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서동영 기자]한때 탈원전으로 움츠렸던 국내 원자력산업이 모처럼 기지개를 켜고 있다. AI(인공지능)로 인한 전력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폭증하면서 국내에서도 원자력발전이 재조명받고 있어서다. 앞서 우리나라는 지난해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2024∼2038년)을 통해 신규 대형 원전 2기(2.8GW급)와 국내 첫 소형모듈원전(SMR·0.7GW급) 건설을 확정했으며, 최근에는 최종 부지선정(대형원전·경북 영덕/SMR·부산 기장군)까지 마무리한 바 있다.
이제 원전 시공권을 따내기 위한 건설사 간 뜨거운 각축전이 예고된다. 그동안 원전 사업을 대표해온 건설사로는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우건설 등을 꼽을 수 있으며, 이들 건설사들은 이번 기회를 발판 삼아 국내를 넘어 해외까진 보폭을 넓히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대형 원전 2기와 SMR 1기가 각각 세워질 경북 영덕(왼쪽)과 부산 기장 위치도./사진=한국수력원자력
◆AI 전력 수요에 탄소중립까지…원전 르네상스 다시 열린다
국내에서 오랜만에 원전 건설에 착수하는 이유는 AI(인공지능) 산업의 성장과 연관된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 등 대규모 전력 공급이 필요한 상황이다.
IT 시장분석 및 컨설팅 기관인 한국IDC가 지난해 6월 발간한 '한국 데이터센터 운영 및 코로케이션 서비스시장 동향' 보고를 통해 국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2025년 4461㎿에서 2028년 6175㎿까지 1.4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6175㎿는 국내 대형 원전 5~6기가 생산하는 전력량과 맞먹는다.
2050 탄소중립으로 인해 화력발전을 축소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대규모 전력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원전 밖에는 없다. 한국원자력학회 등은 이달 발표한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정책 제언'을 통해 2050년까지 대형 원전 20기와 SMR 12기가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번에 SMR이 포함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SMR은 원자로 부품을 공장에서 모듈로 생산해 현장에서 쉽게 조립할 수 있도록 설계한 전기출력 300㎿ 이하의 원자로다. 대형 원전 대비 소형이라 데이터센터 등 전력 수요처와 가까운 곳에 지을 수 있어 송전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물론 SMR 역시 원전이기에 24시간 안정적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
국내 원자력발전소 중 하나인 새울3호기 전경./사진=한국수력원자력
◆12조 대형사업에 건설업계 '들썩'…3강의 각축전 예고
건설업계에도 원전 시공에 대한 기대감이 솟고 있다. 영덕에 들어설 대형원전 2기의 공사비만 12조 원에 달한다. 원전은 단일 프로젝트로는 건설업계 최대 규모인 데다 공사 기간도 10년 안팎으로 길어 한 번 수주하면 수주잔액과 중장기 실적이 한꺼번에 채워진다. 건설사들이 이번 입찰을 2030년대까지 이어질 수주 흐름의 시작점으로 보는 이유다.
수주전의 윤곽은 이미 어느 정도 그려진다. 원전 주설비 공사는 통상 주관사와 협력사로 구성된 컨소시엄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주관사 자리를 놓고는 삼성물산·현대건설·대우건설이 경쟁할 가능성이 높다. 세 회사는 신한울, 새울 등 역대 국내 원전 주설비 공사를 번갈아 주도하며 이 시장의 3강 구도를 굳혀왔다.
세 회사의 강점은 저마다 결이 다르다. 삼성물산은 1999년 울진 5·6호기를 시작으로 UAE 바라카 원전 1~4호기, 새울 3·4호기 등 국내외서 10개 호기를 시공했다. 최근에는 특히 유럽 SMR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루마니아에서는 현지 원자력공사, 미국 뉴스케일파워와 손잡고 SMR 기본설계에 착수했고, 에스토니아 페르미 에네르기아와도 협력 관계를 맺었다.
현대건설은 국내 원전 시공 실적이 24기로 가장 많다. 여기에 미국 페르미 아메리카와 대형원전 4기 기본설계(FEED) 계약을 맺어 국내 건설사 최초로 미국 대형원전 시장에 발을 들였고, 미국 홀텍과 300MW급 SMR 2기 프로젝트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대형원전과 SMR 양쪽 모두에서 해외 트랙레코드를 쌓고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대우건설은 상용 원전부터 연구용 원자로,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입자가속기까지 원자력 관련 프로젝트 30여 개를 수행한 경험이 있다. 1991년 월성 3·4호기로 원전 시장에 첫발을 내디딘 뒤 신월성 1·2호기, 요르단 연구용 원자로(JRTR) EPC를 거쳐 지난해 6월에는 한수원과 함께 187억2200만 달러(약 25조원) 규모의 체코 두코바니 원전 2기 본계약에 성공했다. 또한 한국수력원자력과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으며 한전KPS와 SMR 분야 협력체계를 구축한 바 있다.
(왼쪽부터)현대건설, 삼성물산, 대우건설 사옥 전경./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각 사
◆"국내 발판 삼아 글로벌 시장 선도"…삼성 현대 대우, 수주 의지 천명
세 회사 모두 이번 국내 사업을 글로벌 수주 확대의 발판으로 삼으려 할 것으로 보인다. 각 사의 해외 원전 수주 경쟁력에도 직결되는 만큼 셋 모두 물러서기 어려운 싸움이다. 앞으로 컨소시엄 파트너를 어떻게 구성할지도 변수에 속한다.
삼성물산은 "최종 후보지가 선정된 만큼 이후 후속 절차도 빠르게 진행되길 기대한다"며 "이번 SMR 부지 선정을 통해 국내 SMR 산업 활성화와 한국의 우수한 공급망을 제대로 활용하여 글로벌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현대건설은 "이번 결정은 국내 원전 건설 생태계의 연속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를 통해 EPC 역량과 공급망을 유지, 강화하고 세계적 수준의 원전 건설 역량과 경쟁력을 지속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어 "나아가 국내 기업들의 원전 수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우건설은 "대우건설은 원전 전 생애주기에 대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한 국내 대표 원전 건설사"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같은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향후 추진될 국내 대형원전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계획"이라며 "대형 상용 원전뿐만 아니라 미래형 원전인 한국형 SMR 분야에서도 개발 초기 단계부터 사업에 참여해 온 만큼, 우리 기술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도록 역할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미디어펜=서동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