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동하 기자]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재편과 인공지능(AI) 전력 수요 폭증 속에서 국내 조선업계가 에너지 인프라 토탈 솔루션 기업으로 밸류체인을 확장할 조짐을 보인다. 단순한 선박 건조를 넘어 육상 발전소, 해상풍력 변전 설비, 소형모듈원전(SMR) 등 에너지의 생산부터 운송, 공급을 아우르는 인프라 구축으로 사업 구조 개편을 시도하고 있다. 고선가 선별 수주로 쌓아 올린 현금 창출력이 미래 에너지 하드웨어 시장을 선점하는 핵심 실탄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재편과 인공지능(AI) 전력 수요 폭증 속에서 국내 조선업계가 에너지 인프라 토탈 솔루션 기업으로 밸류체인을 확장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사진=제미나이
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조선사들은 조선업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에너지 밸류체인 전반으로 영토를 넓히는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기업들은 확보된 현금 자산을 단순 유보금이 아닌 미래 에너지 거점 확보를 위한 투자 재원으로 활용할 조짐을 보인다. 선박 건조라는 전통적 시장 구조에서 벗어나 글로벌 에너지 인프라 시장의 주도권을 꾀하려는 거시적 흐름으로 분석된다.
이런 변화는 글로벌 AI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확충 붐과 지정학적 위기로 인한 에너지 공급망 불안이 맞물리며 조선사가 에너지 솔루션 제공자로 부상하는 구조적 전환점을 맞이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단가가 높은 친환경 기술력을 육·해상 발전 시스템에 이식함으로써, 중국 등 후발 주자들이 진입하기 어려운 하이엔드 에너지 시장의 진입 장벽을 공고히 구축할 것으로 관측된다.
◆ AI 데이터센터 발전 엔진 선점 및 미 LNG 인프라 타진
HD한국조선해양은 기존 선박용 엔진 제조 역량을 육상 AI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 시장으로 전환하며 밸류체인을 확장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데이터센터용으로 660메가와트(MW) 규모(30기)의 발전용 엔진 공급 계약을 맺었으며, 향후 전력 수요 급증에 대응하기 위해 조립 공장 등 생산 능력 확충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다. 이는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AI 인프라 시장의 핵심 에너지 공급 주체로 거듭나겠다는 기업 전략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글로벌 에너지 패권이 재편되는 시점을 겨냥해 미국 내 에너지 인프라 프로젝트 참여 기회도 모색한다. 정부의 대미 투자 1호 후보군으로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 등의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 2곳이 검토되는 가운데 국내 조선사들이 부유식 가스 저장·재기화 설비(FSRU) 등 관련 인프라 수주를 통해 밸류체인 진입의 핵심 주체로 부상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다만 기존 투자자들의 이해관계 충돌 등 대외적 변수는 여전히 신중하게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차세대 원전인 소형모듈원전(SMR) 시장에서도 글로벌 파트너들과의 역학 관계를 강화하며 주도권 확보에 주력하는 흐름을 보인다. 미국 테라파워와 공동 연구 및 실증 공사를 추진하며 해상과 육상을 아우르는 원전 밸류체인 진입을 시도할 전망이다. 이는 단순한 하드웨어 공급을 넘어 차세대 에너지원의 표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으로 해석된다.
◆ 해상풍력 및 부유식 해상 원전 시장 주도권 모색
한화그룹과 삼성중공업 역시 바다 위 에너지 생산 기지를 구축하는 토탈 솔루션 밸류체인 확보에 집중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화오션은 한화솔루션 등 그룹 내 에너지 계열사들과 연계해 해상풍력 설치선(WTIV)부터 해상 변전소 구축까지 해상풍력 밸류체인 전반을 장악하는 전략을 내세운 것으로 풀이됐다. 해양 플랜트 기술력을 바탕으로 재생에너지 EPC(설계·조달·시공) 역량을 극대화하며 차세대 에너지 인프라 시장의 주도권을 꾀할 전망이다.
삼성중공업은 부유식 원전과 가스 생산 설비 분야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미래 에너지 시장 선점을 시도할 것으로 관측된다. 해외 원전 전문 기업인 시버그 등과 손잡고 '소형 용융염 원자로(CMSR)'를 탑재한 파워 바지선 개발에 역량을 모으는 한편, 기존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FLNG) 인프라를 고도화하는 데 주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바다 위에서 전기를 생산해 육지에 공급하는 새로운 에너지 공급 구조를 창출하려는 기업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조선사들의 체질 개선이 선박 제조라는 전통적 한계를 넘어 글로벌 에너지 프로젝트 전체를 주도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수주 호황으로 벌어들인 대규모 흑자와 막대한 순현금이 차세대 에너지 R&D와 글로벌 인프라 투자에 선제적으로 투입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내 조선사들은 배를 짓는 역할을 넘어 글로벌 에너지 인프라를 설계하고 전력을 공급하는 에너지 토탈 솔루션 기업으로 정체성을 바꾸고 있다"며 "막대한 현금 창출력과 기술력이 AI 발전 엔진과 SMR, LNG 터미널 등 차세대 에너지 밸류체인 선점의 무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동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