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제네릭 및 특허만료 의약품 약가를 낮추는 대신 희귀·고가 신약 보장성을 확대하고, 혁신형 제약사에 약가 가산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입장이다. 표면적으로는 의약품에서 절감한 재원을 신약과 혁신에 재투자하는 구조다.
그러나 업계는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국내 제약사의 수익 기반이 여전히 제네릭과 개량신약에 집중된 가운데 약가 인하는 곧바로 영업이익 감소로 이어지고 이는 R&D 투자 여력 축소로 직결된다. ‘혁신 지원’이라는 정책 목표와 달리 실제로는 혁신 재원부터 줄어드는 역설적인 구조인 것이다.
제약단체들이 추산한 제네릭 약가 인하에 따른 연간 매출 감소 규모는 최대 3조6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네릭 비중이 전체 약품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국내 시장 구조를 감안하면 정책 의도와 달리 산업 전반의 현금흐름을 급격히 위축시킬 수 있는 수준이다.
또한 상장 제약사 상당수는 제네릭과 도입품목을 통해 현금을 확보해온 만큼 일부 혁신형 제약사에 한정된 약가 가산은 체감도가 낮다. 오히려 주력 품목이 가격 인하 대상이 되면서 실질적인 타격이 더 크다는 반응이다.
실제로 제약사들은 약가인하 예고와 함께 자사의 품목들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주력 제품군이 영향권에 있는 제약사들은 일찌감치 비상경영 체계에 들어가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자금 여력이 있는 상위사만이 신약 파이프라인과 글로벌 진출에 투자할 수 있고 중견·중소사는 비용 절감 중심의 방어 전략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중 구조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중소사 선택지 제한…문턱 높은 고부가에 현금 확보 시급
대웅제약 연구원들이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사진=대웅제약
재무 여력과 개발 역량이 제한적인 중소 제약사의 상황은 더욱 제한적이다. 바이오시밀러나 고부가 제형으로 전환하려 해도 초기 개발비, 임상 비용, 생산 설비 투자 등 진입장벽이 높아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 어렵다.
특히 제네릭 약가가 40%대까지 내려갈 경우 중소사의 매출 손실률이 두 자릿수에 달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와 투자 여력 자체가 빠르게 고갈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다.
해외 진출 역시 비용과 규제 부담을 고려할 때 단기간 내 선택 가능한 전략으로 보기 어렵다. 이에 따라 일부 기업은 품목 축소, 인력 구조조정, 영업비 절감 등 보수적 대응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서는 약가 인하 폭을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보다 R&D 투자 규모나 성과에 연동하는 차등 구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이번 개편안에는 이러한 세부 설계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약가 인하 여파는 이미 기업 전략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다수 제약사가 사업 목적에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동물의약품 등 인접 영역을 추가했다.
일부 기업은 부동산 임대, 폐기물 처리 등 비의료 분야까지 사업을 확대하며 현금흐름 보완에 나서는 모습이다. 이는 R&D 비용 증가와 약가 인하에 따른 수익성 압박을 동시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상위 제약사 역시 신약 투자와 병행해 안정적 수익 기반 확보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정기 배당 유지·확대, 배당 기준일 조정 등 주주환원 정책을 강화하는 동시에 CDMO(위탁개발생산)와 기술수출, 헬스케어 서비스 등 비교적 예측 가능한 수익원을 확대하는 전략이다.
업계 관계자는 "실제 주총 현장이나 오너들이 투자자들의 우려를 잠식시키기 위해 헬스케어 쪽으로도 사업을 강화해 영향권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도 "개편안이 진행되는 만큼 신약 개발에 더욱 속도를 내야겠으나 이를 위한 재원마련 방안은 각사별로 상이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