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참사 논란, 대통령실 자업자득…섣부른 한일정상회담 발표 등 첫 단추 잘못 꿰어
경제성과 '역대급' 자랑할만 하지만 대통령실 외교라인 '총체적 난국'…누가 책임질지 주목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Applied Materials 등 반도체 소재 장비 기업 3개사, 전기차·배터리 기업 2개사, 해상·풍력·친환경 물류업체 등 7개 기업, 11억 5000만불(1조 6362억원 상당)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이 금액은 2002년 이후 대통령 순방 계기 투자 유치 신고 기준으로  역대 최고 금액이다. 올해 상반기 투자신고 실적의 10%에 해당하는 규모다."

지난 22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해외 순방을 계기로 맺은 경제 성과에 대해 최상목 경제수석이 밝힌 내용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8~24일(현지시간) 5박 7일간 영국·미국·캐나다를 잇달아 방문했다.

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갑작스런 서거로 영국에서의 조문외교가 세간의 관심을 끌었지만, 윤 대통령 이번 순방의 목표는 바로 '경제외교' 행보였다.

성과는 나쁘지 않다. 오히려 괄목할만 하다. 미래 지향적이고 민간 기업의 경쟁력을 촉진하는 여건 마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앞서 언급한 국내로의 해외기업 R&D·제조기지 투자 유치를 비롯해 첨단산업 공급망 강화·핵심광물 안보·인공지능(AI) 연구개발 협력 등으로 요약된다.

   
▲ 9월 22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주최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이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다른 참석자들과 함께 재정공약회의 연사자 발언을 듣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맨 앞줄에 착석했다. 맨 앞줄 착석자는 왼쪽부터 윤 대통령, 빌 게이츠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 공동이사장,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기시다 후비오 일본 총리, 바이든 대통령 순이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가장 대표적 미래산업으로 꼽히는 AI 분야의 경우, 윤 대통령은 이번 순방을 계기로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에서 제프리 힌튼 교수 등 인공지능 석학들과 대화를 갖고 인공지능 기술의 바람직한 발전방안에 대해서 의견을 나눴다. 

이 행사를 계기로 한국-캐나다 14개 기업·대학·연구소 간에 AI 연구개발 협력을 강화하는 협정을 맺었다.
  
스탠포드 인공지능 지수에 따르면 한국의 AI 경쟁력은 세계 6위다. 최상목 수석은 이와 관련해 "이번 순방을 계기로 인공지능 원천기술 개발과 인공지능 인프라인 데이터와 컴퓨팅 자원 제공 등을 확대해 나간다면 한국도 인공지능 3대 강국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국과 캐나다 기업 간에 4건의 핵심 광물 협력 MOU가 체결됐고, 이를 통해 양국의 배터리 광물 기업 간 협력이 더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앞서 뉴욕에서는 미국과 한국 등 11개국이 참여하는 핵심광물 안보 파트너십 장관 회의가 개최됐다. 이 자리에서는 핵심광물 보유국가 수요국들이 폭넓게 참여하는 다자협의체 논의가 이뤄졌다. 대통령실은 이에 대해 첨단산업 공급망이 강화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세부적으로는 이번 순방을 계기로 한미 글로벌 벤처펀드에서 2.2억 불 규모의 투자가 결성됐고, 스타트업 서밋을 통해 40여 개 스타트업들이 총 1억불 정도의 투자 유치 성과를 올렸다.

결과적으로 이번 해외 순방의 경제 성과는 상당하다. 내세울만 하다.

한미 정상회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초강력 허리케인 '피오나'로 인한 피해 상황을 보고 받고 백악관이 있는 워싱턴DC로 서둘러 돌아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국내 사정으로 인해 이번 유엔총회 기간 공식 양자회담을 가진 국가 정상은 리즈 트러스 신임 영국 총리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신임 필리핀 대통령 2명에 불과했다.

그 외에 바이든 대통령이 환담했다고 미 백악관이 별도 보도자료를 발표한 정상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 뿐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유엔총회를 계기로 만난 정상은 193개국 중 5개국이었고, 한국은 그 중 하나다.

   
▲ 윤석열 대통령이 9월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문제는 '과정'이다.

발단은 섣부른 한일정상회담 발표부터였다. 출국을 사흘 앞둔 지난 15일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은 브리핑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해 놓고 시간을 조율 중에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날 이에 대해 기자들을 만나 "일본과는 양자 회담을 하기로 일찌감치 서로 합의해 놓고 일정을 조율 중"이라며 "빡빡한 일정이기 때문에 30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에 집중적으로 함께 얼굴을 마주보고 진행하는 양자 회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같은날 오후 마쓰노 히로카즈 일본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에서 "기시다 총리의 뉴욕 방문의 구체적인 일정에 대해서는 현 시점에서 아무런 결정이 나지 않았다"며 전혀 다른 입장이었다.

이후 한일정상회담 성사 여부는 기자단 내부적으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으나, 대통령실은 일절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일본정부 측에서는 이를 부인하는 소식만 계속 확인되는 가운데, (오프더레코드를 전제한) 일본측 관계자 발로 "김태효 차장이 조율 없이 너무 치고 나간다"는 냉철한 평가까지 돌았을 정도다.

국가안보실 관계자는 이에 대해 본보의 취재에 "일본은 정상회담을, 현안을 논의하는 시작점이 아니라 끝을 맺는, 외교 과정의 마지막으로 생각한다"며 "한국의 경우 대개 정상회담을 그 시작점으로 본다는 점에서 이번 사안의 경우 양자간 생각의 차이가 컸다"고 안타까워 했다.

결국 한일정상회담은 그 준비과정 모두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됐고, 회담 4시간전 열린 브리핑에서도 회담 여부에 대해 확인해주지 않고 회담이 시작한지 2분 지나서야 기자단에게 공지됐다.

지난 15일 대통령실 관계자의 말마따나 30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얼굴을 마주보고 회담을 가졌지만 약식회담에 그치면서, 사실상 '굴욕외교'라는 가혹한 평가가 뒤따랐다.

또다른 문제는 민간 기업인들이 대거 참석해 준비해왔던 대통령 일정의 잦은 변경과 취소다.

이번 해외 순방의 핵심 중 하나가 민간 투자 유치다. 이와 괸련된 주요 일정의 경우, 윤 대통령과 다른 정상과의 만남이 지연되면서 잇달아 행사 개최 시간이 지체되었고 결국 대통령의 직접 참석이 취소되면서 해당 일정 참석자들 일각에서 큰 원성이 일었다.

대통령실의 적절한 조치와 철저한 일정 관리가 아쉬운 대목이다.

   
▲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뉴욕 순방 일정 중에 김건희 여사는 뉴저지주 참전용사의 집을 찾아 노병들을 만났다. 김 여사는 이번 순방에서 영부인으로서 내조에 힘썼다. 사진은 김건희 여사가 참전용사 노병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마지막으로 불거진 문제는 '외교 참사' 논란까지 야기한 윤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이다.

당초 이 발언은 경호 엠바고가 걸려 있는 일정 말미에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회의 발언으로 시작해 언론 보도로 알려지기 전, 대통령실이 기자단과 사전 협의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이 시간에 윤 대통령에게 직접 확인을 거쳐서 발언의 사실관계 여부를 명확히 하지 않았다.

결국 논란은 하루종일 전국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대통령실이 10시간 만에 내놓은 해명은 기자들이 영상 싱크에 나온 윤 대통령 발언을 잘못 들었다는 반론이었다. 비생산적인 정쟁의 소용돌이를 야기한게 바로 윤 대통령 입인데, 그 사실관계 확인에 대해 대통령실이 10시간동안 무엇을 한 것인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 개인적으로도 이 정도 수위의 발언은 충분히 할 수 있다. 오히려 인간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발언을 방송국 카메라가 돌아가는 공적인 공간에서 사적으로 내뱉었다는 비난은 여전하다. 본심을 드러내는 발언은 윤 대통령의 조심성이 부족한 탓이다.

실언이 알려진 이상, 보도화 되기 전에 즉각 윤 대통령이 기자단에게 실수를 인정하고 직접 유감을 표명했다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7일간 이어져온 빼곡한 해외순방 일정은 24일 윤 대통령의 귀국으로 끝났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할만한 경제성과가 외교참사 논란에 묻혀 아쉬울 따름이다.

윤 대통령의 결단과 솔직한 심경 토로가 필요한 시점이다. 언제까지 말 한마디 한마디에 좌우되는, 정쟁에 목숨 거는 인간군상을 참고 봐야할지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