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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R에서 ESG까지, 반복된 '이름 갈이'가 남긴 교훈

입력 2026-05-05 09:56:17 | 수정 2026-05-05 09:56:13
조우현 기자 | sweetwork@mediapen.com
[미디어펜=조우현 기자]한때 산업계를 풍미했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기조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를 주도했던 글로벌 금융권이 ESG를 투자 평가 기준에서 제외하거나 비중을 낮추면서, 국내 기업들 역시 대대적인 ESG 마케팅과 관련 조직을 축소하는 분위기다.

금융권의 압박이 걷히자 사실상 기업 경영의 '군더더기'였던 업무들이 정리되는 모양새다. 재계에서는 이제야 기업들이 미사여구를 걷어내고 실질적인 이윤 창출과 본업 경쟁력 제고에 집중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때 산업계를 풍미했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기조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를 주도했던 글로벌 금융권이 ESG를 투자 평가 기준에서 제외하거나 비중을 낮추면서, 국내 기업들 역시 대대적인 ESG 마케팅과 관련 조직을 축소하는 분위기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CSR·CSV 이어 ESG까지… 반복된 ‘이름 갈이’ 역사

그동안 기업을 향한 비재무적 가치 강요는 이름만 바꿔가며 반복돼 왔다. 

2000년대 초반의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의 시혜적 자선활동에 초점을 맞췄고, 이후 등장한 CSV(공유가치창출)는 사회적 가치를 비즈니스 모델에 이식하려는 시도를 보였다.

그러나 산업계에서는 이러한 개념들이 기업 본연의 혁신이나 수익성 강화와는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ESG 열풍 역시 과거의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기업의 내재적 필요보다는 금융권 평가의 요구에 맞추기 위한 ‘대외 대응용’ 활동에 치중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기업은 자유롭게 사업을 추진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창의력과 도전정신을 발휘한다"며 "기업이 스스로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을 외부 잣대로 제한하는 것은 ESG 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CSR부터 ESG까지 기업의 실질적 성장에 기여하기보다 행정적 비용과 인력 소모를 야기하는 측면이 컸다는 비판이다. 


◆ ‘돈줄’ 쥔 금융권 변심에 관심 뚝… 무엇 위한 ESG였나

ESG 열풍이 급격히 냉각된 결정적 배경은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의 태도 변화다. 

블랙록 등 주요 투자사들이 수익성 악화와 정치적 리스크를 이유로 2023년 하반기부터 ESG를 투자 지표에서 사실상 배제하기 시작하면서, 기업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ESG 공시에 매달릴 유인이 사라진 것이다. 

실제로 2024년 글로벌 ESG 펀드 자금이 사상 처음으로 순유출을 기록한 데 이어, 2026년 현재 국내외 산업 현장에서 ESG라는 단어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이른바 '용어의 폐기' 현상도 뚜렷하다. 미국 월가에서는 ESG라는 단어 자체가 정치적 논란과 수익성 저하의 상징이 되면서, 보고서에서 이 단어를 아예 지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신 '지속 가능성'이나 '회복탄력성' 같은 용어로 대체하거나 언급 자체를 피하는 것이 새로운 흐름이다.

결국 ESG는 기업의 자발적인 가치 변화가 아닌, 외부 평가자의 기준에 맞춘 ‘숙제’였다는 점이 퇴조 과정에서 증명되고 있다. 금융권이라는 채점자가 점수 매기기를 중단하자, 기업들도 굳이 실효성 낮은 미사여구를 내세울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 ESG 사라진 자리, 기업 본질 '이윤 창출'이 중심 돼야

최근 국내 주요 기업들의 행보를 보면 이러한 변화가 뚜렷하다. 

반도체, AI 등 국가 간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더 이상 모호한 ESG 지표 관리에 에너지를 분산하지 않는 모습이다. 대신 확보된 자원을 기술 개발(R&D)과 생산 시설 확충 등 실질적인 경쟁력 제고에 집중 투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기업 경영의 ‘정상화’로 풀이한다. 기업의 가장 큰 사회적 기여는 혁신을 통한 이윤 창출이고, 이를 통해 창출 되는 고용 유지 등 부가 가치 창출이지, 외부에서 설정한 도덕적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는 논리다.

재계 일각에서는 강제된 평가가 사라지면서, 그간 기업 경영에 달라붙어 있던 '쓸데없는 일' 하나가 이제야 정리된 모습이라는 냉소 섞인 안도감까지 흘러나온다. 

현진권 자유분권포럼 대표는 “ESG라는 틀에 갇혀 기업가 정신이 위축됐던 측면이 있다”며 “불필요한 미사여구를 걷어내고 시장 경쟁력이라는 본질에 집중하는 현재의 흐름은 기업과 국가 경제 전체의 효율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신호”라고 분석했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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