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적 민족주의에 무차별 평등주의…민주주의 앞세워 진보 자처하고픈 좌파
이제부터라도 좌파는 좌파라고 열심히 불러줘야 한다
 
"그 분 좌파야?"
"아~ 응, 진보적이시지"
"아~ 역시. 좌파구나"
"응... (잠시 침묵) 진보적인 성향이셔"
 
좌파와 진보 사이의 핑퐁 게임. 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한국의 좌파들은 스스로가 '진보'라 불리길 원한다. 좌파는 뭔지도 잘 모르겠지만, 왠지 어감이 좋지 않아서다. 하지만 진보라는 말은 발전 지향적이며 젊어 보이고, 세련됐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진보라고 포장해온 좌파의 전략은 성공했다. 어느덧 '좌파'라는 말 자체가 금기시되기 시작했고, 그 대신 좌파를 진보라 칭해야 교양 있고 예의바른 사람이 되는 분위기마저 형성됐다.

한국의 좌파는 진보가 아니다
 
진보라는 가치는 중요하다. 진보와 보수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이렇다.
 
▪ 진보 =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함
▪ 보수 =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 함.
 
개선과 진보를 바라지 않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특히 젊은이라면 응당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사회 변화의 앞장서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도전의식은 사회가 바라는 바람직한 청년상이고, 청년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회적 기대다. 그러다 보니 많은 청년이 스스로 '진보’를 택하게 된다. 그렇게 진보를 지향하는 청년은 자연스럽게 좌파의 이데올로기를 따라가게 된다. 한국에서 진보는 곧 좌파고, 보수는 곧 우파라는 구분이 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좌파를 진보라 부르고, 우파를 보수라 부르는 것은 애초에 잘못된 구분 방법이다. 사전적 정의애서 보듯, 좌파와 우파라는 용어는 그 어떤 이념도 포함하지 않고 있다. 이는 그저 사고(思考)의 성향을 구분한 것이다. 그런 용어를 이데올로기와 결합해 사용하면서 문제가 이상해졌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면 이런 구분이 얼마나 이상한지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에서 스스로를 진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과 경제 발전의 역사를 부정한다. 건국을 두고서는 민족을 분열시켰다고 비난하고, 세계에서 기적이라고 부르는 경제 발전에는 '독재’라는 나쁜 프레임을 씌운다. 또 모두가 평등해지는 것이 이상적인 민주주의라며 부자의 돈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자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돈을 뺏기는 부자의 자유는 안중에도 없다는 식이다. 
 
이런 반(反)대한민국적이며 반(反)자유적인 주장은 과연 진보적인가. 대한민국은 한반도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근대적인 국가로, 국민들에게 자유를 선물했다. 또한 반자유는 자유 이전의 것이다. 그러니 낡은 것을 옹호하는 이들이 결코 진보일 수 없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진보와 보수의 구분은 좌파의 우파의 구분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 이미 좌파=진보, 우파=보수라는 공식이 굳어져서 이를 바꾸는 것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청년들이 진보를 지향하기 때문에 쉽게 좌파로 빠진다./사진=연합뉴스

 
'진짜 진보'는 자유라는 가치에 있다
 
그럼에도 좌파를 진보라고 쉽게 착각하는 이유는 진보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현재와 과거를 부정하고 변화를 추구한다고 해서 진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진짜 진보가 무엇인지알기 위해서는 진보의 원동력이 된 원칙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역사적 선택의 결과를 토대로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은 역사적 퇴보의 순간을 만들었다. 박정희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생겨난 많은 신생국과 비교해 봤을 때 엄청난 경제적 진보를 불러왔다.

공산주의 국가들이 선택했던 계획경제는 결과적으로 망했고, 복지국가를 외쳤던 국가들도 결과적 실패로 다시 자유시장경제로 컴백하고 있다. 반대로 전 세계에서 가장 신자유주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미국은 결과적으로 지난 1870년부터 무려 140여년동안 평균 2.1%의 속도의 경제 발전을 이룩해냈다. 교역의 증대는 전 세계적인 부의 증가를 이끌어낸 반면 1900년대 초 발생한 세계화 후퇴의 물결 이후에는 대공황이 발생했다.
 
역사에서 진보라는 목적을 달성한 모든 선택들의 핵심에는 '자유’라는 가치가 있다. 자유를 통해 발전이 이뤄졌고, 그 결과 개인의 자유는 또 확장됐다.
 
그러니 진보를 지향하는 청년이라면 자유에 대해서 심도 있게 공부해봐야 한다. 진짜 자유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개인 자유의 확대를 주장하는 사상이 바로 자유주의(Libertarianism)다. 이는 미국 좌파를 뜻하는 자유주의(Liberalism)는 다른 용어다.
 
미리 자유에 대해서 공부해본 청년으로써 귀띔을 하자면, 자유주의는 정말 멋진 사상이다. 귀에 못이 박히게 써온 '우리’보다 '나’가 더 중요하다니, 멋지지 않은가.
 
자유주의를 한 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자유주의도 여러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핵심적인 내용은 변하지 않는다. 자유주의는 자유롭고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을 중요시한다. 때문에 전체주의에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말이다. 자유는 집단의 이름으로 맹목적으로 뭉치는 행동에 반대한다. 집단보다는 개인이 중요하다. 그 반대가 될 때는 언제나 개인에게 희생이 강요되고, 이는 필연적으로 폭력으로 변한다.
 
자유주의는 또 구성주의에도 반대한다. 인간의 이성으로 만들어낸 계획이나 구상은 생각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자들이 정부보다는 개인과 기업, 시장을 중시한다. 그래서 경제적 자유는 자유주의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자유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된다. 번영을 부르는 경제적 자유는 모든 다른 자유의 기초가 된다.
 
다만,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전에 꼭 하나 짚어봐야 하는 것이 '자유주의는 냉정하고 차갑다’는 오해다. 자유주의가 경제적 자유를 최우선의 가치 중 하나로 꼽는 것에서 많은 오해가 생긴다. 하지만 이는 자유주의는 합리적이기 때문에 나쁘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상한 말이다.

자유주의자는 자유시장경제가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를 어떻게 잘 살게 하는지 그 원리를 깨달았을 뿐이지, 자비나 자선 연대 협동의 가치 그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이는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대개 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에서 절제와 법치라는 작동 원리와 다수에 의한 지나친 확신을 경계한다. 그렇다고 다수의 지배 그 자체를 부정하고 소수의 권력 독점을 옹호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 자유주의라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거나 겁먹을 필요는 없다.

   
▲ 좌파를 진보라고 쉽게 착각하는 이유는 진보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현재와 과거를 부정하고 변화를 추구한다고 해서 진보가 되는 것은 아니다./사진=연합뉴스

 
이제 자유주의를 공부하자
 
'진보'라는 말에 유감이 많다. 인간은 누구나 진보를 지향하고, 특히 청년은 더욱 그렇다. 그런데 대한민국 우파는 진보라를 말을 좌파에게 빼앗김으로써, 청년들을 설득하는데 열세인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미 좌파=진보, 우파=보수라는 공식이 굳어져서 이를 바꾸는 것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청년들이 진보를 지향하기 때문에 쉽게 좌파로 빠진다. 이런 현실을 생각할 때 이제부터라도 좌파는 좌파라고 열심히 불러줘야 한다.
 
또 청년들 스스로도 진정한 진보가 무엇일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진짜 진보를 꿈꾸는 청년은 '우파 진보’의 길을 택해야 된다. 우파 진보가 되고 싶은 청년들은 자유주의를 공부해 보자. 정규재TV를 통해 뉴스를 챙겨보고, 자유경제원에서 소개하는 책들을 읽어보자. 그곳에 좌우논쟁을 넘어선 새로운 진보의 길이 있다. /이슬기 자유경제원 객원연구원


(이 글은 자유경제원 젊은함성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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