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약가 인하 정책을 강행하면서 국내 제약 업계에 큰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각 제약사별로 10~50% 정도의 매출 하락이 예상되고 있는데, 전통 제약사들의 경우 더욱 타격이 클 것으로 보여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본지는 재정 효율화를 앞세운 약가 인하 조치가 산업 전반의 수익 구조와 생산 기반, 연구개발 투자에 어떤 변화를 초래하는지 짚어보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정책적 간극과 현장의 대응을 함께 살펴본다. 나아가 중소제약사의 구조조정 가능성과 필수의약품 공급 안정성, 산업 경쟁력 저하 우려 등 파급효과를 분석해 제약사들의 생존 전략과 제도 보완 필요성까지 점검한다. [편집자주]
[미디어펜=박재훈 기자]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안정을 명분으로 제네릭(복제약) 약가를 오리지널의 45% 수준까지 낮추는 약가제도 개편안을 확정했다. 이번 개편안은 단일 정책 기준 역대 최대 폭의 인하로 업계에서는 현금창출 기반에 직격탄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이번 개편으로 제네릭 상한가를 기존 오리지널 약가의 53.55%에서 45%로 낮추고 이미 등재된 품목에도 약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인하를 적용하기로 했다.
◆현장 고려하지 않은 '재정 논리'…생산 기반 약화 시간문제
정부는 한국의 건강보험 진료비 중 약제비 비중이 23.8%로 OECD 평균(14.4%)보다 높고 지난 몇년간 약품비 증가 속도가 전체 진료비를 웃돌고 있다는 점을 내세우며 약제비 적정화가 시급하다는 논리를 펼친다. 아울러 제네릭 가격 거품을 걷어 재정 효율성을 높이고 절감 재원을 신약 보장성과 혁신 유인에 쓰겠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해당 ‘재정 논리’가 제약산업의 비용 구조와 규제 환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국 약제비 비중은 OECD 평균보다 높지만 이는 보험 보장범위, 유통 마진, 인건비, GMP 수준 등 각국의 제도·규제 차이가 배경이 된다. 업계는 동일한 GMP 시설·인력 기준을 요구하면서 약가만 해외 평균에 맞추겠다는 구상은 "비용은 선진국 수준으로 유지한 채 단가만 후진국 수준으로 끌어내리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이번 조정은 제약사의 현금흐름에 영향을 준다는 점이 큰 쟁점으로 거론된다. 다국적사와 일부 대형사를 제외하면 상당수 국내 제약사는 오리지널 신약보다 제네릭과 특허만료 의약품에서 현금창출을 이어왔다.
이 같은 기반을 토대로 R&D(연구개발)과 설비투자, 인력 운용이 이뤄지는 구조다. 단일 정책으로 산정률이 8.55% 빠지는 것은 단순한 가격조정이 아닌 향후 10년간 현금창출 기반이 축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영업이익률 한 자릿수 초반에 머무는 회사들이 적지 않은 가운데 이익을 더 압축할 경우 R&D를 늘리기보다 가장 먼저 인건비와 영업비, 생산라인 조정에 손을 댈 수 밖에 없다.
특히 재무 체력이 약한 중소제약사부터 구조조정 압박에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제네릭 비중이 높은 중견·중소사는 매출 상당 부분이 단계적 약가 인하 대상에 포함돼 있다. 이로 인해 수익성이 떨어지는 품목부터 생산을 줄이고 인력과 설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커진다.
업계 관계자들은 "단기 영향보다 장기적으로 국내 생산 기반이 점차 약화될 가능성이 더 우려된다"고 강조한다.
◆수익성 낮은 제품 '만지작'…필수의약품, 기준 어떻게 세울 것인가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서 개최된 약가인하 개편안 긴급간담회에서 (앞줄 사진 왼쪽부터) 김영주 종근당 대표이사, 류형선 한국의약품 수출입협회 회장,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 윤웅섭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이사장이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박재훈 기자
국내 생산 기반 약화는 곧 국민 건강과도 직결된다. 2012년 약가 인하 당시에도 수익성이 낮은 품목일수록 공급 중단 위험이 커진 사례가 나타났다.
대표적인 것이 필수의약품과 오래된 제형의 항생제·주사제다. 제조 공정은 까다로운 반면 약가는 낮게 묶여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낮은 품목으로 분류되기 쉽다.
여기에 추가 약가 인하까지 얹히면 경영진이 품목 정리를 검토할 유인은 더 커진다. 실제로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저가 정책과 비용 압박이 겹치면서 특정 항생제 주사제 공급이 중단되거나 만성적인 품절 사태가 빚어진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정부도 필수의약품과 퇴장방지의약품에 대해서는 예외·우대 장치를 두겠다고 밝혔으나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약가 수준이 기업의 생산 유인을 유지할 만큼 충분한지도 불확실하다는 평가다.
이로 인해 공급망 전반에서 ‘수익성이 낮은 고위험 품목’이 늘어날 경우 필수의약품 품절 및 품귀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개편은 정부가 바이오헬스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과도 상반된다. 정부는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을 위해 대규모 R&D 지원과 규제 완화를 약속해 왔다.
그러나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이유로 제약사의 기존 수익 기반을 흔들고 있어 정책의 방향성과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재정 안정과 산업 육성이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려면 어느 한쪽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지 않는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 이번 개편안이 제네릭을 '재정 절감의 주된 수단’으로 삼은 채 산업과 고용, 공급망에 대한 영향을 사후 보완으로 돌린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재정 효율화와 산업 육성을 병행하기 위해서는 약가 정책뿐 아니라 사용량 관리, 유통 구조 개선, 필수의약품에 대한 차등 보상 등 보다 정교한 정책 조합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단기적인 재정 절감 효과에 초점을 맞춘 접근이 누적될 경우 산업과 공급망 전반에 부담이 전가될 수 있는 만큼 정책의 속도와 강도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익명의 제약사 임원은 "제약산업이 규제산업인 만큼 정부가 설정한 방향성에 따를 수 밖에 없는 구조기 때문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것"이라며 "(개편안이)실제 고용 문제까지 직결될 수 있는 만큼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업계의 목소리를 들어야한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박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