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희룡 제주지사는 5일 녹지국제병원과 관련해 "내국인 진료를 금지하고 제주를 방문한 외국인 의료관광객만을 진료대상으로 하는 '조건부 개설허가'를 했다"고 밝혔다./제주특별자치도


[미디어펜=김규태 기자]국내 첫 영리병원인 '투자개방형 병원' 녹지국제병원에 대해 제주도가 외국인 진료에 한해 성형외과·피부과·내과·가정의학과 등 4개 진료과목으로 조건부 허가를 내렸지만, 병원측이 이에 '법적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개원 허가 발표와 관련해 병원 운영주체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는 6일 제주도에 공문을 보내 "진료대상을 외국인으로 한정한 결정을 일종의 책임회피"로 규정하면서 "진료대상에 내국인을 포함시켜달라는 요구가 무시당했다"며 강하게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도 관계자는 공문 내용에 대해 "내국인 진료를 제한한 허가 조건이 부당하다고 판단해 법적 대응을 검토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앞서 제주도는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가 '의료 공공성 약화'에 대한 우려로 불허 권고를 내렸으나, 원희룡 제주지사는 제주를 방문한 외국인 의료관광객만을 진료대상으로 하고 내국인 진료를 금지해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급여법에 적용되지 않는 조건으로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허가하게 됐다.

관건은 제주도가 명문화된 법 규정 없이 녹지국제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금지했다는 점이다.

제주도는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주도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제한한 경우 의료기관 입장에서 허가조건을 이행하기 위해 내국인을 대상으로 진료하지 않는 것은 진료거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밝혔지만, 대한의사협회는 이에 대해 우려하고 나섰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6일 원희룡 제주지사와 면담한 후 "한국 국적자가 녹지국제병원에 진료받으러 갔다가 거부당해 의료법 위반으로 고발할 경우, 법원이 의료법을 적용해 위법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며 "이렇게 된다면 진료 대상이 내국인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 모든 의료인 및 의료기관은 어떠한 환자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

의료법 제15조(진료거부 금지)에 따르면, 의료기관이 진료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원희룡 지사는 이에 "외국의료기관은 제주특별법에 의해 설치되는 것이고 특별법에는 허가취소 관련 구체사항을 조례로 정하게 되어 있다"며 "후속 조치로 조례를 통해 허가취소 요건과 절차를 정하도록 하겠다"고 언급했다.

최대집 회장은 "제주특별법과 관련 조례 어떠한 조항에도 녹지국제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막을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다만 의료법보다는 특별법이 먼저 적용되기 때문에 제주특별법과 관련해 제도 정비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법조계 인사는 이와 관련해 "진료거부의 경우 판례에 따르면 합당한 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며 "특별법 조례로 환자 생명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의료기관의 진료 거부에 대해 명문화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고 관측했다.

그는 "특별법에 외국인 대상 병원을 특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향후 내국인 진료와 관련해 행정소송 등의 우려가 충분하다"며 "내국인 진료를 금지하는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제한적 조건부 허용이 의미가 없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소송까지 갈 경우 재판부 입장에서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이라는 헌법적 가치, 국적에 따라 진료하지 않을 제한적 허용 등을 놓고 이를 '특별법으로 규제 가능한지' 여부를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녹지국제병원은 2002년 12월 김대중 정부가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을 통해 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한지 16년 만에 최초의 투자개방형 병원으로 탄생하게 됐으나, 2015년 보건복지부 승인을 받고도 일부 시민단체와 주민들 반대에 개원 허가가 6차례 연기된 바 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녹지국제병원 허가에 대해 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출석해 "이번 영리병원 허가는 제주특별자치도특별법에 따라 병원 개설 허가권자가 제주도지사로 정해져 있어 발생한 특수한 경우"라며 "현 정부에서 영리병원을 추진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 지사는 향후 병원운영 상황을 철저히 관리감독해 '조건부 개설 허가' 취지 및 목적을 위반할 경우 허가 취소 등 강력한 처분을 내릴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8월 제주도에 개원 허가를 신청하기 직전, 병원측은 의사를 포함해 134명 가량의 직원을 채용했으나, 1년 4개월 가까이 개원이 지연되면서 채용인력 상당수가 회사를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조건부 허가를 두고서 현행 의료법상 '내외국인 환자에 대한 구분이 없다'는 법적 맹점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병원측이 어떠한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