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서동영 기자]이주비 대출 제한이 도시정비사업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특히 주택 공급 상당 부분을 정비사업에 의존해야 하는 서울시는 이주비 대출 제한을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나, 정부는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주민 이주 후 철거를 진행 중인 서울의 한 재개발 사업지./사진=미디어펜 서동영 기자
오는 23일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하는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에서 정비사업 규제 완화 여부가 논의될지 주목된다.
주택 공급 대부분을 정비사업에 의존하는 서울시에는 중요한 이슈다. 지난 14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국무회의 참석 후 서울시청에서 별도 브리핑을 열고 부동산시장 정상화를 위한 3개 분야, 8개 정책과제를 정부에 건의한 바 있다.
특히 정비사업 이주비 대출 LTV(주택담보인정비율)를 현행 40%에서 70%로 확대해 달라고 요청했다. 서울시장이 직접 확대를 요구할 정도로 이주비 대출은 정비사업에 있어 중요한 문제다. 정비사업 시 조합원이 이주할 때 받는 조합원 소유 주택(종전 자산)을 담보로 금융기관으로부터 이주비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원활한 이주와 철거로 사업을 빠르게 진행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지난해 6월 27일 정부가 내놓은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6·27 대책)이다. 당시 서울 아파트값이 급등하자 정부는 긴급 가계부채 점검회의를 거쳐 주담대 한도를 6억 원으로 일괄 제한했는데 조합원 이주비 대출도 함께 묶였다.
정부가 이주비까지 규제한 명분은 가계부채 총량 관리다. 이주비 대출만 예외로 풀어주면 전체 대출 규제의 실효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논리다. 이주비 명목으로 나간 자금이 실제로는 다른 용도의 투자 자금으로 흘러갈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취지도 깔려 있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이주비 대출 LTV 완화 등 다주택자 관련 규제 완화를 "검토한 바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주비 대출만으로는 조합원이 철거 후 공사기간 중 머무를 집을 구하기가 어렵다. 대부분의 조합원이 생활반경, 자녀의 학교 등을 고려해 기존 주거지 인근으로 옮기려 한다. 하지만 보통 인근 지역 전월세 물량은 해당 정비사업으로 인해 가격이 크게 오르기 마련이다.
때문에 조합원들은 시공사의 신용을 바탕으로 조달하는 '추가 이주비'를 받을 수밖에 없다. 추가 이주비는 시공사가 신용 보강을 통해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조합에 대출을 실행 후, 조합이 조합원에게 대여하는 방식이다. 정부의 LTV·DSR 규제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그러나 추가 이주비 금리는 통상 기본 이주비보다 높은 데다, 그나마도 대형 건설사가 시공사로 참여하는 주요 사업지가 아니라면 받기가 쉽지 않다. 이사가 부담스러운 조합원들이 늘어날수록 이주가 늦어져 사업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이주비 부족의 파장은 '이주 지연'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백두진 서울시 부동산금융정책팀장은 "이주비 대출 부족이 정비사업에 미치는 영향이 단순히 '이주가 며칠 늦어지는' 수준을 넘어선다"며 사업 자체를 좌초시키는 구조적 문제라고 짚었다. 백 팀장은 지난 15일 부동산금융 토론회에 참석해 이주비 대출을 주제로 패널들과 토론한 바 있다.
백 팀장은 정비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로 시공사 선정을 꼽으며 "국내 정비사업은 금융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대부분 시공사의 신용과 자금력에 의존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강남권 등 사업성이 좋은 현장에는 대형 건설사들이 "추가 이주비를 무제한으로, LTV 150%대까지도 해주겠다"며 앞다퉈 뛰어들지만, 사업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에서는 건설사들이 신용 여력(부채비율·재무구조 관리 등)을 이유로 이주비를 충분히 대주지 못해 시공사 선정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어 "시공사 선정이 안 되면 점점 신용 등급이 낮은 건설사들이 들어오고, 이들은 부족한 신용을 결국 공사비에 반영한다"며 "주민들 입장에서는 브랜드는 낮은데 공사비는 높아지니 사업을 포기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설령 사업이 진행되더라도 공사비가 늘어나면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서울 주택가격 상승 압박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이런 현장의 어려움은 지난 14일 국토교통부의 공개 토론회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김명희 신길2구역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 위원장은 "이주비 대출이 막히면 주민은 이사조차 갈 수 없고 결국 철거와 착공도 불가능하다"며 "공급 확대를 추진하면서 공급의 출발점인 자금 조달을 막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한발 더 나아가 애초에 이주비에 LTV를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개념적으로 맞지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주비는 개인이 집을 사기 위한 자금이 아니라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자금인데, 지금은 이걸 계속 주담대의 프레임에 넣어 규제하다 보니 '얼마를 풀어줘야 하느냐'는 논의만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백두진 팀장은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면, 최소한 LTV를 70% 수준까지는 풀어줘야 한다는 게 서울시의 의견'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정부는 가계부채 총량 관리라는 원칙을 쉽게 양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때문에 이주비 대출 완화 여부는 대통령 주재 대토론회에서도 핵심 쟁점 중 하나로 다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하는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는 오는 23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전문가와 업계, 인플루언서, 맘카페, 시민단체 인사 등이 참석, 주택공급, 금융, 세제 등 주요 이슈들에 대해 각 계 및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정책 방향을 모색할 예정이다.
[미디어펜=서동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