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수출을 견인해 온 효자 산업인 석유화학이 구조적 위기에 몰렸다. 최대 수출 시장이자 ‘세계의 공장’이었던 중국이 자급률을 대폭 끌어올리며 ‘글로벌 석화 공룡’으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주기적인 경기 변동에 따라 시간이 지나면 수요가 회복됐다면, 이번에는 중국의 공급과잉으로 인해 위기가 나타났다는 점에서 국내 석화업계의 불안감도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대응하고 있고, 앞으로의 생존 전략은 무엇인지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미디어펜=박준모 기자]중국의 석유화학 생산능력 확대가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입지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중국이 대규모 설비 투자를 통해 자급률을 끌어올리면서 국내 업체들의 수출에도 제동이 걸렸으며, 글로벌 공급과잉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국내 업체들은 주력 시장을 잃는 동시에 수익성 악화까지 겪고 있어 중국발 대규모 증설과 공급과잉이 실적 부진을 심화시키는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의 에틸렌 생산능력은 2019년 2626만 톤에서 2025년 5823만 톤으로 증가했다. 6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한 규모다. 중국 정부는 에틸렌 자급률을 높이겠다는 목표 아래 석유화학업체들을 지원했고, 대규모 설비 증설로 이어진 결과다.
세계 최대 에틸렌 생산능력도 확보했다. 2022년까지는 미국이 최대 생산능력 보유국 자리를 유지했으나, 2023년부터 중국이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후에도 중국의 증설은 이어지면서 미국과의 생산능력 격차는 더욱 벌어지는 추세다.
특히 중국 정부의 7대 석유화학 기지 집중 육성 정책과 원유를 화학제품으로 전환하는 COTC(Crude-to-Chemicals) 도입으로, 단일 공장 기준 세계 최대 수준의 생산능력을 지닌 복합단지들이 집중 가동되면서 2020년 초까지 호황을 보낸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의 에틸렌 생산능력 추이./사진=AI 생성
◆중국, 대규모 단지 가동 현실화...전 세계 저가 공세 확대
중국은 2020년대 즈음해 저장석화(ZPC)가 에틸렌 연 280만 톤, 정유 연 4000만 톤 수준의 단지를 가동하기 시작했으며, 2020년대 중반에는 시노펙 중커정화가 가동하며 에틸렌 연 80만 톤, 정유 1000만 톤의 생산능력을 갖췄다. 2021년 말에는 시노펙 쩐하이 정화가 증설되며 연간 120만 톤 규모의 에틸렌 크래커가 증설됐다.
또 2022년대 말에는 성홍석화가 상업가동을 시작해 에틸렌 연 110만 톤, 정유 연 1600만 톤, PX 연 280만 톤을 생산하며 원유에서 폴리에스터 원료까지 생산하는 수직계열화를 구축했다. 이어 2023년 초에는 페트로차이나 광둥석화가 전면 가동에 들어가며 에틸렌 연 120만 톤, 정유 2000만 톤 생산이 가능해졌으며, 중질원유를 고부가가치 화학제품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됐다.
이밖에 2024~2025년도에는 위룽석화가 순차 가동에 들어가며 1단계 기준 에틸렌 연 300만 톤, 정유 2000만 톤 생산이 가능해졌으며, 최근에도 외국 기업인 BASF에서 100% 독자 투자로 에틸렌 100만 톤급 통합단지가 가동 단계에 있다.
이처럼 중국의 석유화학제품 생산능력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우리나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먼저 중국이라는 대형 수출시장을 잃었다. 자급률을 끌어올리기 전까지 중국은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의 최대 수출국이었다. 201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석유화학제품 수출의 중국 비중은 40%를 웃돌 정도로 높았다. 하지만 현재는 20%대까지 축소된 상태다.
중국이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부터 합성수지 등 다운스트림 제품까지 생산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은 국내 업체들의 수출 여건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중국 시장에 수출하지 못한 물량은 다른 지역으로 판매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중국 업체들이 자국 내 수요를 넘어서는 생산능력을 갖추면서 남는 물량을 해외에 수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업체 입장에서는 동남아시아와 인도 등 다른 시장으로 판매를 하고 싶어도 결국 중국 기업과 같은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중국이 저가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는 점도 국내 업체들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대규모 설비를 기반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러시아산 원유를 사용하는 중국 기업들은 생산단가를 낮춰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여기에 범용재의 경우 제품 차별화가 쉽지 않아 가격이 수주와 판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중국의 공세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인건비부터 상대적으로 낮고, 정부의 지원도 커 국내 업체보다 원가 측면에서 유리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며 “대규모 설비를 가동하면서 생산 효율까지 높아지고 있어 범용재 판매에서는 국내 기업들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국의 석유화학 생산능력 확대로 인해 국내 업체들도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은 울산석유화학산업단지./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수익성까지 ‘악화일로’…구조적 적자 경고
중국의 공급과잉으로 인해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은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2018년까지 높은 수익을 기록한 뒤 2019년부터 점차 실적이 둔화되기 시작했으며, 2022년부터는 적자를 보는 기업도 나타났다.
LG화학은 2018년 석유화학 부문에서 2조1311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으나 2023년 143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3560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롯데케미칼도 2018년에는 1조9462억 원 흑자에서 2022년 7626억 원의 적자를 봤으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올해 들어서는 석유화학업체들이 흑자를 실현했다. LG화학은 석유화학 부문에서 상반기 누적 영업이익 5920억 원, 롯데케미칼도 같은 기간 1836억 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는 래깅 효과에 따른 일시적인 개선에 불과하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원료 수급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나프타 가격이 상승했고, 가격 인상 이전에 확보한 재고가 생산에 투입되면서 일시적으로 수익성이 개선된 것이다.
결국 수익성 악화의 근본 원인인 ‘중국발 공급과잉’이라는 구조적 악재가 해결되지 않는 한 장기적인 실적 반등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중국이 설비 투자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2027년까지 에틸렌 생산능력은 7000만 톤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어 국내 석유화학 업계 내에서도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자급률이 높아진 시점과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의 실적이 악화되는 시점이 맞물리고 있다”며 “앞으로 중국의 생산능력이 더욱 확대된다면 국내 업체들의 수익성 확보는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박준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