 있기에 그 자객들의 목에 천금의 현상금을 걸고 그들을 죽이면 10걸음이내에 알현할 수 있다고 한다. 얼마 후 한 사람(무명:이연걸)이 그들 중 둘을 죽였다며 찾아 온다. 진시황은 그를 10걸음 내에까지 가까이 두고 그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그 사람은 사실 앞서의 자객들과 짜고 시황제를 죽이러온 자객. 그는 시황제를 죽이지 않는다.

앞서 시황제를 죽일 수 있는 자객은 셋이었는데 그 중 한 사람(파검:양조위)은 시황제를 죽이면 천하가 더 어지러워질 것이란 걸 알고 스스로의 원한은 잠시 접어두고 시황제를 죽이면 안된다고 무명(이연걸)에게 이야기한다. 결국 시황제를 죽이는 것을 스스로 포기한 무명(이연걸)은 화살에 맞아 죽는다.

(3) 위 영화들의 각기 다른 세계관

단순하게 본다면,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한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여러사람의 목숨이 희생될 수 도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고, 영화 ‘영웅’은 비록 개개인이 고통스럽고 개인의 자유와 생명이 위태로운 전제정치체제라도 천하의 분열상태로 인해 생기는 전쟁의 고통보다 그래도 질서가 있는 통일된 체제가 낫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쉽게 말하면 더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개인은 희생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 6년 전 2010년 11월 23일 북한으로부터 연평도 포격을 당한 해병대원들은 적의 포격이 시작되자 재빨리 주민들을 대피시켰고 첫 타격 후 13분 후 대응사격을 개시했고 북측을 향해 80여 발의 포탄을 발사했다./자료사진=연합뉴스


누구를 구할 것인가

필자는 2004년 경, 군 정신교육을 위해 위 두 영화를 병사들에게 보여주고 질문을 했다. 어느 영화의 결론이 맞는 것인가. 쉽게 말해, 라이언 일병을 구하러 가는 것이 맞나?

병사들은 거의 모두가 라이언 일병을 구하러 가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대답하였다. 여러 가지 대답이 나왔지만, 결국 1명의 목숨을 위해 8명의 목숨을 희생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 1명이 내가 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영화 ‘영웅’의 결론에도 동의했다. 수많은 목숨이 희생되는 전쟁을 막기 위해서 위 영화 속 주인공인 무명과 파검의 생각이 옳았다고 했다.

다음으로 이 질문을 했다. 

“영화 ‘영웅’을 보면 백성들이 원하는 체제는 아니나 결국 대세는 진시황으로 넘어갔다. 이것을 한국전쟁당시와 비교해보면, 우리 대한민국은 3일 만에 서울이 함락이 되고 낙동강 전선만을 남기고 UN군의 도움으로 대한민국을 지켰는데, 왜 이래야만 할까. 어차피 대세는 인민군으로 넘어갔는데, 비록 동의할 수 없는 체제지만 피를 흘리는 것보다는 항복하는 것이 낫지 않았나?”

병사들은 이 질문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필자는 전역을 2달 남긴 말년 병장을 한 명 지적하여 일어서라고 했다. 그리고 같은 분대 전역을 1년 이상 남겨둔 상병을 일어서라고 했다. 둘은 적어도 군생활을 1년 이상 같이 한 사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저 상병이 수색을 나갔다가 적에게 포로가 되었다. 지휘관은 저 상병을 구하기 위해 특공대를 조직하였고 특공대는 지원을 받기로 하였다. 병장이 생각할 때 몇 명이나 이 부대에서 지원자가 나올 것 같은가, 본인의 지원여부를 묻는 게 아니다.”

참석한 병사들이 모두 웃었다. 병장과 상병사이가 어떤지는 모르지만 모두들 얄궂은 표정을 짓는다.

그 병장은,

“다른 건 모르겠으나, 저희 분대는 모두 지원할 겁니다. 중위님께서 제게 의사를 묻는 건 아니라지만 저도 당연히 지원할 겁니다.”

나는 물었다. 

“자네는 분명 아까 라이언 일병구하기의 결론이 잘못되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자네 분대는 어떻게 다 지원할 것이라고 확신을 하고, 자네 또한 전역이 두 달밖에 안 남았는데 지원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그 병장은,

“아까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질문을 하시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다만, 제가 포로로 잡혔다면 우리 분대 병사들도 마찬가지 일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육을 받던 병사들이 아까 보였던 장난끼 섞인 분위기가 일순 숙연해졌다. 병장의 대답을 듣고 모두들 자신들에게 그 질문을 던졌던 모양이다.

   
▲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에 대한 기습 포격 하루 뒤인 2010년 11월 24일 오후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의 한 주택이 포격으로 인해 완파돼 있다./사진=연합뉴스

전우애, 가족애,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우리는 유사 이래 개인이 최대한 권리를 보장받고 살고 있다. 대한민국엔 신분제도 없고, 권력의 횡포에 정식으로 이의제기를 할 수 있는 재판제도도 갖추고 있다. 권력을 얻기 위해서는 국민들로부터 마음을 얻어야하고 영원히 권력을 행사하는 계층도 없다. 가족끼리 오순도순 살 수 있고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다.  

대한민국 국군이 지키는 것은 대한민국의 영토와 체제이지만, 개개의 병사들은 그러한 사명감에 군복무를 할까? 대다수 병사들은 군에 들어와서 명령에 따라 생활하고 자유가 제약되다보니, 병사들은 억지로 군복무를 한다고 생각할 것이 다분하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서 선택은 달라진다. 즉 머리 속으로는 영화 ‘영웅’의 결론이 옳다고 생각하다가도 현실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위와 같이 다른 선택을 한다.

그것은 자기도 몰랐겠지만, 돌아갈 집이 있고 자기가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자기를 반겨 줄 여자 친구가 있기 때문에다. 즉 병사들 마음속에 자기가 지키는 것은 자기 가족, 애인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의 임무를 수행할 때 자신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즉 라이언 일병구하기는 한 명의 목숨과 여덟 명의 목숨이 아니라 한 개인에 대해 국가가 행하는 행동이라는 것도.

필자는 발제자가 말하는 공화의 가치에 대해서 잘은 모른다. 다만 우리가 살고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무너진다면 ‘전우애’라는 것은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기대와 예측이 없다면 그 것을 지키기 위해 전우와 같이 싸울 이유도 없고, 그런 나라에서는 전우란 명령을 받는 동료에 불과하지 군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이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에게 왜 이 나라를 지켜야하는 지 끊임없이 자부심을 갖게 해야 할 이유고 우리 모두가 왜 자유민주적 가치를 위해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이유이다. /황성욱 에이치스 대표 변호사,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1)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8988


(이 글은 21일 자유경제원이 마포 리버티홀에서 개최한 ‘연평도 용사의 전우애로부터 배우다: 대한민국 누가 지켰나…개인의 숭고함을 찾아서’ 토론회에서 황성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가 발표한 토론문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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