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 규제하고 약자 돕자"는 경제민주화…'실체 없는' 양극화의 오류
   
▲ 현진권 자유경제원장
양극화 프레임을 깨야한다

우리 사회를 한마디로 진단하는 대표적인 용어로 ‘양극화’를 들 수 있다. 양극화를 축으로 ‘소득 양극화’, ‘이념 양극화’, ‘지역 양극화’ 등으로 파생되어서 양극화 논리는 더 확대되어 퍼져나갔다. 아마 이 용어는 이념 지형과는 관계없이 모든 진영에서 유행적으로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양극화는 이념적 용어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좌파적 논리를 확대하기 위한 프레임이다.

양극화 용어가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때는 노무현 정부시절에 청와대에서 출발하였다. 이후로 급속도로 퍼져, 지금엔 과학적 용어인 것처럼 정착되었다. 양극화가 이념적인 프레임임을 얘기하기 위해선, 우선 과학적으로 양극화가 존재하는가를 증명해야 한다. 학계에서도 양극화의 정의가 있다. 일반적으로 전체 국민의 소득격차 수준을 평가하기 위해 많이 사용하는 지표가 ‘지니계수’다. 이 계수는 전체 국민의 분포형태를 0과 1 사이의 숫자로 측정하므로 명쾌하지만, 분포의 형태에 따라 잘못된 계수 값을 줄 수 있다.

예를 들면, 지니계수 값이 개선되는 수치를 보이지만, 가장 잘 사는 계층과 가장 못 사는 계층에 상대적으로 많이 몰려 있을 경우에는 전체 계수 값은 개선되지만, 소득격차가 개선되었다고 애기할 수 없다. 그래서 지니계수 등과 같이 하나의 지표 값으로 측정하는 방식을 보완하는 개념으로 ‘소득 양극화(income polarization) 지표’를 개발하였다.

한국의 여러 가지 자료를 사용하여 한국의 소득격차 형태에서 소득 양극화가 존재하는 가를 실증 분석한 결과,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소득 양극화는 지금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그런 감성적인 개념이 아닌, 객관화한 지표로서 볼 때, 양극화는 존재하지 않음이 통계적으로 증명되었다.

지금 한국에서 통용되는 양극화는 이런 과학적 검증 논의가 없이 불쑥 개발되었고, 아무런 비판 없이 사용되고 있다. 양극화는 이름 그대로 양 극단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소득분배 구조를 보면, 일반적으로 정규분포를 따르고 있다. 즉 소득규모별로 중간계층이 반드시 존재하고, 비교적인 관점에서도 중간층이 가장 두텁게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극화란 용어를 통해, 한국 사회의 소득구조가 마치 중간층 없이 부자와 빈자로만 구성되었다는 착각을 준다.

이런 프레임은 좌파진영의 오래된 접근방식이다. 사회를 이원화해서 강자와 약자 프레임을 만듦으로써, 강자에 대한 미움과 약자들의 선동을 유도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전략인 것이다. 우리가 아무런 비판 없이 사용하는 양극화란 용어를 통해, 사회는 두 진영으로 나뉘어 있다는 세뇌를 스스로 하게 된다. 또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강자의 재산을 빼앗고, 약자에게 베푼다는 정책이 대중적 지지를 유도할 수 있다.

정치권에서 많이 애기하는 ‘경제민주화’ 정책도 바로 이런 구조 속의 정책수단들이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는 양극화란 배경이 깔려야, 대중적 힘을 가지게 된다. 이미 한국은 양극화로 소득 불균등 수준에 대한 환상을 심어둠으로써, 국민들의 양극화 인식 속에서 경제민주화라는 해결책은 지지를 받게 되는 것이다.

   
▲ 양극화 용어가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때는 노무현 정부시절 청와대에서 출발하였다. 이후로 급속도로 퍼져, 지금엔 과학적 용어인 것처럼 정착되었다./자료사진=연합뉴스


소득불균등은 어느 나라에서도 존재한다. 한국의 소득불균등 수준이 심각할까? 과학적인 검증 없이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국가가 한국이면, 양극화란 용어사용을 구태여 막을 생각은 없다. 그러나 전 세계의 소득격차 수준에 대한 연구는 OECD 등 국제기구에서 수없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일반적인 결론은 유럽 국가들이 양호한 반면, 미국이 가장 심각한 국가이며, 한국은 중간수준이란 것이 보편적인 연구결론이다.

이런 통계적 비교연구결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마치 한국의 소득불균등 수준이 매우 심각한 것인 양 오도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소득불균등이 심각한 미국에선 양극화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학계에서 논의될 뿐, 미국 사회를 진단하는데 소득격차(income disparity), 소득 불균등(income inequality) 등의 용어를 사용하지, 소득 양극화(income polarization)란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양극화는 과학적 근거도 없이 특정 정권에서 무차별적으로 사용한 이념 대립적 전략에서 개발된 용어다. 한국의 소득 불균등 수준은 양극화 용어가 주는 수준으로 심각하지는 않다. 소득 불균등 수준에 대한 평가는 과학적 분석이 뒤따라야 하는 사실 검증의 문제다. 왜냐하면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전체 분포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흔히들 주변에 있는 최악에 처한 지인들을 예로 들면서, 한국의 소득불균등 수준을 양극화로 연결해서 논리를 펴는 소위 전문가들이 많다.

그들이 아무리 최악의 상태에 처한 사람들의 예를 들어도, 이는 소수의 애기일 뿐이지, 전체 국민의 소득불균등 수준을 진단하는 데는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한국의 소득불균등 수준은 5천만 전체 국민들의 소득분포를 통해서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10명 혹은 100명의 예는 전체 국민를 통한 분석결과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득불균등에 대한 판단은 절대 본인이 경험한 주변 지인들의 경제 환경을 통해서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한 개인이 경험하게 되는 지인들의 숫자는 기껏해야 전체 국민의 1%도 안 되기 때문이다. 전체 국민 중에서 1%도 안 되는 경험을 가지고, 전체 국민의 소득불균등 수준이 어떻다고 얘기하는 것은 사실 검증 없는 주관적인 신앙 혹은 억지일 뿐이다. 

양극화 용어 사용에 왜 그리 민감한가 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양극화 용어사용에 엄격하게 반대하지 않으면, 이로 인해 파생되는 좌파적 정책을 막을 수 없다. 양극화된 것을 인정하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은 지극히 명백하다. 실제로 지금 정치권의 여당과 야당 모두가 경제민주화 프레임을 찬성하는 이유도, 우리 사회를 양극화로 진단하였기 때문이다.

양극화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에는 경제민주화란 정책수단도 명분을 잃게 된다. 경제민주화의 골격은 경제 강자를 규제하고, 경제 약자를 돕자는 것이다. 양극화라는 심각한 현실을 해결하는 효과적인 수단임을 쉽게 공감할 수 있게 만든다. 그래서 ‘경제민주화’ 정책을 반박하기 위해선 우선 ‘양극화’ 논리를 깨야 한다. 양극화 프레임에서 빠져 나와야 경제민주화 정책을 효과적으로 비판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소득불균등을 얘기할 때는 양극화란 용어 사용을 허용해선 안 되고, ‘소득격차’란 좀 더 객관적인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소득격차는 국제적으로 비교할 때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는 과학적 실체를 얘기해야 한다. 이 세상 모든 국가들도 소득격차는 존재하고, 그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은 좀 더 열심히 일할 유인이 존재한다. 소득격차라는 다소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할 때, 경제민주화 같은 계급 대립적, 투쟁적, 착취적 정책을 막을 수 있다. /현진권 자유경제원장

   
▲ 양극화는 과학적 근거도 없이 특정 정권에서 무차별적으로 사용한 이념 대립적 전략에서 개발된 용어다. 한국의 소득 불균등 수준은 양극화 용어가 주는 수준으로 심각하지는 않다./자료사진=연합뉴스


(이 글은 22일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생각의 틀 깨기’ 제 18차 연속세미나 『배 아픔의 정서를 부추기는 양극화론』에서 현진권 자유경제원장이 발표한 발제문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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