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서동영 기자]현대건설이 5000억 원 규모의 사모 전환사채(CB) 발행을 결정했다. 이자는 0%, 주가 하락 시 전환가액을 낮춰주는 리픽싱 조항도 없다. 돈을 빌리는 입장임에도 사실상 '갑'의 조건을 내건 셈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미래 사업에 대한 현대건설의 강한 자신감으로 읽고 있다.
현대건설 사옥 전경./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11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지난 9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5000억 원 규모의 사모 CB 발행을 의결했다. 만기는 5년, 표면이자율과 만기이자율 모두 0% 조건이다. 전환가액은 기준주가 대비 15% 할증된 수준인 15만607원으로 8일 종가인 12만2300원보다 약 23% 높다.
통상 CB는 투자자에게 이자 수익이나 리픽싱 조항 등 유인책을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번 CB처럼 이자도 없고 리픽싱도 없는 구조는 이례적으로 발행사에 유리하다. 투자자 입장에서 주가가 15만607원을 넘지 않는다면 수익이 없다.
이는 투자자들이 이자 대신 전환 차익만을 기대하고 투자에 응했다고 볼 수 있다. 현대건설이 CB 전환가액을 15만 원 수준으로 설정한 것 자체가 그 이상의 주가를 자신한다는 시그널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조달 자금은 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 해상풍력·태양광 등 신에너지 사업 투자에 활용될 예정이다. 현대건설은 하반기 홀텍과의 SMR 사업 추진, 불가리아 원전 수주 등 굵직한 뉴에너지 프로젝트를 앞두고 있어 선제적 자금 확보 차원의 발행이라는 설명이다.
현대건설은 "현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펼쳐질 사업들에 대한 유동성을 미리 갖추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현대건설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올 1분기 말 기준 약 3조3372억 원 수준이다. 이익 잉여금도 6조8038억 원에 달한다.
이한우 현대건설 대표이사가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현대건설
CB 발행과 더불어 최근 현대건설이 자사주 매입까지 병행한 점도 눈길을 끈다. 이한우 대표 등 경영진이 직접 자사주를 추가 매입하며 주가 상승에 대한 확신을 행동으로 보인 것이다.
증권가도 이번 CB 발행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IBK투자증권 조정현 연구원은 "조기상환청구권과 리픽싱 조항이 없어 일반적인 CB 대비 주주 희석 부담이 제한적"이라며 "주주가치 훼손 이벤트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한우 대표도 이미 회사의 방향을 못박았다. 지난 3월 정기 주총에서 "에너지 밸류체인 전반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검증된 핵심사업 중심의 체질 개선, 조직 역량 강화로 차별화된 경쟁력을 축적하고 이를 기반으로 지속성장을 이어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미디어펜=서동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