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삼성바이오 회계 1년 전에 확정
재계, "금감원 '말 바꾸기'로 기업 불확실성만 커져" 지적
[미디어펜=조우현 기자]금융당국이 2년 전 결정을 번복하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기준 변경을 '고의적 분식회계'라고 결론 내리면서, 이를 빌미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를 문제 삼으려는 시도가 일고 있다.

분식 회계의 출발점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있으니, 연관성만 입증되면 이 부회장의 승계 구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삼성바이오의 회계기준 변경은 합병이 결정된 다음에 발생한 일이어서 승계 문제와 무관할 것으로 보인다.

16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당과 좌파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 부회장의 승계 문제를 이번 증선위 판결과 연결시키려는 시도가 감지되고 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금감원은 삼성물산에 대한 감리에 착수하고 검찰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 분식회계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에 나선 김은정 참여연대 팀장은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 혐의에 대해 규명해야 하며, 참여연대도 그들의 범죄혐의를 규명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성바이오로직스 본사 외경 /사진=삼성바이오로직스 제공


삼성바이오 회계, 물산-제일모직 합병과 무관

하지만 이는 삼성을 '개혁' 대상으로 바라보는 일각의 시각일 뿐, 삼성바이오 회계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무관한 사안인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지난 2015년 5월 이사회에서 결정된 사안으로, 같은 해 7월 주주총회가 끝난 뒤 9월 통합 법인이 출범했다. 

반면 삼성바이오의 회계기준 변경은 이보다 한참 뒤인 2015년 연말에 반영됐고, 회계기준이 변경된 감사보고서는 2016년 4월에 발행됐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삼성바이오의 회계기준 변경보다 1년 앞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시점 상 제일모직의 합병비율 정당성을 얻기 위해 삼성바이오의 주식 가치를 확대했다는 정치권과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국정농단 재판 당시 삼성바이오 회계기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회계기준 변경이 삼성물산 합병이나 이 부회장 승계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은 시점 상 앞뒤가 바뀌어 있어 서로 관계가 없는 것이 명백하다"고 설명했다. 

금감원 '말 바꾸기'로 기업 불확실성만 커져

이번 삼성바이오 회계 처리 문제는 금감원의 '판단 번복'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과거 삼성바이오 회계처리에 대해 "문제 없다"고 결론을 내렸던 금감원은 이후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여론몰이에 편승에 입장을 번복했다. 

이에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법 집행 당국의 판단은 일관되고 명확해야 한다"며 "법을 지켜야 하는 수범자에게는 명확성과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래야만 기업이나 회계법인뿐 아니라 시장 참여자에게도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의 판단 번복으로 위기에 처한 삼성바이오는 "기업 회계 기준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은 지난 15일 새벽 전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우리 회계처리가 기업 회계기준을 위반하지 않았다"며 "행정소송 등을 통해 회계처리 적정성을 공정하게 평가받겠다"고 밝혔다.

재계는 금감원의 '말 바꾸기'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회계기준 해석'이라는 돌발 리스크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어 경영 불확실성이 급증됐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국제회계기준의 해석과 적용에 대한 금감원의 '말 바꾸기'식 판단으로 회계처리에 대한 재계의 혼란이 증폭되고 있다"며 "미래 산업 분야에서의 기업 활동이 위축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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