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보안학회, '기내 불법 방해 행위 대응 방안' 포럼 개최
사법경찰직무법·항공보안법, 객실 승무원들에 사법권 부여
대한항공, 기내 준법 지원 프로그램 통해 안전 관리 나서
[미디어펜=박규빈 기자]"객실 승무원 대부분이 남성 대비 물리력이 약한 여성이어서 기내 불법 행위에 대응하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본인의 법적 권한·수단·한계에 대한 이해와 체계적 교육이 부족해서 적절한 판단을 못하고 현장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겁니다."(임지영 대한항공 보안실장)

   
▲ 14일 한국항공보안학회는 서울 강서구 공항동 소재 한국공항공사 항공보안교육센터 2층 대회의실에서 '항공기 내 불법 방해 행위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포럼을 개최했다. 왼쪽부터 서일수 전 서울지방항공청 보안과장·김두환 한국공항공사 본부장·황호원 한국항공보안학회장·임월시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 항공보안과장·임지영 대한항공 보안실장·오상인 제주항공 보안본부장·황경철 한국항공대학교 한국항공안전교육원 부원장·김지영 인하공업전문대학 서비스학부 항공운항과 교수./사진=미디어펜 박규빈 기자

14일 한국항공보안학회는 서울 강서구 공항동 소재 한국공항공사 항공보안교육센터 2층 대회의실에서 '항공기 내 불법 방해 행위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포럼을 개최했다.

황호원 한국항공보안학회장(한국항공대학교 항공교통물류학부 교수)은 "중지를 모아 항공 보안 분야의 발전 방향을 찾고자 자리를 마련했다"며 "기내 범죄 행위에 대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이 가능한 시스템 구축에 대한 논의가 사회 전반에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임월시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 항공보안과장은 "4월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됐는데 아직 이전의 운송 실적의 50%도 안됐지만 기내 사고율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 과장은 "보안 요원들이 코로나19로 인해 휴업에 들어갔는데 준비 기간과 투입 기간을 고려해야 예전 수준으로 보안 관리가 유지된다"며 "국토부도 항공업계와 합을 맞춰 제도 개선에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국토부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9년까지 흡연을 제외한 항공기 내 불법 행위는 매년 100여 건에 달한다. 2019~2021년 대한항공 기내에서는 총 135건이 발생했다.

기내 불법 행위의 유형으로는 폭언과 같은 소란 행위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객실 승무원에 대한 폭행·협박·성적 수치심 야기 등 심각한 범죄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기내에서 유아가 시끄럽게 운다는 이유로 폭언을 퍼붓고, 이를 말리던 객실 승무원에게 난동을 피웠지만 문제의 승객에 대해 항공사 직원 그 누구도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던 '제주행 기내 난동남' 사건은 온·오프라인에 퍼졌다. 따라서 기내 불법·방해 행위에 대한 엄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 14일 임지영 대한항공 보안실장이 서울 강서구 공항동 소재 한국공항공사 항공보안교육센터 2층 대회의실에서 기내 준법 지원 프로그램(IDRP, In-flight Disturbance Response Program)'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박규빈 기자

발제를 맡은 임지영 대한항공 보안실장은 자사 '기내 준법 지원 프로그램(IDRP, In-flight Disturbance Response Program)'을 주제로 강연했다. 경찰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임 실장은 경찰청 사이버 테러 수사실장·국제항공운송협회(IATA) 보안 감독 위원 등을 역임한 바 있다. 현재 그는 기업 정보·항공·사이버 등 대한항공 전 분야 보안 업무의 1인자다.

임 실장은 "사법경찰직무법 제7조·항공보안법 제22조에 의거, 승무원들은 항공기 내 안전 관리자로서 항공보안법 위반 행위에 대한 법적 조치가 가능하다"며 "동시에 사법경찰관(리)로서 기내 일반 범죄에 대해서도 사법 조치를 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고 언급했다.

   
▲ 항공기 내 승무원들의 법적 신분은 항공보안법과 사법경찰직무법에 따라 사법경찰관에 준하게 된다./자료=대한항공 항공안전보안실 제공

현행 항공보안법 제22조에는 실제로도 질서 유지권을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장이나 그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승무원 또는 항공사 소속 직원 중 기장의 지원 요청을 받은 인물은 항공기 보안·인명·재산 위해 또는 기내 질서 교란·규율 위반 행위를 저지하기 위한 필요한 조치를 내릴 수 있다. 또한 항공기에 탑승하고 있는 경우 기장 등 권한 보유자가 요청할 경우 협조해야 한다는 조항도 존재한다.

이 외에도 국토부는 '항공 운송 사업자의 항공기 내 보안 요원 등 운영 지침'에 따라 일반 승무원들에게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범죄 현장을 녹화하고, 필요 시 신속히 제압·구금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즉, 평시에는 안전 관리자 자격으로 근무하다가 불법 행위를 적발하면 사법경찰관으로 신분이 전환되는 셈이다.

현행범 체포 요건은 △행위의 가벌성 △범죄의 현행성·시간적 접착성 △범인·범죄의 명백성 등 갖춰야 하며, 피의자가 도주할 우려나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을 경우 성립한다.

임 실장은 "현행범 체포는 법적 신분 상태를 의미하며, 반드시 포박이나 구금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며 "형사 절차의 적법성을 갖추기 위해 필요 최소한의 수단으로 포박·구금을 활용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대한항공의 IDRP는 난동 승객을 체포하고 경찰에 인계하는 게 목표가 아닌 만큼 3차에 걸쳐 경고를 통해 기내 질서를 회복시켜 전체 승객의 안전하고 편안한 비행을 목표로 한다"며 "가급적 비 범죄화를 지향하는 만큼, 문제 해결 시 즉시 일상 서비스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부연했다. 

하지만 불가피한 기내 난동 제압 상황이 생겨 체포가 결정된 때에는 명확한 법 집행 절차에 따라 신속하고 전문성 있게 대응해 사법경찰관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최근 언론에 대서특필 된 대한항공 기내 난동 사례는 2013년 4월 15일 '포스코에너지 라면 상무 사건'과 2016년 12월 20일 '480편 내 두정물산 사장 아들 기내 만취·폭행 난동 사건 등이 있다.

480편에는 미국의 유명 가수 리처드 막스도 탑승 중이었는데, 제압 과정에서 승무원들을 도왔고 이 상황을 영상으로 찍어 SNS에 공유하며 "(대한항공 측의) 훈련 받지 못한 승무원들은 전혀 난동을 막을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며 강도 높은 불쾌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특히 경찰이 현상 영상을 확인해보니 승무원들이 테이저 건 장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겨누는 시늉만 하는 등 대응 과정에서의 미숙함이 드러났다.

이처럼 사건들이 연이어 터져도 적극 대응하지 못했던 건 대한항공 역시 인심에 의한 평판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한국식 서비스 문화에 함몰돼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강경 진압을 하지 않은 건 외국인 승객들에게는 불만 사항으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 실제 이 사건은 BBC·CNN·가디언·워싱턴 포스트 등 전 세계 유력 매체들이 보도해 상황 대처 능력 부재가 도마 위에 올랐고, 대한항공은 체면을 구길 수 밖에 없었다.

   
▲ 대한항공 경영진은 보안 강화 차원에서 2019년 1월 7일부터 '기내 준법 지원 프로그램(IDRP, In-flight Disturbance Response Program)'을 가동하고 있다./자료=대한항공 항공안전보안실 제공

이 같은 지적을 수용한 대한항공 항공안전보안실은 2019년 1월 7일 IDRP를 마련했다. 또한 대한항공은 경찰 출신 3명을 특별 채용했고 현장 준법 지원 전문팀을 조직해 24시간 사건 대응 시스템을 구축함과 동시에 운항·객실 등 직책별 교육 과정도 신설했다. 준법 지원팀은 실시간 위성 전화(SATCOM)를 통해 객실 내 불법 행위를 성적 수치심 유발·업무 방해·명예 훼손·모욕 등 유형별로 나눠 관리한다.

대한항공 경영진 역시 기내 불법 행위를 엄단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지난해 6월 8일 김포발 제주행 KE1243편에서는 한 정신 질환자가 조종실 진입을 시도하다 승무원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보고를 받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당일 오후 우기홍 사장·이수근 부사장을 포함한 대한항공 임원들에게 이메일로 "엄정 대응하라"고 특단의 조치를 지시했다.

이와 관련, 실제 2019년 78건이던 대한항공 기내 범죄 행위는 2021년 25건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대한항공은 신입(법적 권한)·기성(유형별 대응)·객실 안전 강사(전문성 향상)·객실 관리자(현장 판단) 등 8000여명의 승무원들의 직급·직책에 따라 4단계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언어적 고지와 제압 등 실제 사법 경찰형 직무 실습도 병행해 실전에서 바로 적용이 가능하게 한다는 취지에서다.

객실을 지휘하는 기장·부기장 등 2800여 운항 승무원들에게는 운항 안전 회의 시간과 사내 사이버 캠퍼스 'KALCC'를 통해 전문화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 서울 강서구 공항동 소재 한국공항공사 항공보안교육센터 2층 대회의실에서 한국항공보안학회가 주최한 '항공기 내 불법 방해 행위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포럼에 70여명이 참석해 토론 내용을 청취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박규빈 기자

김지영 인하공업전문대학 서비스학부 항공운항과 교수는 "승무원들에게 사법경찰관의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지만 일반 승객들의 항공보안법에 대한 인식 수준은 낮다"며 "실정법에 대한 홍보나 고지를 적극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병석 국제대테러대응센터장은 "기내 난동은 장소만 공중일 뿐인 만큼 경찰이 수행해온 범죄 대처 방안을 적용하면 수월한 법 집행이 이뤄질 것"이라며 "국토부·경찰·공항 관계자들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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