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우현 기자]노동조합법 개정안(이른바 노란봉투법)이 시행된 이후 산업 현장이 ‘악성 노사분규’와 ‘법리적 모순’이 뒤엉킨 혼돈에 빠졌다.
노동계는 법 시행 첫날부터 대통령과 장관을 ‘진짜 사용자’로 소환하며 정치 투쟁에 나섰고, 기업들은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을 지키려다 노란봉투법의 덫에 걸리는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했다.
노동조합법 개정안(이른바 노란봉투법)이 시행된 이후 산업 현장이 ‘악성 노사분규’와 ‘법리적 모순’이 뒤엉킨 혼돈에 빠졌다. 사진은 민주노총이 10일 투쟁 선포대회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미디어펜 박준모 기자
◆ 노란봉투법 따라가니 ‘진짜 사장’은 대통령?
지난 3월 10일, 노란봉투법 시행 첫날부터 민주노총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교섭을 요구하며 이재명 대통령을 겨냥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통령 스스로가 진짜 사용자로서 교섭 자리에 앉아야 한다”며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을 포함한 정부 수뇌부의 교섭 참여를 촉구했다. 이는 노란봉투법이 규정한 ‘근로조건에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의 범위를 사실상 국가 통치권자에게까지 확장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노동계의 요구가 ‘선을 넘었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노란봉투법이 규정한 ‘실질적·구체적 지배력’의 논리에 근거하면 틀린 얘기가 아니라는 해석이 나온다. 예산과 정원을 통제하는 국가 통치권자에게 사용자 책임을 묻는 것이 법리적으로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례는 법이 현실과 부딪혔을 때 국가 행정 시스템마저 마비시킬 수 있다는 ‘입법 모순’의 대표적 전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노동계는 원청 교섭을 통해 고용안정과 임금 개선, AI 도입에 따른 일자리 보호를 쟁취하겠다며 오는 7월 대규모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 '법의 모순' 증명한 포스코 사례
산업 현장에서의 혼란은 더욱 심각하다. ‘사용자성 확대’가 기업의 생존과 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포스코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된 배경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기업의 적극적인 ‘안전 관리’ 노력이 있었다.
지난해 산재 사고가 잦았던 포스코는 하청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고 중처법에 따른 처벌 리스크를 피하고자 현장 안전 관리를 대폭 강화했다. 하지만 노동위원회는 근로자의 생명을 보호하려 했던 이러한 기업의 ‘선의’를 오히려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을 입증하는 증거로 간주해 사용자성을 인정해버렸다.
하청 노동자를 위해 원청이 베푼 안전 지원과 관리가, 법적으로는 원청의 목을 죄는 족쇄가 돼 돌아온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 4월 10일까지 노동위가 사용자성을 판정한 27건 중 92%(25건)가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했는데, 대부분 ‘산업안전 의무 이행’이 핵심 증거로 쓰였다.
안전을 챙기려는 선의를 보이면 교섭 대상이 돼 노사 분규에 휘말리고, 개입하지 않으면 법을 어기게 되는 모순이 현실화 된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선의를 베풀고 의무를 다할수록 사법 리스크가 커지는 ‘도덕적 해이’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 “법 지키면 교섭, 안 지키면 감옥…불가능한 선택 강요”
법학계는 이러한 법체계 간의 정합성 상실이 결국 노동자들을 사지로 내몰 것이라고 경고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원청에 ‘하청의 안전을 책임지라’고 강제하며 경영책임자에게 엄중한 형사 처벌을 예고하는 반면 노란봉투법은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 현장에 개입하는 순간, 원청을 ‘실질적 사용자’로 몰아 하청 노조와의 단체교섭 테이블로 끌어내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법(중처법)을 지키기 위한 행위가 다른 법(노란봉투법) 위반의 결정적 증거가 되는 셈이다. 재계에서는 결국 이 판을 만든 정부 여당이 고의적으로 노조에 유리하게 법을 만들고 기업에 제재를 부과한 것 아니냐는 불만이 새어 나오고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기업 입장에서는 법을 지키려 할수록 또 다른 사법 리스크에 휘말리게 되는 구조”라며 “국가가 상충하는 의무를 부여해 어느 쪽을 택해도 기업을 범법자로 만드는 것은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모순이 계속되면 기업들은 교섭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안전 관리를 최소화하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고, 결국 현장의 안전망이 해체되는 ‘입법의 비극’이 초래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자업자득’의 비극…피해는 결국 노동자 몫
노란봉투법과 중처법이 정면으로 충돌하며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사이, 산업 현장의 안전망은 소리 없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최근 발생한 CU 물류센터 하청 노조 파업 현장의 사망 사고는, 법의 모순이 현장을 얼마나 비정상적인 대립 상태로 몰아넣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법 개정 이후 ‘진짜 사장’ 소환을 목적으로 한 노사 분규가 장기화·격렬화 되면서, 정작 유지돼야 할 현장 질서와 관리 체계는 마비됐기 때문이다.
원청이 중처법에 따라 현장 질서와 안전을 바로잡으려 해도, 그 개입이 노란봉투법상 ‘사용자성 인정’의 증거가 될 수 있다는 법리적 우려가 기업의 적극적인 관리를 주저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 일례라 할 수 있다.
결국 법적 족쇄를 피하려는 원청의 소극적 대응과 노조의 극단적 투쟁이 맞물리면서 현장의 ‘관리 사각지대’는 넓어졌고, 그 혼란 속에서 예방할 수 있었던 인명 사고가 발생하는 등 사회적 비용만 커지게 된 커지게 됐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기업이 안전을 챙기면 교섭의 늪에 빠지고, 거리를 두면 처벌 위협에 시달리는 이 거대한 ‘자승자박’의 판 속에서 산업 현장의 법치와 질서는 갈수록 후퇴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