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등 기업 전반에 걸쳐 더 큰 폭탄될 우려…국내법과 충돌지점 많아 비준까지 갈 길 멀어
[미디어펜=김규태 기자]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빠진 채로 노동정책 사회적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22일 공식 출범할 예정인 가운데, 경사노위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을 비준하기 위해 '해고자나 실업자도 노동조합에 가입해 활동할 수 있도록 인정해야 한다'는 공익위원 권고안을 발표해 논란이 뒤따르고 있다.

민주노총은 ILO 협약 비준 등을 촉구하면서 21일 대규모 집회와 16만 명 규모에 달하는 총파업을 강행했고, 이에 일각에서는 경사노위의 공익위원 권고안에 대해 '노조 달래기에 나섰다'는 평가를 내렸다.

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가 20일 공개한 공익위원안은 "현행 노조법 조항이 ILO 핵심협약 제87호와 상충될 여지가 있어 이들의 노조 활동을 제한하지 않는 내용으로 개정되어야 한다"면서 노조가입이 허용되는 특정직 공무원에 소방관을 추가하는 내용을 골자로 협약 비준을 위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ILO 협약 내용이 비준될 경우 기업 등 재계 사용자들에게 더 큰 폭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쏟아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민노총이 하루속히 경사노위에 복귀해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대화를 이어가길 바란다"고 당부했고, 윤영석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국민들의 어려움을 외면한 몰염치한 총파업은 국민적 지탄을 받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삼화 바른미래당 수석대변인 또한 논평에서 "민노총이 배타적이고 경직된 권익을 내세울수록 대부분 노동자들의 권익은 더 악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사노위는 내년 1월까지 ILO 협약 비준을 위한 사회적 합의안을 도출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노사간 입장차가 크고 국내법과 협약이 충돌하는 지점이 많아 '비준까지 갈 길은 멀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국내법과 상충하는 협약 조항의 경우 국회 관련법 개정과 동의를 받아야 한다.

ILO 협약과 가장 먼저 부딪히는 국내법은 공무원 및 교원의 정치활동과 단체행동권을 금지한 공무원노조법 제4조와 제11조를 비롯해 교원노조법 제3조와 제8조, 제11조가 꼽힌다.

또한 해고된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둘 수 없게 한 노조법 제2조 제4호 라목 및 노조설립허가제 운영의 근간이 되는 노조법 제12조, 노동자 정의를 통해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제약하고 있는 노조법 제2조 제1호 등이 꼽히고 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협약 비준에 대해 "ILO는 노동착취 등 최악의 근로상황을 가정해 글로벌 스탠다드를 마련하는 등 노동만 보는 단체"라며 "정리해고가 일상회되거나 노동법체계가 불비되어 있어 근로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나라를 생각하면 경청할 여지가 있지만 우리나라 현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조동근 교수는 "설령 비준한다 하더라도 국내법과 부딪히는 조항의 경우 국내입법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며 "현실적으로 전혀 유연하지 못한 노동법 때문에 우리나라 노동자는 과보호 상태"라고 언급했다.

조 교수는 '해고자들의 기업별 노조가입 허용' 내용을 담은 경사노위 공익위원안에 대해 "자퇴 처분을 받은 사람이 재학생 공식모임에 참여하겠다는 격"이라며 "노사관행 등 노동시장 유연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국내법과 충돌하는 것이 너무 많아 국민정서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그는 민노총의 총파업 강행에 대해 "산하 노조원 80만명과 600만 자영업자들을 생각하면 발언권이 과도하다"며 "우리나라 2500만명 근로자 중 조직된 사람들이 6%에 불과한데 이들이 90% 이상의 대표성을 지녀야 하는가. 문재인 정부는 민노총과 결별하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바른사회시민회의 박주희 사회실장은 ILO 협약 비준에 따른 공무원·교사들의 정치활동·단체행동권 보장에 대해 "헌법 상에서도 정치적인 중립 의무가 있어 개헌과 연동된 문제"라며 "전교조 같은 경우 파업할 권리를 보장받는다면 교육자 신분보다는 노동자로서 권리를 외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박주희 실장은 "학교 현장이 정치적 이슈를 교사권리 보장으로 포장해 현장을 등지고 학생들을 교실에 둔 채 외부로 합법적인 투쟁현장에 나서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학생들 학습권 침해도 있지만 미성년 학생들에게 오도된 가치관을 심어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박 실장은 "공무원 파업이 정당화될 경우 많은 민원인 등 공공의 목적을 행할 업무들이 일시중단되거나 국민을 볼모로 삼아 자신들의 목적 성취를 위해 파업권력을 합법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 국민들에게 상당한 피해를 줄 것"이라고 관측했다.

또한 그는 ILO 협약에 대해 "세계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지침 규정이 아니고 가이드라인을 단체에서 제시하는 것에 불과해 우리나라가 이를 받아들여야 선진국이라는 주장을 할 필요가 없다"며 "국가별 법체계라든가 현장 모습, 노사관계가 자라온 배경과 역사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ILO에 얽매여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ILO 협약 비준이 현실화될 경우 안 그래도 우리나라 노동법이 너무 강한데 그렇게 까지 하면 시장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질 것"이라며 "기업에 투자여력이 사라져 더 어려워질 것이고 결국 근로자 보호가 아니라 전체 일자리를 크게 줄이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과제 중 하나다.

한국은 지난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조건으로 핵심협약 8개를 비준하기로 약속했고 지금까지 4개를 비준한 상태다.

경사노위 공익위원들의 제안대로라면 전교조 합법화를 비롯해 실체를 갖추지 못한 노조의 난립, 해고자들과의 임금협상이 불가피해져 향후 노사관계가 더 악화될 전망이다.

경사노위가 노사정 합의를 거쳐 ILO 핵심협약 비준을 추진한다 해도 사용자 등 재계의 강력한 반발과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을 감안하면 난항이 예상된다.

   
▲ 민주노총은 ILO 협약 비준 등을 촉구하면서 21일 대규모 집회와 16만 명 규모에 달하는 총파업 강행에 나섰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