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의 상징과도 같았던 야외 데크가 20년 만에 거대한 조각 공원에서 시민들을 위한 '공공 정원'으로 탈바꿈한다.
리움미술관은 세계적인 멕시코 작가 가브리엘 오로즈코(Gabriel Orozco)가 구상한 장소특정적 설치 작품 '가브리엘 오로즈코 정원'을 오는 4월 3일부터 일반에 공개한다고 밝혔다.
이번 프로젝트는 리움이 2004년 개관 이래 처음으로 시도하는 '커미션 정원 프로젝트'다. 그동안 리움의 야외 데크는 알렉산더 칼더, 루이즈 부르주아, 아니쉬 카푸어 등 거장들의 기념비적인 대형 조각들이 차례로 점유하며 관람객의 시선을 위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오로즈코는 이 수직적 전통을 과감히 깨뜨리고 시선을 발밑과 수평으로 낮추는 방식을 택했다. 무엇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관람객이 직접 '머무르고 걷는' 유기적인 환경을 제안한 것이다.
서울 한남동 리움 미술관에 설치된 가브리엘 오로즈코 정원. /사진=리움미술관 제공
작가 가브리엘 오로즈코는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빈 신발 상자를 바닥에 놓거나, 시트로엥 자동차를 절단해 재조립하는 등 일상적 사물에 최소한의 변형을 가해 새로운 질서를 찾아내는 작업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이번 리움 정원은 그가 런던과 멕시코시티에서 진행해온 '정원-조각 3부작'의 완결판이다.
특히 이번 정원에서 주목할 점은 오로즈코가 동아시아 전통 개념인 '세한삼우(歲寒三友)'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추운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 대나무, 매화는 이 정원의 식물학적 뼈대를 이룬다. 화려한 스펙트럼 대신 인내와 지속성을 택한 이 식재들은 도시의 소음을 차단하고 내밀한 사색의 공간을 형성한다. 충남 보령에서 채취한 보령석으로 만든 기하학적인 원형 패턴 바닥은 약 500평 규모의 데크 전체를 '플라자 1~10'이라는 열 개의 연속된 휴식처로 연결한다.
친환경 재료의 순환도 돋보인다. 기존 데크 바닥에 쓰였던 자라목 목재는 버려지지 않고 미술관 건물 외벽 마감재로 재탄생했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화려한 모뉴먼트가 아니라 지속되는 시간과 인내가 이 정원의 핵심"이라며 "세한삼우가 매서운 겨울을 견디듯, 멈추지 않고 변화하는 예술의 시간을 보여줄 것"이라고 전했다.
'가브리엘 오로즈코 정원'은 미술관 관람 여부와 상관없이 개관 시간 동안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솟아오른 조각 대신 발아래 펼쳐진 예술의 길을 걷는 경험은 한남동의 새로운 문화 랜드마크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