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배소현 기자] 인공지능(AI)이 방대한 지식과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개인이 축적한 지식과 경험만으로 전문성을 차별화하기는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만큼 사람에게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에도 끊임없이 ‘왜’를 묻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에 AI의 발전이 인간의 사고력을 떨어뜨리기보다 개개인의 가치관을 더 깊고 세밀하게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1일 업계에 따르면 AI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기술을 어디까지 발전시키고 어떻게 통제할지를 둘러싼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AI를 직접 개발해온 연구자가 향후 10년 안에 AI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등 미래의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나오는 분위기다.
당장 고용시장에서는 AI가 가져올 변화가 현실적인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AI가 개발과 분석, 의사결정 등 지식 노동 전반에 활용되는 가운데 신입사원이 주로 맡던 업무까지 대신하면서 청년층의 일자리 감소와 맞물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ICT 산업 신입 채용은 지난 2022년 9만5116명에서 지난해 4만8669명으로 48.8% 줄었다.
일자리뿐 아니라 AI를 사용하는 사람의 사고력에 미칠 영향도 논쟁거리다. 필요한 정보와 답을 AI에 의존하는 일이 잦아질수록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이다.
다만 AI의 발전을 곧 인간의 사고력 저하나 지능의 퇴화로 연결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기억과 지식의 활용에서 AI의 역할이 커지는 만큼 사람은 무엇을 문제로 볼지 정하고 어떤 선택이 옳은지를 판단하는 능력을 더 발전시킬 수 있다는 시각이다.
◆ 삶의 기준 높아질수록… 기술이 풀 문제도 세밀하게
AI 시대에 인간에게 더 중요해질 능력으로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고, 스스로 가치의 기준을 세우는 힘이 거론된다.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에도 ‘왜’를 거듭 물어나가는 과정에서 개개인의 가치관 역시 한층 깊고 세밀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내 한 관계자는 "AI가 발전한다고 해서 인간의 지능이 반드시 퇴화한다고 보지는 않는다"며 "오히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가치관이 더 고도화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지능과 전문성은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갖고 이를 정확하게 활용하느냐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다. 오랜 교육과 경험이 필요한 직업일수록 축적한 지식의 양과 깊이가 경쟁력이 됐다. 그러나 AI는 인간 한 사람이 평생 쌓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지식을 다루고 필요한 내용을 찾아 빠르게 조합할 수 있다.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사람의 지적 능력을 설명하기 어려워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면 AI가 주어진 목표에 맞는 답을 찾아도 무엇을 목표로 삼을지, 어떤 상태를 더 나은 것으로 볼지는 별개의 문제다. 효율과 안전이 충돌하거나 경제적 이익과 인간의 존엄 가운데 선택해야 할 때 무엇을 앞에 둘지도 가치 판단이 필요하다.
가치관은 개인의 윤리적 판단뿐 아니라 사회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문제를 개선할지 정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 같은 기술과 자본을 갖고 있더라도 어떤 사회를 만들겠다는 목표가 얼마나 뚜렷하고 구체적인지에 따라 기술과 자원을 사용하는 방향은 달라질 수 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발전 과정에서도 자본과 기술뿐 아니라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가 제도와 산업의 변화에 영향을 미쳐왔다. 안전과 인권, 교육, 환경, 삶의 질 등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높아질수록 과거에는 당연하게 감수했던 불편과 위험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바뀐다.
‘가치관의 고도화’는 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일상의 구체적인 부분에까지 반영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사람이 길을 걷고 물건을 사용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겪는 작은 불편을 발견해 고치고, 이를 건축과 교통, 제품과 서비스, 제도에 반영하는 식이다. 어떤 삶을 더 나은 삶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구체화될수록 사람을 배려하는 인문학적 사고도 일상의 작은 부분까지 스며들 수 있다.
이전에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겼던 위험과 불편을 더 이상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동안 지나쳤던 문제도 새롭게 드러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가 만들어지고 자본과 기술이 움직이면서 획기적인 제품과 서비스, 새로운 산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금의 AI 역시 인간이 풀어야 할 문제를 끊임없이 찾아온 결과물인 만큼, 앞으로 AI를 넘어설 새로운 기술과 산업의 출발점도 사람이 무엇을 문제로 발견하고 어떤 미래를 그리느냐에 달려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 세분화된 전공 교육도 변할까… 기초학문 중요성 다시 부각
이 가운데 현재는 각 대학의 학과명도 산업과 직업이 세분화되는 흐름에 맞춰 한층 촘촘하게 나뉘어 있는 반면, AI 시대에는 오히려 세분화된 전공 체계가 다시 기초학문 중심으로 단순해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특정 분야의 지식과 기술을 집중적으로 가르쳐 전문인력을 길러내는 교육보다 철학과 수학, 물리학 등 근본 원리를 다루는 학문의 역할이 다시 커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기초학문은 현상의 근본 원리를 파고들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전제에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AI를 통해 방대한 지식을 손쉽게 활용할 수 있게 될수록 이미 있는 답을 익히는 교육보다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근본 원리를 이해하는 교육의 가치가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올해 발표한 ‘디지털 교육 전망 2026’에서 생성형 AI를 교육에 활용하더라도 독립적인 사고와 각 학문의 기초 역량을 약화시키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타인지와 비판적 사고 등을 함께 기르는 교육의 중요성도 짚었다.
대학 교육에서는 지식을 배우는 과정만큼 서로 다른 답을 비교하고 자신의 판단을 검증하는 경험도 중요해질 수 있다. 같은 문제를 두고도 전공과 경험에 따라 다른 결론에 이를 수 있는 만큼, 토론과 논증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고 구체화하는 과정에 더 많은 비중을 둘 수 있다.
초·중·고교 등의 교육 현장에서도 하나의 가치관을 정답처럼 제시하기보다 학생이 스스로 판단의 기준을 세우고 다른 생각과 부딪치며 이를 다듬는 과정이 중요해질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AI 시대에 거론되는 ‘가치관의 고도화’ 역시 각자의 판단이 끊임없이 검증되고 수정되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업계 내 한 관계자는 "지금처럼 전공을 세밀하게 나누면 결국 특정 분야의 지식이 많은 사람을 길러내는 것인데, 그 지식은 앞으로 AI가 사람보다 훨씬 방대하게 기억할 수 있다"며 "AI가 발전할수록 인간의 지능이 후퇴한다기보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무엇이 옳은 방향인지 판단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인간의 지능이 또 한 번 크게 도약할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배소현 기자]