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경영권 구속, 규제 양산하는 재산권 침해·공권력의 과잉 개입
   
▲ 연강흠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이사의 자격제한 규정안에 대한 토론

상법 제382조(이사의 선임) 관련 규정에는 일반 주식회사의 이사의 선임과 관련한 자격 제한은 없다. 상법에는 이사가 짊어져야 할 책임만을 명시하고 있다. 이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은 2일 반시장범죄로 형사처벌 받은 재벌총수 등 기업인에 대해 이사 자격을 제한하는 상법개정안(제382조의5 신설)을 대표 발의했다.

박광온 의원의 법은 금고 이상의 실형을 받은 재벌총수 등 기업인의 이사 자격을 박탈하고, 형 집행이 끝나는 날로부터 5년이 지나지 않으면 이사가 될 수 없도록 하고 부정행위나 정관을 위반하는 등의 사유로 주주총회의 결의에 따라 이사의 직에서 해임된 경우도 해임된 날로부터 3년 동안 이사 자격을 제한하자는 것이다. 금융지주회사법 제38조(임원의 자격요건 등)에 실형과 관련한 제한 규정을 일반주식회사에도 적용하자는 것이다.

주식회사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면 형사처벌을 받은 자가 해당 회사의 이사직을 유지하는 것이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경우 주주총회의 결의로 해당 이사를 해임하고 선임하지 않으면 된다. 형사처벌 받은 경영자가 계속해서 경영에 간여해 앞으로도 다른 주주의 이익을 해칠 것 같으면 주가는 낮게 형성될 것이다. 형사처벌 받은 경영자를 지지했던 기존 주주들은 손해를 보겠지만 새로운 주주들은 충분히 디스카운트된 가격에 주주가 되기에 손해 볼 것이 없다.

물론 국가의 부에는 부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기업의 시가총액은 줄어들어 자원이 다른 회사로 이전될 것이다. 이것이 시장의 조정기능이다. 그렇지만 금융기관이나 국가 기간산업도 시장원리에 따라 자원배분이 이루어지도록 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금융회사는 고객의 돈을 맡아 운영하는 특수성 때문에 시장에만 맡길 수는 없다. 그래서 금융관계 법령 및 전기통신사업법 등 규제산업 관련 법령에 의해 이사의 자격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순환출자로 인한 지배주주의 존재로 인해 시장기능이 작동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 경우 지배주주가 아바타(소위 바지이사)를 이사로 세우면 상법으로 이사자격을 제한하는 실익이 줄어들고 규제만 늘어난다. 실질적인 경영참여 배제를 위해서는 의결권 제한을 통해 이사선임 자체도 배제해야 하나 주주의 부당한 의결권 제한은 재산권의 침해이다.

실효성도 없는 민간기업의 경영권을 구속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며 국회가 사기업의 경영권에 지나치게 간여함으로써 시장경제에 반하는 각종 후속 규제를 양산할 것이다. 경영의 권한이 있는 사람이 책임도 져야하기에 대주주가 실질적으로 의사결정 권한이 있다면 이사로 등재해서 책임경영을 펴라는 것이 그 동안 일관된 주장이었다. 이사자격제한은 책임경영에 배치되는 비논리적 규제이다. 시장질서의 기본을 어지럽히거나 국가경제에 급박한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일반 주식회사로의 이사자격제한은 주주 고유의 권한에 대한 지나친 공권력의 개입이다.

   
▲ 기업의 투명성을 확보는 피해 기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일률적 상법 규정보다는 현재의 법체계에서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와 같이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사진=(좌)미디어펜,(우)연합뉴스


2003년 ㈜SK의 주식을 사들인 후 최태원 일가의 퇴진을 요구한 소버린 사태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명목상의 목적으로 재벌 구조 해체와 기업 경영의 투명화를 내세웠으나 소버린은 모나코에 적을 둔 투기자본으로 이벤트를 이용한(event-driven) 차익이 실질적인 목적이었다. 당시 최태원 회장이 SK네트웍스 분식회계와 SK증권과 관련된 부당 내부 거래 등으로 검찰에 소환되고 SK 주가가 폭락해 이벤트를 만들자 소버린은 ㈜SK의 지분을 15%나 매집했다. 그리고 최태원 일가의 퇴진을 요구했다.

소버린이 세운 최상의 시나리오는 경영권을 장악한 후, SK텔레콤을 그룹에서 분리해 SK텔레콤 주가를 올린 다음 ㈜SK가 보유한 SK텔레콤 지분을 매각해 배당으로 지급하고, 그에 따라 상승한 ㈜SK 주식을 매각하고 떠난다는 것이다. 차선의 시나리오는 설령 경영권을 장악하지 못해도 최태원 일가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주식 매입이나 지배구조 개선으로 ㈜SK의 주가가 오르면 매각하고 떠난다는 것이다. 결과는 차선의 시나리오대로 되어 2년 후인 2005년 소버린은 보유한 주식 전량을 매각해 600%가 넘는 1조원의 수익을 거두었다. 만일 상법 강제 규정으로 최태원 일가를 이사회에서 퇴진시켰다면 소버린이 동조세력을 규합해 최상의 시나리오를 실현했을지도 모른다.

현재 구속수사를 받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이 이끄는 삼성전자가 또 다른 SK-소버린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사의 자격제한 규정이 도입되는 경우 투기자금이 세운 최상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은 삼성그룹에만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 전개된 것은 순환출자를 이용해 모든 계열사를 지배하는 취약한 지배구조에 있다.

그러나 순환출자는 최빈국이 고속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이다. 암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부작용으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을 강제로 없애다보면 자칫 암이 재발할 수도 있다. 경제에 치명상을 주지 않고 순환출자 문제를 해결해야지 순환출자로 인한 지엽적인 문제만 건드리다보면 기업을 잃고 경제가 망가지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기업의 투명성을 확보는 피해 기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일률적 상법 규정보다는 현재의 법체계에서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와 같이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경영자의 자세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SK텔레콤의 사례와 같이 회사 정관에 ‘금고이상의 형이 확정된 자의 이사 자격을 자동적으로 제한’하는 자체 규정을 도입할 수도 있다.

최근 유죄가 확정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과 SK그룹 최태원 회장 등이 선고 직후 스스로 모든 계열사의 이사직을 물러난다고 발표했고, 항소심이 진행 중인 CJ그룹 이재현 회장도 임기가 만료되는 계열사에 재선임되지 않겠다고 했다. 물론 부당한 경영권 위협 및 기업 탈취의 상황에서는 이사직을 보유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겨두어야 할 것이다. 그 결정은 모두 주주의 몫이다.

반시장범죄로 형사처벌 받은 재벌총수 등 기업인에 대해 이사 자격을 제한할 충분한 근거가 있더라도 사안별로 결정하게 해야 한다. 제도와 구조 문제로 주주가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라면 소수주주권 등을 통해 법원 등 중립적 기관이 판단하도록 하게 해야 할 것이다. 상황에 따라 달리 전개될 수 있는 일반 주식회사의 경영에서 선택지를 없애는 것은 배수진으로 작전 상 후퇴 및 반격의 기회를 없애겠다는 발상이다. /연강흠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 이러한 법개정으로 인해 이재용 부회장이 이끄는 삼성전자가 또 다른 SK-소버린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이사의 자격제한 규정이 도입되는 경우 투기자금이 세운 최상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사진=연합뉴스

(이 글은 2일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국회 반시장입법 동향’ 2차 연속세미나 『국회는 언제까지 자유로운 시장을 외면할 것인가』에서 연강흠 연세대 교수가 발표한 토론문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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