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의 바늘에 10마리가 한번에…몇 년만에 '만쿨'의 기쁨 만끽
[하응백의 낚시여행]-어청도 열기낚시

   
▲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문학박사
1. 11물의 열기 낚시

배의 규칙적인 엔진 음이 잦아들면, 자연스럽게 잠이 깬다. 군산 비응항에서 배를 탄 지 두 시간 정도 되었을까. 선장의 안내 방송이 들린다.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낚시 준비를 하라는 말이다. 선실을 나오니 막 해가 뜨기 시작한다. 일출 장면은 늘 새롭다. 지구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해는 저렇게 하루에 한 번 죽음과 탄생을 거듭했을 것이다.

사방을 둘러보니 바로 앞에 어청도(於靑島)가 보이고 멀리 북쪽으로는 외연열도가 보인다. 어청도는 바닷물이 푸르고 맑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청도는 행정구역상으로는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리에 속한다. 군산항 서쪽 66㎞의 해상에 있으며, 어청도 서쪽으로는 우리나라의 섬은 없다. 중국 산둥반도와는 약 300㎞ 떨어져 있다. 섬에는 고려 때의 봉수대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 어청도 해역에서의 일출

어청도는 어업전진기지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1912년 일제 때 만들어진 등대가 있으며 등록문화재 제378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등대는 청일전쟁 후 중국을 오가는 항로의 필요성 때문에 세운 것이라 한다. 인구는 약 450명으로 대부분 어업에 종사한다. 일제 때는 흑산도와 마찬가지로 주변이 고래어장이어서 포경선의 기지로 활용되었다.

낚시꾼 입장에서도 이 부근 해상은 우럭, 광어, 열기 등의 황금 어장이다. 여름과 가을에는 갯바위꾼이나 루어꾼은 어청도에 입도(入島)하여 돌돔, 농어 등을 노리기도 한다. 배낚시의 경우 어청도 일대 해상은 특히 겨울철에 호황을 맞는다. 봄·가을에는 연안에서도 낚시가 잘되지만 연안 수온이 낮아지는 겨울이 되면 어청도 일대 해역은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다.

   
▲ 서해 어업전진기지 어청도

어청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낚시는 시작된다. 선장은 포인트가 4미터 높이의 인공 어초라고 한다. 그렇다면 낚시채비를 내리고 바닥을 확인 한 후 전동릴을 3, 4미터 감아올리는 게 정석이다. 배가 어초 상단을 지나가면서 미끼를 물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이론처럼 쉬운 게 아니다. 배가 바람이나 조류의 영향으로 정확하게 어초 위를 지나가지 않을 수도 있고, 지나간다 해도 어초 높이가 정확히 4미터는 아닌 경우가 많아 밑걸림이 생길 수도 있고, 어초 위 한참 높은 곳을 채비가 지날 수가 있다. 또 고기가 없을 수도 있고, 있다 해도 안 물 수도 있다.

배낚시꾼 사이에서 격언처럼 전해지는 말로 "봉돌이 우럭대가리를 때려도 물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바닷속 일은 알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조류가 있을 때는 줄이 사선으로 내려가서 전동릴 계기상으로는 4미터를 올렸다 해도 실제로는 3미터 정도밖에 안 올리는 경우가 있어 채비가 어초에 걸리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기도 한다. 요컨대 낚시에서의 정석은 없고, 그날 바람과 조류 등등을 감안하여 경험적으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선장은 한 번 어초를 지나가고 다시 그 자리에 배를 댄다. 4미터를 올리고 기다리는 데 덜커덩 입질이 온다. 우럭 특유의 입질이다. 천천히 끌어올리니 제법 씨알이 좋다. 함께 출조한 소설가 조용호도 두 마리 쌍걸이로 마수를 한다.

   
▲ 삼걸이를 올린 소설가 조용호

드문드문이기는 하지만 지난 10년간 함께 낚시 출조를 했었다. 가끔 멀미를 하기도 하지만 고기에 대한 강한 집념으로 열심히 낚시를 한다. 선장은 다시 배를 돌려 그 어초에 댄다. 이번에는 묵직한 저항감이 온다. 씨알이 좋거나 두 마리일 것이다. 올리니 역시 두 마리다. 옆의 조 조사는 세 마리를 한꺼번에 올린다. 10년 낚시에 처음 세 걸이를 했다고 희희낙락이다. 둘이서 기념 촬영.

   
▲ 전조선문학가조사동맹 서기장과 서기의 조과

새벽 운전하면서 내가 조 조사에게 오늘은 날씨도 좋고, 물때도 적당하니 대박이 날지도 모른다고 했더니, 조 조사 왈, "미리 그랬다가 부정타니 그러지 마시오"라고 점잖게 한 마디 하더니, 아침 일찍부터 대여섯 마리를 잡으니 조 조사의 입이 귀에 붙어 있다.

이어 우럭 두어 마리가 더 올라온다. 사실 오늘은 우럭을 잡으러 온 게 아니다. 열기를 잡으러 온 것이다. 열기는 학명은 불볼락, 우럭이 조피볼락이니 우럭의 사촌이다. 동해, 남해에 많이 서식한다. 서해에서 열기낚시는 아직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이 아니다.

홍도나 흑산도와 같은 전남 지방의 도서야 열기가 많이 잡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충남이나 군산 등 서해 중부권에서는 열기가 주대상어로 자리 잡지는 못하고 있다. 단골로 낚시 다니는 대호피싱호의 김성철 선장에게 서해 열기낚시를 한번 시도해보자고 제안했고, 선장은 의기투합해서 오늘 출조하게 된 것이다. 동해 열기는 마릿수는 많이 나오지만 씨알이 잘다.

남해 동부권도 마찬가지다. 여수나 완도에서 출항하는 배들은 여서도, 사수도까지 나가는 데 가장 씨알도 좋고 마릿수도 좋다. 하지만 수도권에서 출조하기는 너무 멀다. 때문에 서해 중부권에서 씨알좋은 열기가 마릿수로 나온다면 12월부터 1,2월까지 먼 남해권까지 출조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어초에서 대여섯 마리 우럭을 잡고 배는 30여분을 서남쪽으로 더 달려 망망대해에 이른다. 길이가 100여 미터에 이르는 큰 침선이란다. 침선의 높이는 8미터. 바늘 10개의 열기 채비로  바꾸고 낚시를 시작한다. 사실 열기낚시는 간단한 요령만 숙지하면 우럭낚시보다 쉽다. 열기는 우럭보다 대부분 상층에 서식한다. 어초나 침선, 자연초 등등에서 바닥보다 1,2미터 더 높이 감아올리고 기다리면 된다.

가령 침선 높이가 8미터면, 바닥 기준으로 8미터 정도 채비를 올리고 기다리고 있으면 열기의 탈탈거리는 입질이 오게 마련이다(고기가 있어 입질을 한다면). 이 다음부터가 중요하다. 최초의 입질이 오면 약간 기다리다가 다시 입질이 오면 릴을 반 바퀴 정도씩 더 감아야 한다. 그러면 열기가 계속 올라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처음 입질 지점부터 4,5미터 정도 더 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최초로 입질할 때, 전동릴 수심을 체크해서 그 다음부터는 그 수심까지만 내리면 된다.

그렇게 낚시를 했지만 한두 마리씩 입질이 오고야 마는 것이다. 열기낚시는 줄을 태우는 재미, 이른바 '열기꽃을 피우는' 재미 때문에 하는 낚시로 한두 마리씩 잡아서는 흡족하지 못하다. 그런데 옆의 지긋이 나이 드신 조사가 대여섯 마리를 한꺼번에 올린다. 어쩐 일인가. 맨 밑에 달려온 열기 씨알이 어마어마하다. 족히 40센티미터는 넘는다.

   
▲ 40센티미터가 넘는 괴물 열기

열기낚시도 꽤 했지만 저런 사이즈의 열기는 처음 본다. 괴물 열기다. 선장도 저런 사이즈는 처음 본다고 놀란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인 모양이다. 한 두 마리의 우럭과 열기만 비칠 뿐 열기가 줄을 타지는 않는다. 선장은 다시 어청도 근해로 배를 이동시킨다. 점심을 먹을 때 잡은 열기 몇 마리로 회를 친다. 고소하다. 열기에 기름이 올라 상당히 맛있다. 우럭회도 맛있지만 열기와 같이 회을 쳐 놓으니 다들 열기회에 손이 먼저 간다.

다시 낚시. 낱마리 열기만 올라온다. 그러다가 큰 침선 포인트에서 낚시를 계속하고 있었던 다른 낚싯배에서 무전이 온다. 열기가 줄을 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선장은 그 포인트로 급히 배를 이동시킨다. 이동하는 사이 옆 조사가 가져온 백크릴을 조금 얻는다. 백크릴과 잘게 쓴 오징어, 어느 미끼가 잘 물리는지 실험을 해보려는 것이다. 바늘 10개에 오징어 다섯, 백크릴 다섯을 각각 끼운다.

수심 8미터를 올리니 총 수심 48미터 정도 된다. 여기서 기다리니 드디어 열기 특유의 탈탈거리는 입질이 온다. 조금 들어 기다리면서 줄을 태운다. 올려보니 대여섯 마리가 달려 있다. 그런데 대부분 백크닐을 물고 있다. 오징어는 질겨서 내릴 때마다 재사용을 할 수 있지만 백크릴은 내릴 때마다 미끼를 갈아야 한다.

열기꽃이 피면 바늘 10개에 고기 떼고 미끼 갈고 내리는 동작을 반복해야 하는데, 이게 숙련이 필요하다. 조 조사는 익숙하지 못한 관계로 바늘 다섯 개만 사용한다. 그렇게 몇 번 하다가 드디어 제대로 된 입질이 온다. 탈탈거리는 입질이 무더기로 느껴지는 것이다. 열기잡이를 위해 준비한 310센티미터 인터라인 열기 전용대를 사용하니 어신 전달도 좋고 탄력으로 말미암아 떨어짐도 적다. 그리하여 올리니 바늘 10개에 모두 열기가 달려 올라온다. 만세다.

   
▲ 바늘 열 개에 열 마리 몽땅걸이. 이런 것을 두고 "열기꽃을 피우다"라고 한다.

바로 이 기분으로 열기낚시하는 것이다. 그렇게 10마리, 9마리를 한꺼번에 올린다. 씨알도 좋다. 사수도나 여서도 씨알 못지않다. 총조과는 우럭 10여 마리, 열기 40여 마리. 15키로 쯤 잡았다. 이 정도면 서해 중부권에서도 열기낚시가 가능하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낚시 삼매에 빠져 있을 무렵 철수 시간이 다 되어 간다. 오후 3시 30분경 열기 낚시가 끝나고, 배는 비응항으로 귀항한다.

   
▲ 어청도 열기 조과

2. 4물의 열기낚시

일주일 전 열기낚시로 제법 손맛을 보았기에 주말이 다가오면서 바다날씨를 예의주시했다. 일요일 4물. 물때도 적장하고 마침 날씨가 예보 상 좋게 나온다. 지난주와 같은 배를 타고 어청도로 향했다. 하지만 날씨는 그다지 좋지 못하다. 백파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약간 높은 파도가 있다. 아침,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선장은 어초에서 낚시를 시작한다.

선수 쪽에서 몇 마리 우럭을 올린다. 나는 선미 자리에 있어 입질 한 번 못 받는다. 분명 배는 뒤부터 들어가는데도 어초에 닿질 않는 것이다. 시작이니까 하고 느긋하게 기다린다. 다른 포인트로 이동한다. 바닥이다. 이런 경우를 낚시꾼들은 '똥침'이라고 한다. 버려진 어구(漁具)들이 오래되어 고기들의 서식처가 되어 있거나 작은 침몰선이 오래되어 펄에 묻혔거나 하는 경우로 ‘똥침‘의 생성은 다양하다. 대개 1,2미터 정도로 바다 바닥에 약간 두드러져 있다. 이 경우 1미터 정도 들고 낚시하면 된다.

좀 이상한 입질이 온다. 퍼드덕 입질을 해서 약하게 챔질했는데 저항이 있더니 올라오다가 저항이 사라진다. 떨어져 나갔는가 했더니 다시 저항이 있다. 아하. 광어구나. 역시 올려보니 광어다. 그리 큰 사이즈가 아니어서 '들어뽕'을 한다. 좀 큰 사이즈의 광어는 반드시 뜰채를 대어야 한다.

광어는 수면에 올라오는 순간 강한 저항을 하는 습성이 있고, 입술이 약해 곧잘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뜰채를 대지 않고 그냥 들어올리는 것을 '들어뽕'이라고 하는데 40센티미터 정도의 광어는 '들어뽕'을 해도 괜찮은 경우가 많다. 광어를 한 마리 올리고 나니 선장은 포인트를 이동한다. 지난주 열기를 잡았던 그 포인트다.

   
▲ 첫 수로 광어를
 
하지만 지난 주와 달리 서너 마리 낱마리만 올라올 뿐 큰 소득이 없다. 다시 어청도 북쪽 포인트로 옮긴다. 북풍이 불어 파도가 심하고 거의 입질도 없다. 어청도 남쪽으로 돌아 어청도가 바람을 막아주는 곳에서 점심을 먹는다. 오늘은 단독 출조여서 회를 치지 않고 부지런히 낚시만 한다. 오후 1시. 낚시할 시간이 두어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끝 들물 타임이다. 어청도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배사면 포인트다. 바닥이 험하지 않고 점점 수심이 얕아지는 그런 포인트로 밑걸림이 적어 낚시하기는 편한 포인트다.

서해 열기낚시는 좀 힘든가 하는 생각을 하던 중 열기의 탈탈거리는 입질이 온다. 올리니 7,8마리가 달려 있다. 이때부터다. 정신없이 열기가 올라온다. 간간히 우럭도 달려 올라온다. 백크릴 끼우고 내리고 고기떼고, 고기 피 빼고, 정신없을 정도로 낚시에 열중한다. 수심은 약 40미터 정도. 38미터 권에서 32미터 권까지 열기가 무더기로 몰려 있다. 그러다가 한 지점에서 초릿대가 큰 포물선을 그리며 휘청거린다. 조금 감고 기다리자 또 한 번의 큰 초릿대의 휘청거림이 있다.

뭔가 사건을 예감한다. 우럭이 한 마리 큰 놈이 물려 잇고, 나머지는 열기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최대한 전동릴 속도를 줄여서 감아올린다. 아! 이게 뭐냐 수면 아래에서 뻘건 게 아니라 시커먼 게 여러 마리 보인다. 우럭이다. 여러 마리다. 가는 열기 채비 줄이라, 줄이 터질까 불안하다. 줄을 잡으니 한 손으로는 올리기 힘들다. 두 손으로 잡으니 한 손은 장갑을 끼지 않아 미끄러진다. 바닥에 있는 목장갑을 주워 한 손으로 더 잡고 두 손으로 끌어 올린다. 우와. 대박이다. 배 위의 여러 낚시꾼들이 낚시를 멈추고 구경한다. 사무장이 달려와 사진을 찍는다.

   
▲ 우와와, 한 번에 우럭 다섯 마리, 열기 세 마리

씨알 좋은 우럭 다섯에 열기 세 마리. 우락 하나는 4짜가 넘고 두 마리는 3짜 중반, 두 마리도 30을 넘는다. 바다낚시 20여 년 만에 열기 채비에 우럭 다섯 마리는 처음이다. 지난해 가거초에서도 다수확을 해보았지만 이런 사이즈는 처음이다.

이후 열기가 정신없이 올라온다. 씨알도 괜찮다. 잡다보니 24리터 쿨러가 가득차서 넣을 데가 없다. 3시 40분, 낚시가 끝이 난다. 이런 것을 '만쿨'이라 한다. 얼음 빼고 완전히 가득차고도 20여 마리 열기가 남는다. 몇 년만에 '만쿨'을 한다. 이윽고 철수.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문학박사 

   
▲ 조과의 일부. 열기, 우럭, 광어

   
▲ 쿨러는 넘치고

비응항에서 스트로폼 박스와 얼음을 사서 나누어 담는다. 이걸 어떻게 손질하나.
서해 중부권에서도 열기낚시는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1주일 간격의 낚시였다.

   
▲ 서해의 일몰

[하응백]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