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과 메신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생성형 AI까지 디지털 산업 전반에서 플랫폼의 영향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콘텐츠를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쟁을 넘어 이용자와 데이터, 유통을 연결하는 플랫폼 경쟁이 산업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미디어펜은 이번 '플랫폼 시대' 기획을 통해 글로벌 빅테크 중심으로 재편되는 시장에서 '토종 플랫폼의 의미와 경쟁력, 그리고 과제'에 대해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배소현 기자] 한국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연이어 흥행하며 한류의 산업적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 예능을 넘어 K팝 공연까지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에 유통되면서 콘텐츠 산업은 한국의 주요 수출 분야로 자리 잡았다.
다만 흥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독료와 광고, 이용자 데이터, IP(지식재산권) 등 핵심 수익은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비롯한 해외 플랫폼에 집중되는 구조다. 한국이 콘텐츠를 생산하면 글로벌 플랫폼이 유통망과 이용자를 확보해 흥행 이후의 수익까지 가져가는 흐름이 굳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만의 콘텐츠 흥행 성과가 제작사와 창작자, 국내 플랫폼으로 환류될 수 있는 수익 구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토종 플랫폼의 경쟁력이 약화될 경우 콘텐츠 투자와 유통, IP 확보까지 해외 플랫폼 의존도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수출산업 된 K콘텐츠… 글로벌 흥행 지속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콘텐츠산업조사에 따르면 국내 방송·영상산업 수출액은 2016년 4억1120만 달러에서 2024년 12억5720만 달러로 약 3배 증가했다. 2024년 수출액은 전년보다 20% 늘었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 예능은 글로벌 OTT를 통해 해외 시장에서 꾸준히 소비되고 있다. '킹덤'과 '오징어 게임'을 비롯한 다수의 작품이 세계 각국에서 흥행했고, 국내 개봉 당시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 영화가 OTT 공개 이후 여러 국가의 톱10에 진입하는 사례도 이어졌다.
글로벌 OTT는 국내 콘텐츠가 해외 이용자와 만나는 핵심 유통 창구로 자리 잡았다. 제작사와 방송사는 이를 통해 국가별 유통망을 별도로 구축하지 않고도 해외 시장에 작품을 선보이고 제작비를 확보할 수 있다. AI 기반 추천 서비스와 다국적 이용자 기반을 갖춘 플랫폼을 활용하면 단기간에 글로벌 시장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반면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흥행하더라도 구독료와 광고, 이용자 데이터 등 플랫폼 수익은 유통망을 보유한 글로벌 사업자에 집중되는 구조다. 국내 제작사는 계약 당시 정해진 제작비와 판권 수익을 확보하는 경우가 많아 흥행 이후 발생하는 장기 수익까지 충분히 공유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한국 콘텐츠의 글로벌 경쟁력이 높아진 만큼 흥행 이후 발생하는 수익이 제작사와 창작자, 국내 플랫폼의 재투자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해외 유통 경로를 적극 활용하더라도 국내 사업자가 IP와 후속 사업 수익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넓혀야 한다는 설명이다.
◆ 적자 이어지는 토종 OTT… 수익 환류 구조 필요
넷플릭스가 K콘텐츠를 활용해 구독과 광고, IP 수익을 확대하는 동안 국내 OTT의 경영 상황은 어려워져갔다. 티빙은 지난해 연매출 4060억 원과 영업손실 698억 원을 기록했다. 웨이브도 매출 1809억 원, 영업손실 108억 원으로 적자를 이어갔다.
두 회사의 매출을 합해도 약 5869억 원으로 넷플릭스 국내법인 매출의 절반을 조금 웃돈다. 국내 OTT는 콘텐츠 제작비와 스포츠 중계권, 마케팅 비용을 지속 부담하는 것은 물론 AI 추천 서비스와 광고 사업 경쟁에도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내수 중심의 가입자와 광고 매출만으로는 투자비를 회수하기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은 이용자 기반과 협상력을 키울 방안으로 거론된다. 다만 주주 간 이해관계와 기업가치 산정 문제 등이 얽히면서 통합 작업은 아직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내 플랫폼의 경쟁력이 약화될 경우 콘텐츠 산업 전반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글로벌 플랫폼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투자와 유통, 서비스 운영 기준이 해외 사업자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커지고, 국내 플랫폼이 축적해온 이용자 데이터와 추천 기술, 콘텐츠 유통 역량도 함께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작사 입장에서도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유통 창구가 줄어들면서 협상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토종 플랫폼이 안정적으로 콘텐츠에 투자하고 서비스를 이어갈 수 있는 산업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과제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국내 OTT가 글로벌 플랫폼과 경쟁하며 생존할 수 있도록 콘텐츠 투자 지원을 확대하고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제작사와 창작자가 IP와 후속 사업 수익에 보다 폭넓게 참여할 수 있는 계약 구조를 마련하는 것도 과제다. 글로벌 플랫폼과 협력하더라도 국내 사업자가 단순 제작·납품에 머물지 않고 콘텐츠의 장기적인 가치를 함께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규제 형평성에 대한 요구도 이어지고 있다. 국내 방송사업자는 기금 분담과 편성·광고 규제를 적용받는 반면 글로벌 OTT는 상대적으로 규제 부담이 적은 만큼 시장 영향력에 걸맞은 제도적 균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업계 내 한 관계자는 "K콘텐츠의 글로벌 경쟁력은 이미 충분히 입증됐다"며 "그러나 콘텐츠 흥행이 제작사와 창작자, 국내 플랫폼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산업 구조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배소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