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재훈 기자]전 세계 희귀질환 환자가 약 3억 명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실제 사용 가능한 치료제는 5%에 불과하다. 선제적인 개발에 따른 시장 선점과 입지 부상 등을 이유로 희귀질환 치료제는 블루오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희귀질환 치료제는 환자 수가 적어 시장 규모가 작을 것이라는 기존 인식과 달리 최근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가장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는 분야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새로운 블루 오션…국내 제약사 선제적 움직임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희귀질환 치료제 시장은 2025년 전체 처방의약품 매출의 약 17%를 차지하고 있으며 오는 2030년에는 20%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희귀질환 치료제는 환자 수는 적지만 대체약이 거의 없고 허가를 받으면 상대적으로 높은 약가와 시장 독점력을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글로벌 빅파마뿐 아니라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희귀질환 파이프라인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개발단계 희귀의약품’ 제도가 이런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 제도는 국내 환자 수 2만 명 이하이면서 기존 치료제가 없거나 기존 치료법 대비 안전성·유효성이 현저히 개선될 가능성이 있는 약물을 대상으로 신속심사와 일부 자료 면제 등 혜택을 부여하는 제도다.
현재 식약처가 지정한 개발단계 희귀의약품은 누적 76개로 이 중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자체 개발 중인 후보물질은 45개다. 아직 허가와 상업화까지 절차 및 단계가 남아 있으나 국내 기업들이 희귀질환 영역을 미래 성장축으로 삼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졌다는 평가다.
실제 기업별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한미약품은 개발 중인 후보물질 가운데 22건이 국내외에서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돼 국내 기업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희귀질환 분야를 확장하고 있는 곳으로 꼽힌다. 이 가운데 선천성 고인슐린혈증 치료제 ‘HM15136’, 재발·불응성 급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HM43239’, 단장증후군 치료제 ‘HM15912’, 파브리병 치료제 ‘HM15421’ 등은 식약처 지정까지 받으며 상업화 기대를 키우고 있다.
유한양행도 희귀질환 포트폴리오를 넓히고 있다. 유한양행의 고셔병 치료제 후보물질 ‘YH35995’는 최근 미국 FDA(식품의약국) 희귀의약품 지정을 획득하며 글로벌 개발 동력을 확보했다. 또한 GC녹십자는 희귀질환 분야에서 가장 뚜렷한 상업화 경험을 보유한 국내 업체 중 하나로 중증형 헌터증후군 치료제 ‘헌터라제 ICV’가 국내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았고 산필리포증후군 A형 치료제 ‘GC1130A’는 미국·한국·일본에서 임상 1상이 진행 중이다.
◆시장 성장에 따른 제도 손질…제약사 유인책 만든다
다만 시장 성장 기대와 별개로 환자 접근성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국내에서 허가된 희귀의약품 가운데 건강보험 급여 적용 비율은 52.9% 수준이다. 독일 93%, 프랑스 81.1% 등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낮은 편이다.
이는 환자 수가 적어 대규모 임상 데이터를 확보하기 어렵고 약가가 높다 보니 경제성 평가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적기 때문이다. 결국 치료제가 허가를 받아도 실제 환자들이 제때 투약받지 못하거나 본인 부담에 의존해야 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치료제 개발’과 ‘치료 접근성’ 사이 간극이 커진 것이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의식해 올해부터 제도 손질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희귀질환 치료제의 건강보험 등재 기간을 기존 최대 240일에서 100일 이내로 단축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급여 적정성 평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약가 협상,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심의 기간을 각각 줄여 허가 이후 실제 급여 적용까지 걸리는 시간을 대폭 단축하겠다는 취지다.
업계에서는 급여 진입 속도가 빨라지면 희귀질환 치료제의 사업성도 높아질 뿐 아니라 국내 기업들이 임상과 허가 이후까지 내다보고 투자에 나설 유인이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희귀질환은 환자 수가 적어도 미충족 수요가 분명하고 의미 있는 임상 데이터만 확보하면 기술수출과 허가, 상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대형 제약사까지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정부의 급여 등재 단축까지 맞물리면서 국내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 경쟁은 더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박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