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들과 티켓 파워를 갖춘 톱배우들이 의기투합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년 째 창고에 머물러야 했던 이른바 '창고 영화'들이 마침내 관객을 만난다.
임상수 감독이 최민식 박해일과 함께 한 영화 '행복의 나라로'와 이지원 감독이 류승용 하지원과 함께 한 영화 '비광'이 올 상반기 개봉 소식을 알리며 영화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들의 뒤늦은 외출은 화려한 귀환인 동시에, OTT 플랫폼의 급성장과 극장용 한국 영화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씁쓸한 이면을 안고 있다.
지난 2020년 제작을 마치고 2021년 제73회 칸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됐던 영화 '행복의 나라로'(왼쪽)와 2021년 완성됐으니 창고에 처박혀 있던 영화 '비광'이 올 상반기 개봉을 예정하고 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주)콘텐츠난다긴다 제공
먼저 임상수 감독의 신작 '행복의 나라로'다. 배우 최민식과 박해일의 첫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 이 영화는 2020년 제73회 칸 영화제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될 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나, 코로나19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으며 무려 6년 가까이 표류했다.
영화는 시한부 판정을 받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탈옥수 '번호 203'(최민식 분)과 희귀난치병을 앓으며 약을 훔쳐 연명하는 환자 '남식'(박해일 분)이 우연히 만나 특별한 동행을 시작하며 벌어지는 버디 로드무비. 거침없으면서도 인간 본연의 욕망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임상수 감독 특유의 연출력이 두 대배우의 앙상블과 만나 어떤 시너지를 낼지 기대를 모은다.
이지원 감독의 '비광' 역시 2021년 촬영을 마친 뒤 약 5년 만에 극장에 걸린다. '미쓰백'으로 평단과 관객의 찬사를 받았던 이지원 감독의 신작인 '비광'은 화려하게 살다 사건에 휘말려 추락한 부부가 모든 것을 되찾기 위해 분투하는 가족 누아르다.
배우 류승룡이 전직 야구선수 출신의 황금기를 그리워하는 '중구' 역을, 하지원이 당대 최고의 톱스타에서 생계형 연예인으로 전락한 '남미' 역을 맡아 열연했다.
임상수 감독이 최민식 박해일과 함께 만든 영화 '행복의 나라로'는 코로나 19 팬데믹을 제대로 맞은 영화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두 작품의 개봉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영화계 내부에서는 이들이 겪은 긴 '지각 개봉'의 과정을 통해 한국 영화 산업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비광'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지원 감독과 주연 배우 하지원이 함께 호흡을 맞춘 ENA 드라마 '클라이맥스'는 이미 지난 16일 대중에게 공개되어 큰 화제를 모았으나, 그보다 앞서 제작된 영화 '비광'은 이제야 개봉일을 조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본과 유통의 중심이 극장에서 TV나 OTT로 급격히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팬데믹 이후 극장 관람료 인상과 OTT 플랫폼의 일상화, TV에서의 드라마 제작 활성화는 관객들의 선택 기준을 극도로 높여 놓았다. 웬만한 대작이 아니고서는 "나중에 OTT로 나오면 보겠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중간 규모의 한국 영화들은 설 자리를 잃고 투자금을 회수하기 어려운 구조에 직면했다.
영화 '비광'은 함께 했던 이지원 감독과 하지원이 나중에 제작한 ENA 드라마 '클라이맥스'를 공개한 이후에 겨우 개봉 일정을 잡을 수 있었다. /사진=(주)콘텐츠난다긴다 제공
'행복의 나라로'와 '비광'처럼 쟁쟁한 연출진과 출연진을 보유한 작품들조차 배급 시기를 잡지 못해 수년간 이자를 감당하며 창고에 쌓여 있어야 했던 이유다.
결국 이들의 지각 개봉은 한국 영화계가 처한 '홀드백(Hold-back, 극장 상영 후 OTT 공개까지의 유예 기간)' 붕괴와 극장 산업 침체의 결과물이다. 거대 자본을 앞세운 OTT 시리즈들이 제작부터 공개까지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동안, 전통적인 영화 제작 방식은 극장 관객 수 감소라는 불확실성에 가로막혀 고전하고 있다.
올 상반기 관객을 찾는 두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다면, 이는 여전히 극장에 남아 있는 '창고 영화'들에게 희망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한국 영화가 극장용 콘텐츠로서의 경쟁력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 대한 무거운 과제를 남긴다. 최민식과 류승룡, 두 연기 거장의 뒤늦은 스크린 나들이가 단순한 개봉을 넘어 한국 영화 부활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