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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연재]소설 손양원:용서-아버지의 비밀 4-1
승인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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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18-02-08 09: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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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용구 소설가·정신과전문의
이념의 전선이 판치던 시절,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입적해 키우며 진정한 용서의 길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 목회자 손양원. 분열과 갈등, 증오로 치닫는 이 시대에 그가 던지는 울림은 감동을 넘어 가슴 묵직한 과제를 던진다. 미디어펜은 소설가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신용구 원장의 '소설 손양원:용서'를 연재한다. 소설을 통해 진정한 용서와 화해 그리고 우리사회의 병폐인 갈등과 증오를 치유하는 길을 묻는다. 필자인 신 원장은 용서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준 손양원 목사님께 감사를 드리고, 독자들 역시 손양원 목사의 인생을 통해 용서의 진정한 의미를 가슴에 한번 되새겨 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편집자 주]

   

아버지의 비밀 4-1

아버지는 암 투병 끝에 크리스마스를 사흘 앞두고 결국 우리 곁을 떠났다 내일이면 발인이라 우리 역시 아버지를 불가피하게 떠나보내야만 했다. 이 때문에 저녁이 되자 마음이 더  초조했다.

난 아버지와 애틋한 이별을 할 자신이 없었다.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여 신학 공부를 포기하긴 했지만, 아직도 내 마음속에서는 아버지와 전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유감도 많았고, 궁금한 것도 많았다. 아버지가 했던 모든 행동과 처신들은 모두가 수수께끼였다.

그는 나의 아버지였고 그는 나를 몹시 사랑했다. 엄마는 한평생 그와 살을 섞으며 살아 온 그의 아내였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아버지는 안개 속을 헤매듯 여전히 머릿속에서 잘 그려지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남아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인물이었다.

그가 숙제로 남긴 의문의 수수께끼들이 풀리지 않는 한 우리는 그를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고, 제대로 사랑할 수도 없고, 또한 완전하게 떠나보낼 수도 없을 것이라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와 우리가 나눈 사랑이 매우 특별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와 그의 이별이 원만하게 이루어지 않는다면, 그는 끈질기게 남아서 나와 우리 가족의 의식 세계에 온종일 머물 것이고, 우리와 끊임없이 치열한 논쟁을 벌일 것이고, 때로는 심술궂게 우리의 불편한 감정을 자극해 우리로 하여금 고통의 바다에서 헤매게 할 수지 모를 일이다.  

수수께끼는 한 둘이 아니다. 특별한 언급도 없이 매년 9월말이면  그는 2-3일 정도 어디론가 감쪽같이 사라졌다가 돌아왔다. 그가 걸인들에게 베푼 호의 역시 상식의 눈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떤 설명이나 해명은 고사하고 티끌만한 언질도 없이 혼자 세상을 훌쩍 떠났다. 아버지는 가는 순간까지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다. 어쩌면 몹시 인색하고 매정한 사람이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남겨진 것들은 남겨진 사람들의 몫일뿐이다. 수수께끼를 푸는 일도, 아버지를 용서하는 일도, 아버지의 속박에서 벗어나 우리를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일 뿐이다. 물론 어떤 일을 하든 않든, 모든 결과는 우리가 짊어져야 가는 하는 것들이다.
 
내일이 발인이라 상주들도 오늘 저녁만큼은 쉬어야 한다면서 문상객들이 자진해서 자리를 모두 일찍 떠났다. 덕분에 시끄러웠던 상가가 어느덧 절간같이 조용해져서, 가까운 일가친척들만 남아서 내일 있을 아버지의 발인에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누굴 기다리는지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아무도 오지 않는 대문간을 자꾸만 기웃거렸다.

때 늦은 저녁상을 물리고 나니 안방 괘종시계가 8시를 알렸는데, 이 때 검은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단신의 마른 남자가 대문을 슬그머니 밀치고  마당에 들어섰다.  

"형수님!"

어머니는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벌떡 일어나 얼른 방문을 열고 나서서 그를 맞았다.

"손 목사님!"

그는 내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누구지?'

나는 궁금증에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상주로서 빈소에서 그와 마주 보고 절을 하고는 다시 서로 의례적인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는 어머니의 안내를 받아 안방으로 갔고, 잠시 후 어머니의 호출을 받고 나도 안방으로 갔다. 

방안으로 들자 조촐한 저녁상을 들고 있던 그가 숟가락을 내려놓고는 나를 올려다보며 싱긋이 웃었다.

   
▲ 영화 '고지전' 스틸컷.

낮은 천장에 대롱거리며 매달려 있는 전구의 불빛은 겨울 햇살처럼 무척 약했지만, 안방이 겨우 3평 남짓해 60촉 백열등이 그나마 이 좁은 방안을 비추기에는 크게 부족함이 없었다.

불빛이 그의 얼굴에 비치니 얼굴 윤곽이 또렷하게 나타났다. 피골이 상접할 정도는 아니자만 몹시 말라 있어  얼굴의 굴곡이 지나치게 선명했다. 이 때문에 인상이 무척 강해 보여 보는 사람이 얼마간 부담을 느낄 법도 했지만, 눈빛만은 맑고 그윽해 보여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꽤 순수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눈에 조금 이상하게 보인 것은 전에 없던 어머니의 태도였다. 어머니는 시장 바닥에서 산전수전 다 겪어 요조숙녀와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시쳇말로 왈패가 된지 오래였고 아무데서나 방귀를 태연하게 방출할 줄 아는 얼굴이 퍽 두꺼운 아줌마였다. 

갖은 풍상을 다 겪어 백발이 성성한 어머니가 시어른을 대하듯 젊은 목사 앞에서 한쪽 무릎을 세운 채로 아주 조심스럽게 앉아 있는 것을 보니 나로서는 얼른 이해가 안 되었다.

기차 화통 삶아 먹은 듯 목소리가 괄괄한 시장의 왈패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어머니는 자신의 극성스런 구석을 어디다가 뚝 떼어놓고 왔는지, 아침 이슬에 젖은 감이파리처럼 촉촉함이 잔뜩 묻어나는 상냥한 목소리로 그에게 나를 소개했다.  

"목사님, 이놈이 경홉니다." 
"앉아요!" 

그는 어머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라 손짓을 했다. 내가 무릎걸음으로 천천히 다가서자 그는 오래전 헤어진 혈육을 대하듯 깊은 감회에 젖어 내 손을 두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참 많이 닮았어요? 아무리 보아도 진짜 아버지 판박이네요, 생전에 아버지가 경호 군 얘길 참 많이 했어요, 아버지한텐 큰 자랑거리였어요, 얼굴 잘 생기고 당신과는 다르게 공부도 아주 잘한다고 기대가 많았지요......"

자그마한 중학생 정도의 키를 가진 그의 작은 덩치에 걸맞게 그의 손도 조막만 했는데, 뜻밖애도 손이 너무 뜨거워 놀랐다.

'세상에 무슨 손이 이렇게 뜨거워!'

정말 그의 손은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같았다. 목사가 주절주절 혼잣말을 이어가다 감상에 젖어 말꼬리를 흐리자,  손깍지를 한 채 조용히 앉아있던 어머니가 헛기침을 하며 숨을 고르더니 정색을 하며 입을 열었다. 

"경호야, 목사님이 오늘 오신 것은 너한테 꼭 들려주실 말이 있어 오신거야, 아버지의 마지막 뜻이니 놀라지 말고 잘 들어."

생면부지의 남자가 내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는 것도 이상한 마당에 어머니까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꺼내어 발인을 앞두고 혼란스러웠던 내 정신이 더 갈피를 잡지 못했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엄마의 말은 영어도 아닌 한국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어머니의 말귀를 신종 외국어마냥 알아듣지를 못했다. 

'놀라지 말라니!'

내가 잔뜩 긴장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자, 어머니가 그에게 눈짓을 했고, 감정에 복받치는지 그 사이에 다시 눈자위를 붉힌 젊은 목사는 안경을 벗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잠시 기침을 하며 숨을 고른 후 자신의 옆자리에 놓아두었던 소가죽으로 된 검은 서류 가방을 끌어당겨 두꺼운 한권의 책과 좀이 슬어 군데군데 구멍이 나고 너덜너덜해진 낡은 2권의 대학 노트를 꺼내어 내 앞에 내밀었다. 

그가 내민 책 표지엔 '사랑의 원자탄'이란 제목이 붙어 있었다. 범상치 않은  책 이름처럼 그 내용 역시 가볍지 않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오히려 누르스름하게 빛이 바래 녹록치 않은 세월의 연륜을 느끼게 하는 때 묻은 대학 노트였다.

노트엔 아무런 표식이 없었다. 당연히 이 노트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내 몸에 엉겨붙어있는 더럽게 칙칙하고 혼란스러운 이 기분을 말끔히 씻어내는 데 요긴한 열쇠가 들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 했다. 오로지 내 직감일 뿐이었다. 

"이 노트는 무엇입니까?"
"아버지 일기장이에요."

나는 그에게 그의 말의 진위 여부를 묻듯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일기장의 존재 여부도 몰랐던 것도 은근히 화가 났고, 아버지의 일기장이 나에게 바로 전달되지 않고 왜 하필 그의 손에 먼저 들어가 3자의 손을 거쳐 내 손에 들어와야 했는지 그 이유도 알 길이 없어 속만 상했다. 모든 게 의문투성이였다.  

"어떻게 이걸 갖고 계신 건지요?"
"임종하시기 한 달 전에 연락을 받고 아버지를 만났어요, 그때 이걸 주시면서 적당한 때에 경호 군에게 전해 달라고 하더군요."

노트를 펼치니 접혀진 곳이 여러 곳이 있었다. 아마도 아버지가 나에게 읽어보라고 일부러 접어서 표시를 헤 둔 것 같았다. 달리는 말처럼 휘날려 쓴 유려한 필체가 아버지의 글씨가 틀림이 없었다. 미스터리한 아버지의 행동, 아버지가 남긴 일기, 이 둘 사이에 베일에 싸인 퍼즐을 풀 어떤 상징이 숨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나는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일기를 읽어 내려갔다./<계속> /신용구 소설가·정신과전문의
[신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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