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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여가는 도급인 의무·책임…규제 철폐엔 '묵묵부답'

입력 2026-07-11 09:40:52 | 수정 2026-07-11 09:40:38
조태민 기자 | chotaemin0220@mediapen.com
[미디어펜=조태민 기자]건설현장 도급인에게 안전 의무와 책임을 강화하는 흐름은 이어지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권한 정비는 국회 문턱에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작업중지 요구권 등 일부 권한 보강 조항이 담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본회의 심의 단계에 머물면서 책임과 권한의 불균형 논의가 다시 고개를 드는 모습이다.

건설현장 도급인에게 안전 의무와 책임을 강화하는 흐름은 이어지고 있지만,권한·비용 구조를 함께 손보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본회의 심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사진=김상문 기자

 
1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 대안은 지난 2월 12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에서 대안 가결된 뒤 같은 달 23일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심사를 거쳐 현재 본회의 심의 단계에 올라 있다. 법사위 처리 이후 넉 달 넘게 의결일자와 의결결과는 비어 있는 상태다.

개정안은 여러 산업안전 관련 법안을 통합한 위원회 대안이다. 원안 30건을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고 각 법률안 내용을 통합해 위원회 대안을 제안한 형태로,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2월 12일 소위원회 심사 결과를 받아들여 위원회 대안을 제안하기로 의결했다.

핵심 조항 중 하나는 작업중지 요구권 확대다. 개정안은 근로자, 근로자대표,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 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거나 우려되는 경우 사업주에게 필요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관계수급인 근로자가 작업하는 경우에는 관계수급인 사업주뿐 아니라 도급인에게도 조치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요구를 받은 도급인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조치해야 한다.

건설현장으로 보면 하수급 근로자가 위험을 느꼈을 때 하수급 사업주 외에 원청인 도급인에게도 직접 작업중지 조치를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새로 열리는 셈이다. 원청 책임은 커졌지만 정작 하수급 근로자에 대한 직접 통제 수단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이어져 온 만큼, 현장 안전관리 권한을 일부 보강하는 성격이 있다.

다만 법안 전체가 도급인 권한 확대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도급계약 체결 때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도급금액에 계상하도록 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개정안은 건설공사도급인이 하도급계약을 체결할 때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도급금액에 계상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제72조를 손보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반복 산재 사업주에 대한 제재도 강화된다. 최근 3년간 영업정지 처분을 2회 이상 받은 사업주가 다시 영업정지 요청 대상이 되면 고용노동부 장관이 관계 행정기관장에게 해당 사업의 등록말소 또는 취소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사업주가 안전조치·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해 최근 1년간 근로자 3명 이상이 사망한 경우 영업이익의 5%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근거도 신설했다.

이 때문에 건설업계에서는 개정안이 권한 보강과 부담 확대를 함께 담고 있다는 점에 관심을 두고 있다. 작업중지 요구권 확대는 도급인의 현장 조치와 연결되지만, 산업안전보건관리비 계상 의무화나 과징금 신설, 등록말소 요청 근거는 비용과 제재 부담을 키우는 조항에 가깝기 때문이다.

도급인의 책임 강화 흐름은 이미 2019년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 이후 이어져 왔다. 당시 개정으로 도급인의 안전보건 조치 범위와 처벌이 대폭 강화됐고, 최근 계류 중인 개정안에서도 작업중지 요건 완화와 등록말소 요청, 과징금 신설 등 의무·책임 강화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

반면 이를 이행할 권한은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국내 도급인이 관계수급인 근로자에 대해 사업주와 같은 내용의 안전보건조치 의무와 사망사고 시 7년 이하 징역에 해당하는 형사책임을 부담하지만, 법적 수단은 관계수급인에 대한 시정요구권과 산업안전보건관리비 지급 관련 권한에 한정돼 있다고 분석했다. 관계수급인 근로자에 대한 직접 통제 수단은 안정적으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주요국과 비교해도 국내 제도는 책임과 권한의 연결 장치가 약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건산연 비교표에 따르면 한국 도급인의 개인 최대 처벌은 7년 이하 징역으로 호주 15년 이하 징역 다음으로 높지만, 권한 핵심 도구는 시정요구권과 산업안전보건관리비에 머물렀다. 호주와 영국은 안전관리계획 등을 통해 현장 특성에 맞는 안전 규칙을 설계하고 수급인과 근로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통제설계권을 두고 있는 것과 차이가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원청의 안전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 자체에 반대하기는 어렵지만, 책임을 물으려면 현장에서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도 함께 정리돼야 한다"며 "작업중지나 시정 요구, 안전비용 집행 구조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재만 커지면 현장에서는 실질적 예방보다 책임 회피를 위한 문서 관리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조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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