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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떫은 감, 못 먹는 감, 중도라는 단감

입력 2026-04-06 12:56:24 | 수정 2026-04-06 14:40:23
정완주 부장 | wjchung12@mediapen.com

정완주 정치부장/부국장

한국 정치에서 중도층은 언제나 권력의 목숨줄이었다. 

진보도 보수도 아닌 이 부동층이 사실상 권력의 향배를 결정한 심판자 역할을 맡아왔다. 문민정부 탄생 이후 중도층은 특정 이념에 연연하지 않았다. 시대적 요구에 맞춰 ‘섀도우 보팅’의 위력을 보여줬다. 

여야를 불문하고 누구나 먹고 싶은 감 열매. 단단한 상태에서 먹는 ‘단감’과 완전히 익은 ‘홍시’, 말려 먹는 ‘곶감’처럼 먹는 방법도 다양했다. 까다롭기는 해도 효능감이 뛰어났다. 중도의 매력이다.

이재명 정권 출범 이후 중도를 둘러싼 지형이 달라졌다. 조용한 변화처럼 보였다. 그러나 여야가 중도층을 바라보는 관점은 이전과는 판이했다. 한쪽은 중도라는 감을 덥석 베어 물었더니 ‘떫은 감’이라 당혹했다. 다른 한쪽은 ‘못 먹는 감’ 앞에서 찔러보지도 못하는 무력감에 빠졌다.

■ 중도를 삼킨 민주당...그러나 감은 떫다

최근 여론조사의 추이를 보면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취임 이후 최고치를 연신 기록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념 성향별 추세. 중도층의 긍정평가가 70%대를 넘기도 했다. 새 정부 출범 후 뒤따르는 ‘허니 문’ 효과일까. 정치권 안팎에서는 그렇게만 보지 않는다. 중도의 지지성향이 구조적 변화 과정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 변화의 핵심이 이른바 ‘뉴이재명’ 현상이다. 과거 지자체장 시절의 이재명은 두 얼굴의 정치인이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소통을 앞세운 사이다 발언으로 그는 강성 지지층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잇단 구설과 비호감도가 겹치며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안티’가 만만치 않았다.

정치인 이재명의 행보는 대통령 취임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생중계로 전달되는 국무회의 업무보고, SNS 소통 강화, 과감한 경제 정책, 실용 외교 등의 효능감이 공감대를 넓혔다. 보수까지 떠안는 파격적인 인선도 마찬가지. 그러자 대선에서 이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던 유권자들도 하나둘 우호적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뉴이재명 현상이라는 열매가 열린 것이다.

중도 확장을 넘어 진정한 보수까지 품겠다는 더불어민주당은 덥석 감을 베어 물었다. 그런데 그 감이 마냥 달지만은 않았다. 떫은 감이었다. 뒷맛이 쓴 떫은 감의 정체는 여권 내부의 신구(新舊) 권력 갈등이다.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이슈는 민주당 내부의 잠재된 균열을 건드렸다. 유시민 작가가 설파한 ‘ABC 분류법’은 갈등을 확산하는 불씨를 던졌다. 가치와 이념에 선명한 전통적 지지층. 실용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신진 세력. 결국 당내 주류를 둘러싼 신구 대결 양상으로 비화했다.

뉴이재명 현상이 만들어낸 중도층 유입은 민주당에는 선물이었다. 하지만 숙제이기도 했다. 전통적 지지층은 당의 이념적 정체성이 흔들린다고 경계한다. 반면 외연 확대를 중시하는 실용파는 강경한 이념 색채가 자신들을 밀어낼까 봐 우려한다. 선물인 줄 알았던 단감이 떫은 감으로 전락한 것이다.

■ 중도를 발로 찬 국민의힘...찌를 수도 없는 감 
 
국민의힘의 현실은 암울하다. 당 지지율이 바닥을 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민주당과의 격차는 30%포인트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더 심각한 현상은 중도층의 이탈이 두드러졌다는 점. 중도층의 국민의힘 지지율은 10%대에서 머문다. 단순한 지지율 하락이 아니라 중도층과의 사실상 결별이다.

결별의 방아쇠는 '윤어게인'이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윤석열 전 대통령 1심 선고 이후 이른바 '절윤'을 거부하며 전략적 모호성을 선택했다. 이 결정은 치명적이었다. 일반 국민 여론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기로 한 셈.

국민의힘 딜레마는 명확하다. 장 대표를 비롯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붙잡고 있는 집토끼는 극우 성향의 강성 지지층이다. 과거 한국 보수의 두터운 층을 형성한 중도-보수는 흔적도 없다. 국민의힘을 떠난 중도-보수는 무당층으로 전환했거나 일부는 민주당 지지로 돌아섰다. 전통적인 국민의힘 지지세력인 70대 이상 고령층의 이탈 현상도 그 연장선이다. 

이는 보수 진영의 선거 필승 방정식이었던 ‘중도-보수 연합’의 해체나 마찬가지다. 국민의힘에 중도는 이제 찔러보고 싶어도 손이 닿지 않는, 사실상 ‘못 먹는 감’이 됐다.

■ ‘못 먹는 감’과 ‘떫은 감’...둘 다 상품성은 없다

정권의 명운은 늘 중도의 이동 궤적과 일치했다. 지금 이재명 정권이 누리는 지지율의 고공행진 역시 중도층의 기대감이라는 부채를 밑천으로 한다. 신구 주류세력의 갈등이 격화되면 ‘저 당도 결국 싸움박질이구나’라는 거부감으로 변할 수 있다. 뉴이재명과 전통 민주당 지지층을 함께 녹이는 용광로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민의힘은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윤어게인’의 족쇄를 스스로 끊어내지 않는 한 궤멸적인 상황까지 각오해야 할 것이다. 건강한 보수가 설 자리를 잃으면 국민의힘의 존재 가치는 늘 백척간두다.

정치는 결국 민심을 얻느냐의 싸움이다. 감나무 밑에서 기다린다고 단감이 내 입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떫은 감은 숙성의 기간을 거쳐 단감이 될 수 있다. 기다릴지 말지는 선택의 몫이다. 그러나 못 먹는 감을 찔러보지도 못하는 신세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냉정한 중도층은 항상 단감을 내밀지 않는다. 굴러온 중도층을 경계하는 민주당이나 잘 지내던 중도층을 발로 차버린 국민의힘. 양당의 선택에 따라 중도층은 다시 움직일 것이다. 

[미디어펜=정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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