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력·위계·갑을관계에 의한 성폭력 만연…수면 위로 드러난 약자 유린
[미디어펜=김규태 기자]서지현 검사가 지난 1월29일 폭로한 후 사회 각계각층을 강타한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은 가해자들의 면면을 충격적으로 드러냈다.

구조적으로는 위력·위계 등 일종의 갑을관계에 의한 성폭력이 만연했다.

검찰 조직을 시작으로 문화예술 공연계, 문단계와 정계 등 이들은 권력의 정점에서 약자들을 유린했다.

미투 도화선이었던 서 검사 성추행의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전 검사장은 법무부 검찰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검찰 내 실세였고, 연극예술가 이윤택씨는 자신이 설립한 연희단거리패·밀양연극촌의 '왕'이자 '법'이었다.

관련 의혹이 불거진 오태석씨 또한 연극계 대부와도 같은 존재이고, 9일 극단적인 선택을 한 조민기씨는 명배우이자 대학 교수로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위력을 내세워 성폭력을 일삼았다.

명지전문대 연극영상학과의 경우 남자 교수진 4명 전원이 성폭력 혐의를 받고 있는 가운데 학과장인 박중현씨는 영상편집실을 안마방으로 개조한 후 여학생 한 명씩 불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수행비서이자 정무비서였던 김지은씨에 대해 최근 8개월간 4차례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 또한 마찬가지다.

사회 각 분야에서 거장으로 인정받아 권력을 휘두르던 가해자들에게서는 또 다른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대의명분 혹은 권력자를 위해 개인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폐쇄적인 집단주의 문화다.

   
▲ 경찰청은 9일 '미투' 가해자 중 연극연출가 이윤택 씨를 비롯한 8명에 대해 정식 수사를, 11명은 수사 전 단계인 내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사진=연합뉴스

특히 그동안 연출감독이 무명배우를 키우는 전형적인 도제시스템을 보여왔던 연극계에서 미투 폭로가 촉발됐고, 성폭력 의혹이 불거진 정치권 인사 다수가 과거 운동권 전력이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점이 두드러진다.

피해자인 김씨에게 메신저로 "괘념치 말라, 잊어라"고 전한 안 전 지사의 태도에서 운동권 특유의 가부장적 여성 의식과 집단주의 위계질서가 엿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세대 운동권 전력이 있는 한 50대 남성은 이에 대해 "소위 386 운동권에게는 지금 잣대로 성범죄나 다름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며 "수배자로 지목된 여학생은 뒤를 봐주는 선배들의 표적이나 다름 없었고 운동권의 기본적인 성의식이 굉장히 폭력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운동권에게는 여성 해방이 노동 해방의 하위 개념이라 성폭력을 참아야 한다는 은폐와 억압도 암암리에 존재했다"고 덧붙였다.

가해자들에게서 보이는 또 다른 공통점은 겉으로 정의·평등·인권 등 선의를 부르짖다가도 속으로는 약자를 짓밟는 두 얼굴이다.

남녀 기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신용카드에 빗댄 음담패설을 해 사과하는 등 물의를 빚은 민중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진보 성향의 우리법연구회 출신이고,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고은 시인·박재동 시사만화가·오태석 극작가·이윤택 연출가·한만삼 신부 모두 정의·평등·인권 등의 가치를 평소 피력해온 진보 인사로 분류된다.

안 전 지사의 경우 김씨 폭로 당일인 지난 5일 도청 행사에서 "성폭력을 극복하고 여성인권을 실현하자"고 말했고, 지난달 25일 김씨에게 미투 운동을 언급하고 사과하면서도 재차 성폭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운동권 전력이 있는 한 법조계 인사는 "성해방이 인간해방이라는 좌파적 담론이 마르쿠제의 담론"이라며 "이에 동화되면 자기들이 '주체적으로 알아서 성해방을 즐긴 것'이라 착각할 수 있고 여기에 수치심이나 죄의식이 자리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사회 거의 모든 영역에 전개된 미투 운동은 그동안 속으로 곪아온 성폭력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우리 사회를 골병들게 하고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해온 각계 권력자들의 만행을 이제는 부릅뜨고 살펴봐야 할 때다.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