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건반 위의 구도자’. 이 수식어가 이토록 고집스럽게 어울리는 연주자가 또 있을까. 올해로 데뷔 70주년과 여든 번째 생일을 맞이한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슈베르트의 깊은 고독을 품고 돌아왔다.
30일 서울 여의도 신영체임버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백건우는 80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여전히 새로운 악보 앞에서 설레는 청년 같은 열정을 드러냈다.
이번 여정의 중심은 지난 26일 발매된 신보 '슈베르트'. 백건우는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3번을 비롯해 14번과 18번 그리고 20번을 앨범에 담아냈다.
'건반 위의 구도자'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30일 서울 여의도 신영체임버홀에서 자신의 데뷔 70주년을 기념하는 앨범 발매와 전국 투어 리사이틀에 대해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그는 “한 곡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적어도 세 번은 그 곡으로 되돌아와야 한다”며, “세월이 흐르고 경험이 쌓일수록 과거엔 보이지 않던 음악의 빈틈이 보이고, 그 결핍이 다시 건반 앞에 앉게 하는 욕망이 된다”고 고백했다. 70년을 연주했지만 여전히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거장의 고백은 현장에 모인 이들을 숙연케 했다.
백건우는 특히 후배 연주자들을 향해 “다양한 레퍼토리, 특히 현대 음악에 더 과감히 도전해 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자신 또한 “프랑스, 동유럽, 스페인, 영국 등 아직 손도 대지 못한 좋은 작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며 멈추지 않는 도전 의지를 보였다.
별칭인 ‘구도자’에 대해서도 “종교적 의미가 아니라, 그저 자기 일에 충실하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모든 이가 구도자일 뿐”이라며 삶을 대하는 태도로서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번 앨범에 수록된 곡들에 대해 그는 특별한 설명이나 해석을 덧붙이는 것을 경계했다. “곡이 나에게 무언가 말을 걸 때 선택할 뿐, 그것을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소리로 표현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또한 “음악은 천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 이번 수록곡은 그 중 단 하나일 뿐”이라며 자신의 음악 세계를 특정 앨범이나 곡으로 한정 짓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백건우는 이번 앨범에서는 슈베르트를 선택했다. 앨범에는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3·14·18·20번이 담겼다. /사진=미디어펜
음악의 해석과 감상이 온전히 관객의 몫이라는 소신도 확고했다. 관객들을 위한 감상 팁을 묻는 질문에 그는 “음악회에서 1시간 반 동안 무엇을 얻을지는 관객 각자의 마음에 달렸다”며 “미리 공부하고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마음을 열고 소리 그 자체를 느끼며 스스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전했다. 훌륭한 연주는 관객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는 역할을 할 뿐이라는 설명이다.
이번 리사이틀 투어는 다음 달 3일 부산시민회관을 시작으로 전국 13개 도시에서 14회에 걸쳐 진행된다. 투어의 대미는 그의 실제 여든 번째 생일인 5월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서 장식될 예정이다.
매 순간 오늘의 생경한 경험과 삶의 무게로 고전을 새롭게 읽어내는 거장의 타건이 올봄 전국 관객들에게 깊은 위로와 울림을 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