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동하 기자]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하면서 액화천연가스(LNG) 관련 해양 설비 수요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전 세계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FLNG)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삼성중공업은 글로벌 에너지 메이저들의 대규모 프로젝트 가시화와 함께 수주 모멘텀을 맞이했다. 삼성중공업은 하드웨어 건조 역량과 표준화 전략을 앞세워 '해양플랜트 슈퍼사이클'의 수혜 기업으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삼성중공업이 개발한 심해용 FLNG 표준모델 MLF-O./사진=삼성중공업 제공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이란 전쟁 격화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로 중동발 LNG 수출이 심각한 타격을 입으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 구조가 요동치고 있다. 전 세계 LNG 물동량의 20%가 통과하는 핵심 수송로가 위협받는 가운데, 카타르에너지가 라스 라판 시설에 대해 '불가항력'을 선언하면서 공급 차질이 현실화됐다.
이에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덜한 아프리카, 미주 등에서 육상 플랜트 대신 바다 위에서 직접 가스를 채굴·액화·저장하는 FLNG로 눈을 돌리고 있다. 1기당 3조 원 안팎이 투입되는 FLNG는 수년에 걸쳐 땅을 파야 하는 육상 고정식 설비와 달리, 유사시 다른 해역으로 이동할 수 있어 에너지 안보와 직결되는 핵심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전 세계에 발주된 FLNG 10기 중 무려 6기를 건조하며 압도적인 1위 시장 점유율을 쥐고 있는 삼성중공업은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의 한가운데 서 있다. 수십 년간 탄탄한 밸류체인을 형성해 온 핵심 이해관계자들의 발주 움직임이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에너지 메이저 에니(ENI)는 최근 베네수엘라 페를라 필드(연산 350만 톤)와 아프리카 모잠비크(600만 톤)에 각각 새로운 FLNG 투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에니의 기존 FLNG '코랄 술(Coral Sul)'을 지난 2021년 성공적으로 인도하고, 현재 거제조선소에서 '코랄 노르트(Coral Norte)'를 건조 중인 삼성중공업의 추가 수주가 매우 유력하게 점쳐지는 대목이다.
미국 델핀 미드스트림이 주도하는 델핀 LNG 프로젝트 역시 쾌속 순항 중이다. 미국 멕시코만 해상에 최대 3기의 FLNG를 설치해 연간 1320만 톤의 LNG 생산능력을 갖추는 이 사업은 최근 미국수출입은행의 14억 달러(약 2조1000억 원) 규모 자금 조달 확정으로 본궤도에 올랐다. 삼성중공업은 이미 델핀과 FLNG 건조를 위한 건조의향서(LOA)를 맺고 독점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한 상태다.
이처럼 밀려드는 수요 폭발에 대비해 삼성중공업은 철저한 '기술 초격차 및 원가 절감' 전략을 꺼내 들었다. 앞서 최성안 삼성중공업 부회장은 정기 주주총회에서 독자 개발한 'FLNG 표준화 모델'을 적용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그동안 발주처의 요구에 따라 매번 새롭게 도면을 그려야 했던 맞춤형 방식에서 벗어나, 뼈대가 되는 하부 선체를 표준화해 수년에 달하는 건조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유가 고공행진 속에서 하루라도 빨리 가스전을 상업화하려는 글로벌 선사들의 니즈를 완벽히 충족시키는 동시에, 회사의 영업이익률을 극대화하는 핵심 밸류체인 혁신으로 평가받는다.
금융투자업계는 고부가가치 설비인 FLNG의 건조 마진율이 20%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하며 삼성중공업의 중장기 실적 우상향에 강한 확신을 보내고 있다. 다올투자증권 등 주요 증권사들은 "매년 1~2기의 FLNG 건조를 목표로 하고 있는 삼성중공업이 현재 밀려드는 파이프라인을 감당하기 위해 생산량을 늘려야 할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조선업계 전문가는 "거시적 지정학 위기가 글로벌 LNG 시장의 축을 해양 설비로 완전히 옮겨놓으면서, 하이엔드 해양 기술력을 보유한 국내 조선업계의 가치가 재평가받고 있다"며 "압도적인 FLNG 건조 실적에 표준화 원가 절감 전략까지 더해진 삼성중공업은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수익 체력을 증명한 셈"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동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