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이 '사초 수준'으로 평가한 수첩 63권, 사건에 따라 다른 구조 감안해야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일명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에 대해 최순실씨 1심 재판부가 지난 13일 선고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 판단과 반대로 이를 인정해 논란이 더 불거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동일한 수첩을 두고 상급법원인 서울고등법원이 증거능력을 부정했으나 이와 다른 판단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나온 만큼, 이르면 3월말 선고될 것으로 보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에서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으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박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한 말을 수첩 63권에 빼곡히 적었다.

수첩에는 승마와 빙상, 동계스포츠 양성 및 엘리엇 방어대책·금융지주 등 박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2년간 내린 지시가 날짜별로 요약되어있어 특검팀이 '사초(史草) 수준'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앞서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는 5일 열린 선고 공판에서 "수첩이 간접 증거로 사용될 경우 우회적으로 진실성을 증명하는 것이 된다"면서 증거능력 자체를 부인했다.

법조계는 이에 대해 "박 전 대통령 지시를 그대로 받아 적었다는 안 전 수석 진술을 전제로 이 부회장과의 비공개 면담에서 나눈 대화가 진실한지 판단할 간접 증거로 쓰기에 한계가 있다는 취지"라고 해석했다.

다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안종범 수첩이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간의 대화 내용을 모두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없으나 박 전 대통령이 최씨와 관련해 어떤 불법행위를 했고 안 전 수석에게 어떤 지시를 했는지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형사재판이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긴 하지만 재판부가 사건에 따라 입증 정도의 차이를 비롯해 사안의 다른 구조를 감안해서 달리 판단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를 기소하면서 적용한 공소사실 18개 중 최씨와 공모한 것으로 조사된 공모사실은 13개에 달한다./사진=연합뉴스

또한 법조계는 "재판부가 수첩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박 전 대통령의 유무죄 판결은 뇌물 공여자인 이 부회장과 달리 뇌물 수수자로서 판단할 사안"이라면서 "이 부회장의 재판과 결론이 달라질 여지도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앞서 선고했던 차은택 광고감독의 '광고사 지분 강탈' 사건이나 장시호씨의 '영재센터 삼성 지원 강요' 사건에서 안종범 수첩을 증거로 인정한 바 있고, 13일 최씨 1심 재판부 또한 범죄 성립을 증명하는 자료로서 간접사실에 대한 증거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 공소사실 입증과 관련한 스모킹건으로는 안종범 수첩 외에도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업무일지도 꼽히고 있다.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는 이 또한 '전문(傳聞)증거(전해들은 말, 기록 등 간접증거)'는 진실을 증명할 근거가 아니라는 이유를 들며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엄격한 증명의 자료로 사용될 수 있는 법률상 자격인 '증거능력'이 없는 경우, 증거 내용의 진실성이 인정되더라도 유죄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

반면 증거능력이 있다고 인정되면 이에 따라 재판부가 증명력(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의 실질적 가치)을 어느 정도 부여할지 판단한 후 유죄 여부를 가리는 데에 활용한다.

국정농단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안종범 수첩에 대해 박 전 대통령 재판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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